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62
‘대화(對話)’는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는 간단한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두 사람이 모여 말로 생각한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활동을 말한다. 對(대할 대)는 丵(풀무성할 착)과 寸(마디 촌)이 합쳐진 한자로 손에 ‘丵’ 형태의 무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으며. ‘대하다’, ‘대답하다’, ‘상대방’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話(말씀 화)는 言(말씀 언) 자와 舌(혀 설) 자가 합쳐진 글자로 보기 쉽지만, 원래는 뜻을 나타내는 言 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막을 괄) 자가 결합한 한자로, ‘말씀’, ‘이야기’, ‘말하다’를 뜻한다. 話의 舌이 舌(혀 설)이 아니고 (막을 괄)이라는 사실이 뜻밖이다.
대화의 품격은 경청의 기술에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극단적인 감정이나 어조로 말한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 의식의 흐름과 발맞춰 부드럽고 온화하게 나아가는 것이 좋다. 세련된 배려형 대화방식과 경청의 자세를 훈련하여야 할 이유이다. 경청의 기술은 나를 낮추면서 나의 품격을 높이는 기술이자,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그가 자발적으로 자기의 정보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즉 경청은 자연스럽게 나를 숨기면서 상대방을 드러내는 대화기술이라는 말이다. 경청의 기술을 갖추려면 먼저, 자기표현 욕구를 자제할 줄 아는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뚫어보는 이해력, 상대방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제력과 이해력, 배려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능력이 바로 경청 능력이다. 이 중 하나라도 갖춰지지 않으면 경청은 불가능하다.
좋은 대화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수용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주장은 가능한 적게 하되, 진솔하고 참된 말로 상대가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참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진실하게 들으면, 상대도 믿음을 가지고 내 말을 듣고 나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결국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고 대화의 목적이 달성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솔직한 것이 좋다고 너무 내 패를 다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대다수 사람은 솔직한 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너무 솔직해 나의 있는 것, 없는 것 다 이야기해 보이면 마지막 순간 설득해야 할 순간이 오면 대적할 무기가 없다. 솔직한 느낌만 들면 되는 것이지 진짜 생각나는 대로 본심을 다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솔직한 정도를 잘 조절하고 솔직해 보일 수 있도록 말투 등을 고려해 말하는 것이 솔직한 매력의 핵심이다. 다 보이는 것보다 살짝 숨기는 데에 매력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솔직한 게 좋다고 아무 여과 없이 말해선 안 되고, 상대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솔직함만 보이면 된다. 너무 솔직하게 좋다고 밑바닥을 다 보여주면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솔직하게 보일 수 있으면서 대화를 이끌어갈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현대 생활에서 대화를 가장 가로막는 방해물이 무엇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 대화의 가장 큰 방해물은 한시도 우리의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이란 괴물이다. 많은 사람이 회사에서나 집에서 바쁜 일상 때문에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바쁜 일상 중에도 회사에서는 티타임, 가정에서는 식사 시간 등 먹고 마시는 장소가 많이 있어 대화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주 보고 하는 대화보다 톡이나 메신저로 대화하는 데 더 익숙해지고 있다. 대화하기 위해서 찾아간 찻집에서도 각자의 폰에 얼굴을 묻고 있고,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나온 음식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바쁘다. 앞에 있는 상대보다 익명의 사람들과 댓글을 남기며 폰과 대화하는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를 왜 왔는지 모르겠다. 대화의 상대 자체가 앞에 있는 사람에서 폰으로 옮겨간 것이다. 가끔은 잠시 폰은 접고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과 서로 단 몇 분이라도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해보자. 가족의 식사 시간에도 부모는 부모 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폰을 보며 식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보니 갈수록 대화가 단절된다고 한다. 우리 모두 폰에서 벗어나, 친구나 소중한 사람의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한 것인가.
