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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Feb 27. 2021

최초 학생의거의
순수한 용기에 다가가기

1960년 2·28 민주운동의 기념 풍경


대구에서 일어났던 학생의거.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2.28 정신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기념 풍경 즉, 기념상, 기념비·탑 혹은 기념관·공원 등 관한 이야기이다. 기념 풍경의 형성 작업은 사건이 지녔거나 인물이 품었던 고유한 무형의 가치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구현하는 일이다. 제작자들은 나름대로 여러 기법을 활용한다. 물론 조형 언어가 큰 몫을 한다. 작가에 따라 독창적인 창작기법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떠하든 기념 풍경의 창작은 의도적인 응용이다. 시간의 벽을 넘어 사람들의 바람에 호응해야 한다.


몇 기록에 나타난 2·28 정신의 관련된 키워드는 순수, 열정, 용기, 헌신, 정의, 의, 최초 등이다. 이러한 진정성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2·28 민주운동 기념탑

2·28 민주운동 발생 후 2년 만에 명덕로터리의 가운데에 들어섰다가, 28년 후 지금의 장소인 두류공원 한 곳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두 탑의 높이를 각각 10m와 7m에서 14m와 9m로 더 높였다. 면으로서 치솟은 두 탑은 꼭대기에도 속에도 사선을 품고 있다.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크게 비대칭에 자유롭다. 그런데 두 탑은 남녀 학생을 상징한단다. 요즘 같으면 차별이라고 지적당할지 모른다. 이인화 논리는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탑은 우리나라 기념탑 건립의 초창기에 속하는바 그 형태가 독창적이다.

228 민주운동 기념탑

그리고 60주년을 맞아 시에서 이곳을 크게 정비하였다. "2·28 학생의거 기념탑"이었던 것을 개정된 명칭에 따라 명비석을 한글로 바꾸어 올리고 기존 것은 탑 오른편 구석으로 옮겼다. 또 탑 뒤편 전체에 벽면을 갖추어 비문, 2·28 찬가, 김윤식의 시, 의거 동선 그리고 2·28 민주운동 유공자 명단을 새겼다. 더하여 벽 중앙에는 당시 의거 장면을 연출한 길이 8.3m에 높이 2.4m의 청동 부조를 설치하였다. 횃불을 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열넷 남녀 학생들이 좌우로 나란히 대칭을 이루었다. 여기에서 굳이 왼손 문제 또 얼굴 시비를 할 필요는 없다.


김윤식의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2·28 대구 학생데모를 보고」,

“… 지금은 봄

옥매화 하얀 송이 대한의 강산에서

3월의 초하루를 추모하는 너희들 학생의 날!     

아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저리 우리들의 태양이 이글거리기 때문.”    


이제 산만한 공원 속에서 이 기념탑은 여러 형식을 더하니 대표적인 기념 풍경으로 그 위상을 더하게 되었다.  다만 2.28 정신을 얼마나 잘 다가갈 수 있을지 느껴볼 뿐.  


2. 2·28 기념 중앙공원과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2.28 기념 중앙공원 김윤식 시비,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파사드의 기념탑 형상, 대구 2.28 기념 학생 도서관 노래비

2·28 기념 중앙공원

2003년 조성, 동성로와 가까워 도심 공원으로서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원의 조경에서 특별히 2·28을 상징하거나 기념하는 내용은 없다. 명칭을 그러하고, 기념 시비와 노래비 정도이다.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10년 뒤 2013년 개관한 이 기념회관은 정면에 2.28 민주운동 기념탑의 이미지를 재현하였다. 내부 전시는 비록 소규모이나 나름 2.28 민주운동의 전개 과정을 연출하고 있다. 관람 때 처음 만나는 횃불. 의거의 상징 같은 횃불은 여기에서도 빛난다. 이곳은 학생들을 묘사한 화강석 부조와 큰 소나무 사진, 그리고 함성이 가득하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2·28 그 촛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런데 공간이 작은 탓인지, 움켜쥔 손에 비하여 횃불이 너무 작다. 조명 효과에 인상적이다.      

건물 전정에는 각 고등학교의 상징 교목을 심어 2·28 민주운동 기념동산으로 조성하였다. 느티나무(경북고등학교,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담쟁이덩굴(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향나무(경북여자고등학교), 소나무(대구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은행나무(대구 상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 그런데 생장 상태가 다르니, 어울림이 약하다. 기념식수의 한계이다. 


3. 8개 고등학교의 2·28 민주운동 기념 풍경

경북대학교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2.28의거기념조각물,  경북고등학교 2.28기념탑,  대구고등학교 2.28민주운동기념탑

8개 고교 중 199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에서 본관 앞에 2·28 의거 기념 조각물이 먼저 설치했다.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넓은 바닥 위에 네 가닥의 큰 철재 조형물이 서로 어우러졌다. 당시 꽤 이례적인 조각이 아니었나 싶다. 혹시 넷은 순수, 용기, 헌신, 정의를 상징하는가? 짙은 청색과 흑갈색 그리고 백색의 곡선은 저 높은 곳을 향한다. 방향성을 응집시킨다. 

