6·25 전쟁 동안 유엔군 수만 명이 전사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희생에 큰 신세를 졌다.
참전국마다 의미심장한 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유엔군 전체를 아우르는 기념지도 생겼다. 세계 최초의 일이다.
2010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일대가 유엔 평화문화특구로 지정되었다. 여러 관련 기념시설이 들어섰다. 그러한 유엔군 기념 풍경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각 나라의 기념비는 다음 기회에 찾기로 한다.
1. 재한 유엔기념공원
1955년 유엔총회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이다.
이곳은 유엔군 사령부가 1951년 1월 18일 최초로 유엔군 전몰자를 안장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144,146㎡ 면적에 11개 나라 전몰자의 2,300여 묘지를 중심으로 여러 기념시설을 갖춘 도심지의 녹지대가 되었다. 몇 나라의 정부와 기관 그리고 개인이 기증한 나무도 많이 자라고 있다. 여러 향토색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재한 유엔기념공원 전경
특히 정문은 건축적으로 유명하다. 한국 전통건축 계승의 초기작이라 할 만하다.
작품의 해설에서,
“지붕의 네 모서리 끝 추녀는 머나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지붕 아래 네 개의 물받이는 그들(유엔군 전몰장병)의 눈물을 나타내며, 유리로 마무리된 지붕의 천창은 유엔군들의 영혼의 빛을 상기시킨다”라고 한다. 해석하기 나름이긴 하다만, 듣고 보니 그런가 싶다.
정문에 관한 건축가 김중업의 말 중에서,
“… 한국 사람들만이 간직해 온 참 얼을 어떻게 조형화하여 새 얼을 담을 것인가 하는 일은 … 이 소품은 한껏 부푼 선에 부드러움을 불어넣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향수를 기억하면서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으려는 벅찬 작업의 소산이다. UN 관계 건축 가운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우탄트 총장의 찬사를 들은 … ”
아무튼 기둥의 곡선이 미묘하다. 상반되는 두 성질인 부드러움과 엄숙함을 함께 추구한 듯 보인다.
정문과 그 부분 및 추모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추모관도 상징의미를 강조한다. 주요한 특징이, “… 추상성, 영원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인 삼각 형태…”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세계 여러 종교가 모인 곳인데, 추모관이 교회 같아 보여서 좀 의아하다. 서구 중심 아닌지.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평화와 국제협력 정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명소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도시 내 위치한 큰 묘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에? 국제적이라서? 시설이 세련되어서? 갖추어지는 위상은 노력하기 나름인가 싶다.
다만 묘지 자체만을 기념지로 보기는 어렵다. 기념화 정도에 따라 기념 풍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2. 유엔군 참전기념탑
유엔기념공원에 가까운 교차로 녹지 속에 자리하고 있다.
유엔군 참전기념탑
녹지에서 솟아오른 듯 낱낱의 흰 기둥 16개가 모여 하나의 큰 묶음이 되어 지구 형상을 떠받치고 있다. 탑을 지키듯 16 군인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늘어섰다. 주변에 태극기와 유엔기, 그리고 16개국 국기가 다채롭게 펄럭인다.
유엔군 참전기념탑 부분
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구성미가 돋보인다. 유엔의 기본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3.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
우리가 잘 몰랐던 내용이다.
6·25 전쟁 때 전상자를 치료하고 난민 구호에 공헌하고, 전후엔 ‘국립의료원’ 건립에 발판이 되었던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다섯 나라의 의료지원 업적을 찬양하고 있다.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
부산 영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기단부 좌우 끝 환조 동상
높이 20m의 탑이 비스듬히 솟아올랐는데, 그 끝은 예리한 사선이다. 백색 탑에 적십자가 뚜렷하다.
기단부 정면 좌우에 평화를 기리는 부조를 새겼다. 다섯 나라 국기도 있다. 기단부 양쪽 끝에 부상병을 보호하는 모습의 동상을 올렸다.
뒷면에는 의료지원국 별로 전사자가 새겨진 동판을 부착하고, 파한의 역사와 역대 지휘관들의 이름도 새겼다. 기록판이다.
박애와 평화를 웅변하는 듯하다. 형태는 차분하면서도 은근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4. 유엔군 위령탑
유엔기념공원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이다. 의미와 상징으로서도 또 공간적으로도 이곳의 중심이다.
큰 돌을 쌓아 올린 흰 벽의 정면에 흰 비둘기가 월계수 가지를 쥐고 있다. 이곳은 예를 올릴 수 있는 자리이다. 비어있어도 오히려 경건함이 가득하다.
유엔군 위령탑 정면
위령탑의 오목 곡면의 삼각형 평면에 순백색이 빛난다. 세 꼭지 부분에 낮게 자리한 청동의 2인 좌상은 군더더기가 없다. 표현이 사실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스케일감의 효과를 주는 벽의 위령 패도 동판이다. 대한민국도 있다. 옅은 청록색이 시간이 베여있다.
낮게 흐르는 계단식 캐스케이드는 물소리와 흰 거품까지 연출한다. 다른 쪽은 무명용사의 길로 이어진다.
