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47
‘문명(文明)’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기술적․사회 구조적인 발전, 즉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비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형태’를 뜻한다. 인간이 그려서(文) 변화(化)를 일으킨 것이 문화(文化)이고, 이런 문화적 활동의 결과가 문명(文明)인 것이다.
文(글월 문)은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새겨 넣는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한자로 ‘글월(문자, 글, 편지 등)’을 뜻한다. 明(밝을 명)은 해(日) 달(月)이 결합해 ‘밝다’, ‘명백(明白)하다’ 등을 뜻한다. 명(明)은 밝음의 뜻으로서 어둠에 대비되는 개념이고, 어둠은 문(文)이 있기 이전의 ‘무지’의 상태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문명은 문화로서 ‘나타난’, ‘밝게 드러난’ 물질적 산물을 뜻한다. 문화를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로 분류하고 그중 물질 문화를 문명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은 자연과 문명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놓고 살고 있다. 인간은 자연과 문명을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으로 인간의 간섭이 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잘 돌아간다. 한편 문명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으로,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통하여 눈에 보이도록 분명하게 남겨진 결과이다. 물건, 제도, 과학기술, 철학(사상) 등 모든 생각의 결과물로 인간이 자연 외에 자기 세계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문명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공적, 조작적, 인위적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생각의 결과다. 당연히 그 생각의 차이에서 문명의 차이가 발생한다. 시대적으로 과거와 현재, 기술 발달 차이에 따라 주도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창조하는 선진 문명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문화적 활동의 결과를 수용하는 후진 문명이 존재한다. 당연히 후진 문명은 선진 문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문명의 발생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기후나 지형 같은 환경적 영향으로 문명이 발생하고 성장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널드 토인비는 현대적인 체계를 갖춘 ‘역경 이론’을 주장했다. 인류는 지구상에 생존하는 과정에서 시련이 있었고, 그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 문명을 발생 발전시켰다는 이론이다. 또한 문명의 발생, 문명의 발전, 문명의 쇠퇴, 문명의 해체 등으로 문명의 변천사를 정리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문명 이론 하나 더~! 사실 인류 문명은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발버둥 치다가 우연히 발견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건물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모든 것이 ‘제발 나 좀 봐 달라’는 구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긴 삶에서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이해하는 데 연애나 사랑만큼 훌륭한 도구도 없다. 행복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한다고 하지만, 행복이 사랑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생존 본능의 삶에서 종족 번식을 위한 사랑만큼 중요한 것도 없겠지만, 누군가 가볍게 한 면만 보고 한 이야기가 아닐까?
문명이란 인간의 생물학적 약점을 보상하기 위한 산물이고, 열등성을 극복하는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근대의 물질문명이 인류에게 행복만을 선물한 것은 아니다. 문명의 발전에 따른 교통수단(자동차, 비행기 등)의 사고, 대량 살육의 전쟁 등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문명이 발전하면 인간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일 수 있다. 그 믿음의 바탕에는 인간이 이성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지만, 인간은 절대 이성적이지 못하다. 반대로 인간은 공격 본능을 가지고 문명을 발전시킨다. 문명의 발전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인간의 공격 본능이다.
문명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생활에 비해 인류가 이룩하고 발전된 보다 세련된 삶의 형태라는 측면에서 우수했던 세계 4개의 지역에서 문명이 번성하게 되었다. 기원전 3500년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나일강 유역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 문명, 중국의 황하강 유역의 황하 문명을 세계 4대 문명이라 한다. 마을에서 도시로 발전하고, 농업의 발전으로 사적 소유가 발생하면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나누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원시사회가 해체되어 고대국가가 탄생한 지역들이다. 나아가 법률, 행정 체제, 관료 조직이 갖추어지고, 다른 도시를 정복하기 위한 군대도 조직됐다. 교통수단의 발달, 문자의 발명, 금속 도구의 사용 등이 더불어 발전하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 문명의 ‘빛’이라면, 계급 갈등과 전쟁 등 인간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것은 문명의 ‘그림자’였다.
고고학에서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한층 발달한 수준의 유물, 유적군과 그 산물을 문명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단계의 유물, 유적군과 그 산물은 보통의 경우 문화라 지칭한다. 이렇게 말하면 문화를 문명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문화란 단지 인류의 생활양식을 말할 뿐이지 문명의 하위 개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문명이라 하면 이집트 피라미드나 파리의 개선문,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거대한 기념비나 건축물을 떠올린다. 이것은 문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팽창적인 업적, 발전에 기반한 성취를 떠올리는 인식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팽창적인 업적 뒤에는 문명의 그림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을 만든 노예, 노동자가 있고, 정복 전쟁으로 인한 멸망한 국가가 있는 것이다. 근대나 현대문명도 이렇게 팽창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팽창성과 공격성만 추구하는 문명은 지속될 수 없다. 팽창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결합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문명만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 또한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문명은 직선이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이다. 문명의 직선적인 삶이 편의성과 속도에서는 우월할지 몰라도, 본래 치대고 부대끼며 사는 사람 본연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명에 전적으로 기대어 사는 직선적인 삶은 앞이 훤히 보이지만, 자연과 함께 사는 곡선적 삶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만, 정말 미래가 모두 보인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내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고,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이고 정(精)에 기대어 사는 삶에는 자연과 어울리며 곡선적 삶이 훨씬 더 행복감을 안겨줄 것이다. 문명에 기대어 너무 속도와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말고, 자연과 함께하는 느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