건립의 말에, “…이 땅에 다시는 불의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후배들에게 민주주의의 구현자가 되기를 희망함에 있다. 아울러 자율·협동·강건의 정신을 가다듬고 되새겨…”라고 가르치고 있다.     


같은 해 2·28 기념조형물을 설치하였던 경북고등학교는 2003년에 기념탑을 더하고, 2012년이 되어서는 교내 도로변에 둘을 옮겨서  민주화2·28운동 기념동산으로 완성하였다. 기념탑에서 전통 탑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점차 작아지는 탑신의 매듭은 상승감을 준다. 비례감의 효과도 있다. 숫자 자체로 된 2·28 기념조형물은 직접 효과를 보여 준다. 

경맥의 혼-2·28 제작기에, “… 혼이 험난한 역사의 고비를 넘어 국내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개화했음을 상징, … 혼이 하늘로 치솟고 있음을 현대적 탑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한다.   

   

2010년 대구고등학교 무궁화동산의 2·28 기념탑은 다섯 원기둥으로 구성되어, 교표의 무궁화 다섯 꽃잎을 상징한다.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원형의 돌기둥 다섯은 사이 간격이 좁아서 얼핏 하나의 큰 집합체로 보인다. 무궁화의 다섯 꽃잎이 모이고 흩어지는 의도를 알 만하다. 햇빛 각도에 따라 색다른 구성 효과도 있다. 

다만 기념지로서 장소성의 확립이 부족하다. 건립문에서, 이곳이 달구인의 영원한 정신적 성지가 되기를 열망하며, “…이 터는 2·28 학생의거를 선도한 대고인의 자랑스러운 성역이요, 이 상징물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징표이며… 정의를 향한 그 뜨거운 열망을 항상 가슴에 새기라! ” 

상상력을 자극할 만하다.     

2.28민주운동기념회관 횃불조형물, 대구상원고등학교 2.28학생민주운동기념탑, 대구공업고등학교 2.28민주운동기념비

2018년 대구 상원고등학교 상원 동산에 조성된 2·28 학생 민주운동 기념탑은 기념조형물에 가깝다. 낮은 기단 위에 큰 석괴는 받침이면서 그 자체가 조형물 역할을 한다. 항거하는 학생들 이미지와 기록을 새겼다. 곡선을 지녀서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그 위에 2·28과 횃불을 높이 치켜든 학생이다.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선도자의 모습 같다. 부제인 “정의의 함성”에 걸맞은 구상 작품이다. 

건립문에서 “1960년 대구에서 학생들이 주도한 2·28 학생의거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 그 의로움과 불굴의 용기를 오늘에야 되새기고 후학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사실적인 표현이 오히려 더 교육적 일지, 출발점으로서는 충분하나 그 자체 한계가 되면 곤란하지 않을까.     


같은 해 대구공업고등학교 옥저 공원의 2·2기념비는  2·28 민주운동 기념탑 원형을 응용하였다. 두류공원 탑의 설계자가 동문 선배이기에 “오마주”, 즉 감동 되살리기를 하였다고 한다. 선배의 작품을 존중하고 함께 하려는 의도이다. 기념비는 책 형태로 된 기단에 2.8m의 탑을 올렸다. 두 탑신이 다른 석재로 하여 청색과 홍색을 띤다. 남녀 학생을 더 강조한 것인지. 더 친절해졌다고나 할까. 오마주는 원작을 눈높이를 맞추어 풀이하는 의의가 크긴 하다. 이때 제작자는 번역가인지 아니 해설자인가. 어떠하든 신중해야 한다. 자칫 과장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머지 3개 고교에서도 기념사업을 마무리하였다.

경북여자고등학교 2.28기념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2.28민주운동기념비, 대구여자고등학교 2.28민주운동기념비

경북여자고등학교의 백합 동산에 설치된 2·28 기념비는 비신 정면에 헌시를 새겼다. 흰 화강석으로 된 전형적인 시비 형식이다. 백합 이미지를 강조하듯, 시를 새긴 검은 오석 판에 대비되어 비신의 흰빛이 다. 

헌시, 「푸르른 이름 2·28」,

“… 푸르靑靑 푸르靑靑

어둠이 차올라야 더 빛나는 별처럼

정의의 빛이여!

순수의 깃발이여!