유엔군 위령탑 측면과 내부 전시공간의 작품
게다가 위령탑의 내부는 전시기능을 갖추어 기획전까지 가능하다. 작지만 실용적이라 할까. 그래도 이 전시공간마저 경건함이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우주를 뜻하는 원형 수반에 하늘과 전몰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반영되어 하나 됨을 의미, 수반 안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모가 맞은편에서 평화로운 꽃으로 승화하는 뜻을 표현, 수반 가운데 솟아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영원한 세계평화와 전몰장병들의 영혼에 대한 추모를 의미”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명비 부분: 원형 수반과 불꽃과 철모
검은 석판의 명비가 곡면을 이루었다. 불, 물을 중심으로 몇 의미체가 소품인 양 구성되었다.
그러한 조합 자체가 섬세한데, 엉뚱하게도 스테인리스 스틸 난간이 어색하다. 안전을 위해 부득이한 조치였을지. 게다가 굴뚝처럼 솟아있는 불꽃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검은 벽에 전몰자의 이름 모두를 같이 명기하는 방식은 1982년 베트남 메모리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는 혁명적인 기념물 디자인이었다. 추모 명비의 굿디자인으로서 스테레오 타입이다. 파급효과도 컸으니, 그 변용도 많아졌다. 이쯤 되면 모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곳은 기념지로서 제대로 갖추어진 명소이다.
다만 전몰자의 이름 그 자체보다 나머지 여러 상징 부분이 더 부각되어 아쉬울 뿐.
6. 유엔 평화기념관
유엔 평화문화특구 내에 자리하고 었다. 건축 자체도 상을 탈 정도로 수준급이다.
이곳은 전쟁의 참상과 참전자들의 희생을 재인식시키기 위한 교육적 공간이다. 16개 전투지원국과 6개 의료지원국 등 22 나라의 참전사를 전시하고 있다. 실내외 여러 전시물과 기록을 통해서 유엔군의 용기와 희생을, 그리고 세계 평화의 가치를 웅변하고 있다.
유엔 평화기념관 정면, 전시 부분
한 가지 흥미로운 기념물 보존 활동이 있으니, 바로, 남·여신상, 즉 유엔 신상의 재현이다.
즉 1964년 6월, 6·25 전쟁에 참전했던 16 나라를 기념하고자 제2한강교 입구에 UN군 자유수호 참전기념탑이 건립되었었다. 김세중 작품인 이 기념탑은 높이 53m로 그 위용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1979년 1월, 교량 확장공사에 따라 철거되고 만다.
유엔 평화기념관 로비의 유엔 신상
그런데 2015년 8월 광복 70주년과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여, 이 탑에 설치되었던 부조 작품, 즉 남·여신상 원형의 축소판을 유엔 평화기념관에 설치하였다. 김세중 기념사업회가 기증했다.
로비 우측 벽에 부착된 남·여신상은 높이 3.25m, 폭 1.15m의 청동 부조이다. 평화수호의 신념과 의지를 보여준다. 횃불과 검이다. 남녀가 그 역할을 나눈 것은 이제는 오래된 법식이긴 하다.
어떤 사유로든 버려진 기념탑을 보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함부로 기념물을 만들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만든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부득이 철거하더라도 그 기념성 자체를 유지하는 기법은 여럿 가능하다. 이 보존사례는 효율적인 기법으로 그 의의가 크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재한 유엔기념공원:1951년 1월 18일 최초, 1959년 11월 조성,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정문: 1966년 11월 기념 건축물 기증: 부산시민, 정문 및 추모관 건축: 김중업
1958년 이승만 대통령 방문 회양목 기념식수, 1961년 윤보선 대통령 방문, 1961년 7월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방문 전후 수차례 방문, 2010년 이명박 대통령 방문, 2013년 7월 22일 박근혜 대통령 방문
2. 유엔군 참전기념탑: 1975년 10월 24일 건립, 부산광역시 남구 못골로 15 유엔교차로, 조형: 김찬식
3.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 1976년 9월 22일 건립, 부산광역시 영도구 전망로 24, 조각: 이일영
4. 유엔군 위령탑: 1978년 10월 14일 건립,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유엔 기념공원, 휘호: 박정희, 건축: 남산미술원, 조각: 이일영, 전시: 유엔기념공원 관리처, 캐나다군 동상 전시물 조각: 유영문, 한국전쟁 호주군 전사자 추모 퀼트 제작: 메러디스 로우, 올윈 그린, ‘싯앤소우’
5.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명비: 2006년 10월 24일 건립,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유엔 기념공원, 헌시: 이해인, 기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명박 대통령,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 사업관리: 주식회사 뮤제씨엠, 디자인: 홍익대학교 환경개발연구원, 설계: 건축사사무소 단아, 시공: 진일개발주식회사
6. 유엔 평화기념관: 2014년 11월 11일 개관, 부산광역시 남구 홍곡로 320번 길 106, 건축: (주)황토종합건설, 기본 전시: 인들, 전시: 손영호, 유엔 자유수호 남·여신 상 축소 재현 제작: 동신미술, 외부 조형물 제작: 도태근, 전시: 인들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