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02
‘교만(驕慢)’은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혹은 ‘겸손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겸손과 상대되는 개념이고, 오만(傲慢)과 비슷하며 오만이 좀 더 포괄적이라 할 수 있다. 驕(교만할 교)는 뜻을 나타내는 馬(말 마)와 소리를 나타내는 喬(높을 교)가 합쳐진 한자로, ‘교만(驕慢)하다’, ‘자만하다’ 등을 뜻한다. 慢(거만할 만)은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曼(길 만)이 합쳐진 한자로, ‘거만(倨慢)하다’, ‘게으르다’ 등의 뜻으로 교만은 말을 타고 높은 곳에서 보는 마음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교만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마음이라 일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선민사상이 우월 의식에 빠져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깔보게 된다. 우월 의식과 선민사상은 명분과 권력을 동시에 가진 지배 계급에서 주로 발생하여 집단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큰 죄악으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권력을 잡는 목적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다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높은 위치에 있는 지도자나 권력자들이 교만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교만을 일삼는 자들은 대체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어서 처벌은커녕 그 죄를 지적하기 어렵고, 밝히기는 더욱 어렵다. 또한 그 파급력은 나라와 사회를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교만이 지도자나 권력자들에 가장 위험한 것은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며 자신들의 강대함을 뽐내기 시작하면 해당 사회의 피지배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피지배층에는 도덕과 절제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도덕관념 바깥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나아가 신과 종교의 절대적 힘까지 교묘하게 이용하여 대중을 지배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에서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분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예는 수없이 많으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교만은 권력과 영향력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위험하게 작동한다.
이렇게 교만과 권력은 이웃 사촌지간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뗄 수 없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교만을 떨쳐버리기 어렵지만, 사실 공동체 안에서 권력은 어디서 오겠는가? 개인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해서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에게서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주어진다. 권력자가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공동체가 준 힘이 자기 힘이라는 위험한 생각이다. 자기가 곧 권력이라고 착각하면 교만에 빠지게 된다. 자기 마음대로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가 판단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판단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자기가 하는 판단이 최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에는 자기를 칭찬(아첨)하고 치켜세우는 자기편만 있으니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에서 한마디도 뭐라 하지 못하니 자기가 하는 모든 행위가 옳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니 점점 더 착각과 교만의 늪에 깊이 빠질 뿐이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딱 들어맞지 않는가.
그러므로 어느 사회나 교만은 가장 혐오하던 기질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큰 죄로 여겼다.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비극적 이야기는 교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절대 신에 도전하다가 잔인하고 가혹한 벌을 받는 내용들이다. 이것은 인간이 교만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교육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실에서도 홀로코스트와 같은 선민의식에서 발생한 잔인하고 불행한 사건들 상당수는 따지고 보면 교만에서 나온 것들이다. 자신이 소속된 사회나 신념에 대한 우월 의식이 너무 크면 다른 이들을 똑같은 자연인으로서 보지 않을 정도로 현실 인식이 마비된 결과이다. 아직도 인종, 종교 등의 수많은 차별 이면에는 '교만'이라는 보이지 않는 범인이 숨어있는 것이다.
교만은 어떤 마음에서 발현되었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첫째, 우월심의 교만(Pride of superiority)으로 자기의 능력 또는 직위가 다른 이들보다 월등하다고 여기는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전형적인 교만. 둘째, 자립심의 교만(Pride of independence)으로 자신이 이룬 성과가 순전히 자신의 노력이나 심성만으로 이루었다는 자립심에서 비롯되는 교만. 셋째, 야망심의 교만(Pride of ambition)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희망이나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에 중독되어 비롯된 교만. 넷째, 허영심의 교만(Pride of vanity)으로 다른 이들의 인정과 찬사와 같은 명예욕과 인정 욕구 비롯된 교만. 다섯째, 수줍음의 교만(Pride of timidity)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하는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교만. 여섯째, 면밀성의 교만(Pride of scrupulosity)으로 죄책감과 자기반성으로 비롯된 감성적인 교만함에서 비롯된 교만이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교만이 있으나 자신만의 독선에 따라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나 조언을 거부하는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는 전형적인 교만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만의 상대 개념으로 겸손을 떠올린다. 겸손은 미덕으로, 교만은 죄악시하는 것에서 비롯된 상대 개념이겠지만 사실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 부모, 사회, 학교에서 받아온 교육이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아닌가. ‘능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지만, 잠을 자는 토끼의 교만이 돋보이는 우화다. 요즘은 바다에 헤엄을 치며 사는 거북이와 육지를 뛰어다니며 사는 토끼를 경주시키는 것은 극히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는 반론의 주장도 공정과 공평을 우선시하는 시기적절한 반론으로 보인다.
야생의 세계에서도 맹수에게 달리기를 못하는 동물보다 달리기를 잘하는 동물이 더 많이 잡아먹힌다는 사실, 자동차보다 자신이 더 빠르다는 자만심이 있는 고양이가 개보다 더 차에 치여 죽는다는 사실 등, 모두 교만이 가져온 목숨값이다.
교만은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쉬운 일은 더 어렵게 만든다. 당연히 자신이 한 일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으려 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알아주지도 않는데, 앞으로 열심히 하나 봐라.'가 된다. 그 섭섭한 마음은 교만에 빠졌다는 뜻이고, 계속 그런 마음이라면 그 회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내가 미흡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한 마음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겸손했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다. 인간 세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나 교만은 위험할 뿐이다.
당연히 세상을 살면서 머리를 세우는 것보다 숙이는 편이 낫다. 들판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벼는 속이 빈 쭉정이만 매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나만이 잘났다 고개 들고 큰소리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교만하면 손해가 따른다. 영국 속담에 '머리를 너무 높이 들지 말라. 모든 입구는 낮은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머리 숙이고 입구를 통과하던 마음이 초심이다. 입구를 지났다고 고개를 치켜드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고개 숙인 낮은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인생 출구까지 가야만 한다. 욕심을 버리고 자세를 낮추는 것이 삶의 답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나일 수 있다. 당신과 나,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수많은 감정에 둘러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확증편향’에 빠진 교만한 인간이 나고 당신이고 우리다. 특히 여든 야든 정치인의 언행을 보면 눈도 하나 귀도 하나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우리가 ‘사람이 참 간사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내 아래 있는 것같이 보이고, 큰 힘이 생긴 것 같으면 조심해야 한다. 교만한 마음이 생겼다는 증표다. 늘 하는 일을 절제하고 점검하라는 뜻이다. 나에게 생긴 힘은 내 것이 아니라, 작든 크든 공동체가 준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공동체를 위하여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옛말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언행에 절제하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 교만한 까닭이다.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교만한 까닭이다.’라고 했다. 삶에서 성공과 실패가 교만과 겸손에 달려있다는 말.
부와 권력과 명예도 내 위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미덕으로 살아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