영원한 그 날 2·28이여!”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의 넓은 교정의 2·28 민주운동 기념비는 검회색의 비신 정면에 학생의거 당시 장면을 새겼다. 소리 없는 함성을 보는 듯 이미지 효과가 있다. 그 아래에 작은 오석에 시를 새겼다. 그런데 바로 앞자리의 건립문에서 비 조성의 뜻을 강조하고 있다. 크기와 순서의 배치가 어색하다.

헌시, 「흘러간 세월!」,

“…2·28 정신을 이어받아 불의에는

저항하고 정의에는 순응하는

자랑스러운 대농인으로 거듭나자.”     


대구여자고등학교의 유란 동산에 2·28 민주운동 기념비와 시비가 함께 자리하였다. 작가의 제작 의도에 의하면, “재료가 지닌 물성에서 그날의 상흔과 뜨거웠던 울림들을 찾고자 했고 그리하여 분홍빛을 띄며 석재 전체에 작은 기포들을 가지고 있는 상주 화북석을 기념비로 제작하게 되었다.… 상단의 집 모양 조형물은 기억의 공간으로 과거·현재·미래가 함께 공존하며 긍정의 힘을 담고 미래로 나아가는 뜻을 담고자…”하였다. 둥근 오석 원형을 유지한 시비와 대조적으로 다듬어진 기념비는 따뜻하고 원만한 인상을 준다. 옛 탑의 실루엣을 지녔다. 기억의 공간으로 집 모양은 낯익은 모습. 그러한 모양 자체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2·28 기념을 위해 미루어 상상해야 한다.

헌시, 「그날의 임이여」,

“…

그날 그때 꽃의 향기

임들의 정신은

이 땅의 역사가 되고 미래가 되어

영원하리”     

2.28 민주운동 기념탑 청동부조

60년에 걸쳐 대구 시내 곳곳에 형성된 2·28 기념 풍경은 다양하다. 2·28 정신의 해석 차이인가. 아니면 조형 창작의 다름인지. 보기에 따라 이 다양함은 개성이 뚜렷하고 자유로운 창작과 감상의 분위기가 보장된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때 한 목소리 같은 행동이었는데, 설마 제각각이고 경쟁적이겠는가. 


다만 형상은 어떠하든 시간의 벽을 넘어 2·28 정신에 되도록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끔 길잡이가 되는, 그래서 진정미를 갖춘 기념 풍경을 바랄 뿐이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2·28 민주운동 기념탑: 1962년 4월 19일 명덕 로터리 건립, 1990년 2월 28일 두류공원 이전, 2020년 정비사업,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154-1, 글: 류영희, 서지: 김윤식, 2·28 찬가 작사: 김정길, 작곡: 임우상, 설계: 김현산, 청동부조 제작: ㈜예진

2. 2·28 의거 기념 조각물: 1991년 2월 28일,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8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글: 최용호, 글씨: 류영희, 조각: 고주석

3. 2·28 기념탑조형물: 1991년 5월 조형물 건립, 2003년 2.28 기념탑 건립, 2012년 5월 교내 2.28 민주화운동 기념동산에 기념조형물과 기념탑을 이전,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00 경북고등학교, 글: 홍종흠, 글씨: 류영희, 제작: 이강소, 조경: 장지국

4. 2·28 기념 중앙공원: 2003년 12월 30일 조성,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2길 80, 시-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김윤식, 공원설계: EA 조경기술사사무소 장병국

5. 2·28 민주운동 기념탑: 2010년 5월 30일 건립, 대구광역시 남구 중앙대로 171 대구고등학교 무궁화동산, 글: 이상규, 글씨: 노상동, 설계: 류춘수

6.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2013년 2월 28일 개관, 대구광역시 중구 2·28길 9, 건축: □□□, 전시: □□□, 횃불 조형물 제작: □□□, 사진(1): 장국현

7. 대구 상원고 2·28 학생 민주운동 기념탑: 2018년 6월 4일 건립,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241 대구 상원고등학교, 부조: 박성열, 조각: 이기철, 설치: 예당건축조형미술연구소

8. 대구공고 2·28 민주운동 기념비: 2018년 10월 14일 건립, 대구광역시 동구 대현로 135 대구공업고등학교 옥저 공원, 제작: 선아트 이성현

9. 대구 2·28 기념 학생 도서관, 2·28 노래비-2·28 찬가: 2018년 12월 19일 개관, 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 41길 56, 작사: 김정길, 작곡: 임우상, 제작: 거암 석예원

10. 2·28 기념비: 2020년 2월 25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288 경북여자고등학교 백합 동산, 헌시: 장영향, 제작: 부산 석물

11. 2·28 민주운동 기념비: 2020년 2월 28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3170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글: 지윤택, 제작·협찬: 화북 석물 정규한

12. 2·28 민주운동 기념비: 2020년 12월 31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488길 17 대구여자고등학교 유란 동산, 헌시: 박언휘, 설계·제작: 서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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