대화하다 보면 서로의 차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논쟁이라고 해서 반드시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통하여 나를 더욱 잘 알게 되고, 상대를 아는 것이 나의 범주를 넓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에게 갇힐 때 아집이라 하고, 무조건 남의 의견에 수용하는 것은 무지이다. 대화의 목적은 차이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과 상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어 이해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대화가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주는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학생들에게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상담하느냐는 질문에 약 40%는 ‘친구’라고 응답한다. 그러고 아버지는 1%, 엄마는 아예 없었다. 그런데 60%의 보모들은 아이들이 자신과 대화나 상담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전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부모들은 자식들의 대화 상대에서는 왕따의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말이 안 통하는 간섭자, 방해자로 외면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대한민국 남편들이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지 않고 술집으로 가는 이유가 대화 상대를 찾아서란다. 집에 가면 부인도, 자식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는커녕 말할 상대가 없으니 재미없다. 술집에 가면 내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콧소리 하는 예쁜 마담이 있고, 어디로 가겠는가? 결혼 전 연애할 때는 친구들하고 술 마시는 것보다 나하고 미주알고주알 귓속말까지 하며 연애하던 것을 더 좋아했던 그 남자가 변한 것이다. 잡아놓은 집토끼 관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대화 상대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세상을 좀 살아보면 예쁘고, 멋지고, 아름답고 등 많은 것이 필요 없다. 말이 통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 최고다. 한마디로 대화 상대가 있는 곳으로 떠날 뿐이다. 남편을 술집에 빼앗긴 주부들이여, 오늘은 술집을 가정으로 옮겨와 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일 듯~! 술 한 병, 안주 한 접시, 연애할 때 그 이쁘던 마담까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대화를 어색함 없이 가장 많이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반쯤은 사랑하는 상대를 꼽을 것이고, 나머지 반쯤은 친구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최고의 대화 상대는 서슴없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친구를 꼽고 싶다. 거기에 한잔 술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라면 더. 사실 사랑하는 상대와의 대화는 진솔하기보다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상대다. 사람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앞에서 절대 솔직해질 수 없다. 긴 세월을 함께한 부부도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숨기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말은 하고 대화가 안 되는 첫 번째 상대가 배우자라 하지 않던가. 반면에 친구는 나와 유사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다. 그래서 항상 지속해서 대화할 수 있으며, 그렇게 대화가 지속 가능하다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취미동호회나 학회 등은 공통의 관심사를 열정적으로 공유한다. 그러나 애인은 우정과는 달리 공통된 관심사 없이도 사랑은 진행된다. 이처럼 우정에서는 공통된 것이 전제되지만, 사랑에서는 공통된 것이 나중에 오거나 영영 오지도 않기 때문에 친구가 애인보다 벽이 없는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이다. 수려한 미모를 보고 단번에 혹하는 것보다 서로 대화가 되고 지적인 자극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오래 가고 소중한 이유다.
대화를 많이 하고 있는데 뭔가 안 통하고 답답하다고 자주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말은 많이 하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가 말하는 대로 너는 바꿔야 한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상대가 바뀌겠는가? 대화의 기본은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경청에서 시작하고 수긍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들어주지 않고 내 말만 하니 말은 해도 대화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말은 하고 대화는 안 된다는 부부에게 둘을 묶어주는 강력한 섹스라는 도구가 있어 다행이다. 섹스는 두 사람이 나누는 특별한 신체적 대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논리나 합리성을 넘어서 서로 다른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화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뜨거운 눈빛, 다정한 속삭임, 부드러운 촉감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선물하고, 몸은 사랑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어 서로의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된 듯한 꿈을 꾼다. 이렇게 섹스는 사랑하는 두 연인을 강력하게 묶어주는 동아줄이다. 대화가 안 되는 많은 부부가 죽으나 사나 함께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상과 욕망을 나누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대화, 몸뿐만 아니라 영혼이 더욱 밀접해지는 대화, 강력한 유대감을 만들어주는 대화, 신이 인간에게 종족 번식을 핑계로 주어진 즐겨야 할 귀중한 생의 선물 같은 대화,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를~!
우리 삶의 성패가 상대를 설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서 대화를 통한 설득의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지시나 명령에 따른 권위의 시간은 가고, 대화를 통한 설득의 시대가 오고 있다. 대화를 잘하기 위해선,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고, 들은 말을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 즉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절대 필요하다.
형식적인 말을 많이 하기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의 꽃을 피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