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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Nov 23. 2022

45. ‘지혜(智慧)’의 의미

삶은 의미다 - 45

지혜(智慧)’란 사람사물사건이나 상황을 깊게 이해하고 깨달아 자기 행동과 인식판단을 이에 맞출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여 이성과 지식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智(슬기/지혜 지)는 ‘知(알지)’에서 파생된 글자이다. 知의 원래 의미는 ‘입(口)’을 통해서 나오는 ‘화살(矢)’이다. 지혜의 본질이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의 양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란 뜻이다. 여기에 다시 日(날 일) 태양을 추가했다. 태양이 밝게 비춰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듯이 세상의 이치를 명쾌하게 안다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慧(슬기로울 혜)는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彗(살별 혜)가 합쳐진 한자로 ‘슬기로움’, ‘지혜(智慧)’를 뜻한다. 智慧 두 글자 모두 같은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통찰(洞察), 안목(眼目)이 있다. 

지혜(智慧/知慧또는 슬기는 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지식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발전하여, 지금은 주로 사리를 분별하며 적절히 처리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지혜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지혜를 의인화한 신이 아테나와 메티스였으며, 철학을 가리키는 용어 ‘philosophy’도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의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덕목의 아버지’로 지혜를 꼽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인 형이상학에서 지혜란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미지의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기 때문에 원인을 이해하는 과학이 모든 것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능과는 의미가 다르며, 지식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성경의 ‘열왕기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칼로 반쪽 내어 나누어 주라는 판결로 진짜 엄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이야기지만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명판결로 유명하다. 

동양에서는 지혜란 오랜 명상과 수행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삶의 적절한 체념과 절도를 포함한 것이라면, 서양에서는 지혜란 정확한 정보와 인식을 바탕을 두어 먼저 많은 양의 지식을 얻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힘이라고, 서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로마 신화 속 지혜의 여신이 미네르바인데 ‘생각, 지혜’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의술, 시 등 지혜가 필요하다고 여긴 온갖 분야의 신으로 통했고,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와 동일시했다. 미래의 대학 형태인 미네르바 대학이 2012년 미국에서 설립되었는데, 물리적인 캠퍼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설립 초기부터 전 세계를 돌며 온라인 수업만을 진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08년 하반기에 유명한 미네르바 사건이 있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리먼 사태와 환율폭등 및 금융위기의 심각성, 대한민국 경제를 예견하는 글로 엄청난 주목을 받던 인터넷 논객 박대성 씨가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체포 및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석방된 사건이다. 이때 많은 독자가 미네르바는 경제 대통령이라 칭할 만큼 엄청난 경제전문가일 그것으로 생각했지만, 인터넷 사이트 검색 등을 통하여 글을 쓴 일반인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기도 했다.

지혜를 터득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은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선천적으로 세상의 여러 지식과 지혜를 빨리 이해하고 습득한다는 것이다. 천부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그래서 도무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들의 경우이다. 둘째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는 가운데 지혜를 얻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여러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가운데서 지혜를 얻고 성장한다. 인간의 지혜 역시 후천적으로 습득되고 교육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종합적으로 성숙해가는 마지막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월에 따른 다양한 경험으로 얻는 연륜의 지혜가 가장 큰 부분이 될 수 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내용과 형식에 있다. 즉 지식이 어떤 내용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에 활력을 부여하는 형식이다.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가 지식이라면,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이때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라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식 혹은 지성은 지혜를 깨닫는 필요조건이지만, 우리는 개인이 쌓은 지식의 양이 항상 거기에 상응하는 지혜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기계적 사고와 구별되는 인간적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이 지혜의 차원이다. 지혜는 보통 이런저런 상황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간주하는데, 지혜가 종종 기술(삶의 기술, 사랑의 기술 등)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따를 수 있는 기술이 지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지혜는 기술이 아닌 것처럼 지식도 아니다.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싹틀 수 있다. 지혜롭지 못한 전문가가 많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높은 지혜에 도달하여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 가물가물한 눈을 껌뻑이며 듣던 할머니의 ‘옛날옛적에~’ 하며 들려주던 얘기 속에는 응축된 삶의 지식과 지혜가 많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전달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다양한 책(오디오북)으로 변신하여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책을 듣고 읽음으로써 얻은 지식을 한층 심화시켜 지혜의 탑을 쌓아가고 있다.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은 어디서든 전송받고 검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진실과 지혜는 그렇지 못하다. 아무 데서나 전송받을 수도, 검색해서 습득할 수도 없으므로 깊은 사색을 통한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의 지혜를 습득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손에 든 뇌(핸드폰, 컴퓨터 등)로 검색․전송받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머리 안에 든 뇌를 작동하여 거시적이고 합리적 판단과 전망, 진실과 지혜, 새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신속하게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혹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그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다. 교육은 자아의 내부에서 지혜의 핵심을 뽑아내려는’ 노력이다. 이 지혜의 힘으로 거짓을 물리치는 힘을 갖게 되고 또 진리의 빛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소피아라 한다. 소피아는 원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이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무아(無我)의 상태로 진입하는 연습이며, 끝없는 상상을 통해 그것을 현실과 연결하는 노력이자 과정이다. 이때 사람들은 외부적인 규범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반성하는 자기 결단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내면의 교사는 우리 삶의 살아 있는 핵심이며, 모든 가치 있는 교육이 지향해야 할 꼭짓점이다. 지혜는 외부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내면의 교사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아이들에게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모든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개발하며,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지혜와 경험을 이해하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기 행동과 세계 전체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혜란 것은 크고 넓은 것,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적지만 사유(思惟)의 과정을 거쳐야 나올 수 있고, 몸으로 직접 체화시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유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잡지 못한다. 그냥 잠깐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어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한결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교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 정진하는 참선(參禪)이 대표적 사유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래 법정 스님께서도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지만지혜는 안에서 우러나온다.’라고 말씀하셨다.

지혜는 고통에서 태어난다.’라는 말과 같이 거친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지혜의 폭은 더욱 넓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년 이후의 뇌 관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두뇌를 채우고, 독서하고, 사색하며 걷고, 다양한 사람과 사귀면 자연스레 지혜의 샘은 솟아나게 마련이다.

현존하는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여기서 사피엔스의 뜻은 슬기로움과 지혜로움이 통합된 생각·지성을 뜻한다. 한 마디로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한데 정말 ‘인간은 지혜로운가?’라는 질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행동보다 어리석은 행동을 훨씬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폭력, 개발을 빙자한 자연 파괴 등 스스로 자기가 사는 터전을 망가뜨리는 동물은 인간이 지구상에 유일하다. 원래 지구의 Homo 속(屬)에는 7종(種)이 있었으나, Sapiens 종 하나만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피엔스 종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6종을 모두 멸종시켰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처럼 현생 인류는 자기와 경쟁 관계에 있는 동속(同屬)의 인간뿐만 아니라, 위협이 되는 다른 대형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지구에 살아남아 ‘우리가 위대하다.’, ‘우리가 지혜롭다.’라고 주장하며 사피엔스라는 칭하고 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 파괴나 다른 종속(種屬)을 죽이는 것을 진화론적으로 넓게 보면 동족상잔의 어리석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전쟁 및 분쟁, 자연 파괴를 보면, 아직도 어리석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진정한 지혜로운 사피엔스가 되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삶의 지혜는 이미 많은 선지자에 의해 밝혀져 있다. 알면서 실천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를 고통의 바다로 빠지게 하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다.’라는 말도 있다. 좋은 사람은 본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우주에서 자연에서 사람에게서 지혜를 얻는 삶을 영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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