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63
‘침묵(沈默)’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음’이라는 매우 간단한 뜻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침묵이다. 沈(잠길 침)은 水(물 수)와 음을 나타내는 冘(머뭇거릴 유)가 합쳐진 한자로 원래 물(水)에 양(羊)이나 소(牛)와 같은 제물을 빠뜨리는 모습에서 바뀌어 ‘가라앉다’, ‘즙(汁)’ 등의 뜻을 나타낸다. 默(잠잠할 묵)은 뜻을 나타내는 犬(개 견)과 소리를 나타내는 黑(검을 흑)이 합쳐진 한자로 ‘잠잠하다’, ‘입을 다물다’, ‘조용하다’ 등을 뜻한다.
불교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을 묵언수행[默言修行]이라 하는데, 말을 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수행하면서 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면벽수행(面壁修行)이라고도 한다.
창조적 사고에 관한 연구자인 윌러스는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해결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이다.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괴롭고 힘들면 무조건 그 문제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목욕탕에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가 대표적이다. 우리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불현듯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 경험을 한다.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침묵은 말을 준비하기 위한 쉬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핵심의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침묵은 무겁고 답답할 수 있으나 참을성이 있다. 삶의 큰 부분인 인간관계와 사랑도 말로 이루어지고 말로 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적당한 침묵이 있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의 말이 탄생해 인간관계와 사랑을 이어준다.
처음 시작하는 사이는 침묵이 어색하고, 끝나가는 사이는 대화가 어색한 법,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첫 번 만날 때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털어놓는다. 상대의 말을 정성껏 듣는 경청도 말을 잘하는 방법인데, 상대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바닥을 먼저 드러내는 일이다. 밑천이 드러나니 신비함이 없고, 신비함이 없으니 관계가 오래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침묵이 가장 잘 지켜져야 할 부분에 사랑만 한 것도 없다. 사랑은 둘만의 비밀의 성안에서 이루어지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침묵하기로 결단해야 하고, 나머지 사람을 모두 배제해야만 한다. 그래야 둘은 더욱 결합하여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이다. 사랑의 세 가지 금기가 ‘잠들지 말 것, 말하지 말 것, 보지 말 것’이란다. 세 가지 모두 은밀함이다. 말이 나오고, 엿보는 자가 생기고, 사회에 나오는 순간, 빛이 들어와 어둠이 물러가듯 두 사람의 결합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가는 것도, 신랑․신부에게 비밀의 장소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동물적인 결합 장소와 친지 및 친척들의 거처를 격리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랑에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침묵이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세상에 공개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공개 연애하는 커플치고 끝까지 잘 되는 것을 못 봤다. 아무도 몰래 숨어서 연애하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결혼한다고 하지 않던가. 청춘들이여, 사랑은 벙어리고, 침묵은 사랑을 키워주는 묘약임을 기억하라.
친구든 애인이든 배우자든, 침묵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마음을 번뇌에 빠지도록 한다. 관계가 먼 사람이라면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침묵에 못 견뎌 하고 지켜보지 못한다. 잠시 다툼 후에 말하지 않는 애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답답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 번 답답해 죽어봐’라는 침묵의 가장 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애인인 경우 침묵하는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구하지 못한다면, 영영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양한 열쇠로 애인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럴 때는 어설픈 노력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대로, 차라리 침묵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침묵은 말실수를 줄이고 화를 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말은 내 생각과 감정을 담아 상대에게 주는 매개체다.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대화라고 던지다 보면 꼭 사달이 일어난다. 침묵의 숙성을 거친 말을 보내야, 빛나는 말이 되어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침묵이라는 ‘비언어 대화(non verbal communication)’의 힘은 세다. 침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더 무겁고 깊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내뱉는 말속에 있지 않고, 침묵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침묵의 내면에서 말을 키우라는 뜻이다.
무릇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엄이 있다. 무작정 꺼내 들면 칼의 위력은 줄어든다. 칼의 크기와 날카로움이 뻔히 드러나는 탓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침묵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화할 때 말의 품격은 더해지고 말의 힘이 세지는 것이다.
이제 침묵은 대화의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다 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의견이 없는 건 아니다. 의견을 입을 통해 내뱉는 것보다, 안으로 삼키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그러는 거다. 하지만 때로는 침묵보다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정, 부당, 불의에 마주할 때가 그렇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살다 보면 속내를 다 털어놓아야 신뢰가 쌓이는 경우가 있지만, 반대로 덜 얘기해야 유지되는 관계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말할 때’와 ‘침묵할 때’, ‘다(all)’와 ‘덜(some)’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느 수행자는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소음과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침묵으로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가진 후에 말하라는 뜻이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영조 때 학자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에 실린 작자 미상의 가치 없는 말을 하는 자들을 비웃은 시조를 되새길 일이다.
부디 향기롭고 지혜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 위해 먼저 침묵하는 지혜를 배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