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석연 Dec 07. 2022

48. ‘만족(滿足)’의 의미

삶은 의미다 - 48

만족(滿足)’은 마음이 흡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滿(찰 만)은 뜻을 나타내는 水(물 수)와 소리를 나타내는 㒼(평평할 만)이 합쳐진 한자로, ‘차다’, ‘채우다’, ‘만족(滿足)하다’ 등을 뜻한다. 足(발 족)의 口(입 구) 부분은 무릎아래, 止(그칠지) 부분은 발의 형상으로 ‘발’, ‘다리’, ‘족(足)하다’, ‘만족(滿足)하다’ 등을 뜻한다. 만족은 욕구가 충족(充足)된 상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 상태를 말하며 자족(自足)이라고도 불린다. 행복보다는 더 부드럽고, 자기 스스로 절제하는 상태의 마음이다.

만족(滿足)’이라는 한자어 자체의 뜻은 물이 발을 적신다.’ ‘물이 발까지 차오른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돈이든, 명예든 발까지만 차면 마음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행복해하는가? 아니다. 누구나 다 목까지 차오르기를 바란다. 숨 쉴 만큼의 공간만 있으면 전부를 채워야 한다는 그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한, 만족은 이루지 못할 욕망으로 남는다. 머리끝까지 채워 숨 못 쉬고 죽지 않으니 다행인 것인가?

인간 고민의 대부분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를 원망하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내가 나인 것이 싫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삶만을 동경하면,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된 가면을 벗겨내고 자신의 참모습을 사랑해야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고 타인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불러주는 나의 타이틀이 아닌 진정한 모습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만족으로 산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만족’이 첫걸음이라는 말이다.

만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마음이 기대 심리이다. 기대의 정도가 만족의 정도를 결정하는 척도이다.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기대의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만족의 지름길임은 당연하다. 인간관계에서 틀어지는 대부분의 경우가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다. 길 가는 사람과는 원수 될 일이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원수가 되기 쉽다. 남편과 자식이 ‘웬수’가 되는 이유다. 기대 심리를 버리고 눈높이를 낮추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면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를 돕는 좋은 행동도 무언가를 바라는 기대 심리가 밑바탕에 있으면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는 법이다.

결혼을 앞둔 사람이 상대의 실재 능력은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결혼하면 만족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가 되고, 후자의 경우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가 되는 것이다. 100을 가진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200이나 50을 기대한 나의 문제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만족도가 높아져 행복해지고,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커져서 불행해지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만족하라는 대표적인 경구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이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안 가진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다라는 개념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적인 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빌려 쓰는 개념이다. 심지어 육체까지도 그럴진대 말해 무엇하리오. 물질도, 돈도, 육체도 세상 걸 가져와 썼으니 모두 돌려주고 가는 것이 이치라나 뭐라나? 몸이 부서지라 벌어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시스템에서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깨우침이다. 무소유까지는 몰라도 기대의 눈높이를 조금씩 낮추어 만족도 높은 생활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부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완전히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라고 기본 현실을 설파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몸과 마음, 은하계의 가장 먼 곳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본질을 지닌 것,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킬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가? 그 최우선이 물질적으로는 돈정신적으로는 사랑이 아닐까? 돈이 체감 행복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확연히 대비된다. 돈이 높아지면 만족도도 올라가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실제 체감에 더 이상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때 더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간 소비를 조절하는 것이다. 즐거운 일에 더 많을 시간을 쓴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사랑에 서툰 사람들은 낯선 감정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다 주면서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또한 내가 준 사랑만큼 나도 받아야 만족한다. 사랑에서도 기대 심리가 철저하게 작용한다. 당연히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위안을 얻기 위해선, 무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주고, 기대를 버리고 상대가 주는 만큼 받아 만족하는 것이다. 사랑~! 적당히 주고적당히 받아라. 지독한 사랑, 목숨 거는 사랑 모두 정상의 사랑은 아니다.

다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할 때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듯이모든 사람이 나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좋든 싫든 상대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의도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상대의 만족이라는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내가 먼저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상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만족에 있고 불행은 욕심에서 온다가장 행복한 일은 만족을 아는 것이고 가장 괴로운 일은 욕심이 많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행복의 조건은 만족함에 달려 있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적당할 때 만족하는 사람이다. 또한 행복은 만족을 느끼는 순서이다. 객관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주관적으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면 둘수록 나의 행복은 줄어든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삶이 있다. 하나는 무작정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운과 감사의 조건을 찾는 사람이다.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 인간이 보이는 가장 흔한 반응은 만족이 아니라 더 갈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더 낫고 더 크고 더 맛있는 것을 찾는다. 우리는 주어진 행복은 잘 모른다. 늘 내 부족함을 채우려는 욕심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는데, 끝없이 반복되는 그 조금만 더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만한 돈도, 사랑도, 부모도, 자식도, 부부도, 가족도~.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말고, 물질적으로는 눈높이를 낮추어 ‘조금만 더’를 내려놓는 것이 주어진 행복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한편, 늘 만족하면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 과거 고도 성장기나 거품 경제 시기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 믿었기에 상대적으로 현실을 불만족스럽게 여겼다. 일명 낀 세대라 칭하는 그때 젊은이들의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반면 지금 젊은이들은 저성장과 고물가 시대에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MZ세대들이 소확행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다.

진정한 부자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게 적은 사람이고빈곤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욕망이 끝이 없으면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이다. 수많은 성자, 예언자, 철학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파하고 있다.

욕망~! 머리끝까지 채우려다 망()하지 말고발목까지만 채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