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08
남성이나 여성의 노출은 본능적이라 보긴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잘 내보이고 싶은 과시욕 중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맞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성에게 혹은 동성에게 자신을 과시해 보이려는 욕망이 있으며, 과시욕은 여성이 남성보다 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겉으론 자기만족이라는 이름으로 부인하지만, 과시욕이나 노출 심리는 이성의 눈길을 끌어 유혹하거나 유혹당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아름답고 젊어지기 위한 옷차림, 센스있는 액세서리의 연출 등이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시전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여 과시욕을 만족시키고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충분한 역할도 한다. 어떤 진화론자는 모든 생물은 자기 DNA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출, 패션, 액세서리 등은 이상하게도 성과 관련된 부분이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목걸이, 귀고리, 가슴에 장식된 리본이나 꽃, 벨트에 장식된 구슬 등이 그렇고, 요즘엔 은밀한 부위나 민감한 노출 부분에 문신(타투)을 그려 넣는다. 파티장이나 해수욕장에서도 노출 상태의 가슴에 매달린 리본이나 꽃은 더욱 자극적인 느낌을 풍겨 바라보기 민망해 눈길을 끌기는커녕 돌리기 십상이다. 이렇게 노출이 과한 옷차림이나 장식은 이성을 유혹하는데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20대 남녀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옷차림은 남녀 모두 ‘노출이 심한 의상’을 꼽았고, 다음이 트레이닝복, 평상복 순서였다. 반대로 최고의 의상은 남자의 경우 ‘섹시한 옷차림’, 여자의 경우 ‘깔끔한 의상’이었다. 남녀 모두 나와 상관없는 이성이라면 몰라도, 자신과 사귀고 있는 이성의 노출이 심한 의상이 편할 리 없다.
심리학에서는 노출 심리에 대해 타인을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과 민망하게 쳐다보는 것은 싫다는 모순된 행동으로 설명한다. 남자들은 유혹하는 것인지 거부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그 모호한 이중적인 행동이 남자들에게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노출 심리는 많은 이성의 시선을 끌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되는 면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이성에게 허락하는 것은 아니고, ‘시선은 끌되 선택은 내가 한다.’라는 숨겨진 마음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일단 시선을 끌어 많은 수컷을 모으고, 그중 경쟁에서 이긴 가장 강한 유전자를 가진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반면 민망하게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싫어하는 것은 자신을 싼 여자로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평소에도 빤히 쳐다보는 것을 싫어하는 면이 있는데, 노출된 상태의 자신을 눈요깃거리로 보는 것을 좋아할 여자가 있겠는가. 어찌 되었든 노출과 선택은 나의 자유, 나의 것이란 강한 표현이다. 시쳇말로 보는 것은 자유, 선택은 내가 한다는 고도의 이성에 대한 심리적 전략인 셈이다. 여성들의 전략에 속어 넘어가는 남자가 단순하고 숙맥(菽麥)인가? 하여튼 노출에 관해서만은 여성의 세상이 맞다.
여성과 남성의 노출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과거 중세에는 여성의 알몸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거나 예술작품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남성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기 쉬웠다. 알몸의 여성을 거래하는 노예시장이 있고, 미술 작품의 알몸 모델이 대부분 여성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의 알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우 드물었고, 벗은 몸을 변태처럼 인식했다. 같은 알몸이라도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사람들은 다르게 느낀다. 남성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적 흥분에 도달한다. 또 남성이 주도권을 잡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따라서 여성이 자기 몸을 드러내면 어느 정도 용납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여성들은 노출을 통해 다른 사람, 특히 남성들에게 관심과 찬사를 받으면 자연히 더 보여주려는 욕구가 생긴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들이 옷을 벗으면 바바리맨이 연상되거나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일반적이지 못하다. 남성의 노출은 남성적인 부분을 상대에게 보임으로써 겁주려는 심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노출이라도 남성과 여성이 다른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은 노출하면 할수록 짝을 찾거나 좋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유리하고, 남성은 반대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은 이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헤프게 보일까 봐’, ‘환상이 깨져버릴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적당한 노출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을 허락하지만, 자기를 신비의 베일 속에 감추려는 심리가 있어서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시상식의 여배우가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가슴을 가리는 행위,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핸드백으로 가리는 행위 등 모두 같은 이유다.
과감하게 신체를 노출하는 행위에 성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자기만족을 위해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자기의 몸을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다. 하긴 남의 시선을 끄는 방법 중 노출만 한 것도 없다. 눈길을 끌어야 할 대상이 꼭 이성은 아니지만,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눈길을 끌 만한 행동, 옷차림, 액세서리 등을 끊임없이 하면서 육체적 매력을 끌어올리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사회학자들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어려운 시대에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노출이 심하다는 입장이지만, 옷감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과감한 스타일이 옷은 확실한 자기주장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튀고 뭇사람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덤으로.
인간은 과시욕 본능이 있는데 특히 이성의 성적 본능을 자극해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싶은 심리는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여성들의 노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하의실종이나 탱크톱(어깨와 팔, 배꼽 부위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윗옷)을 입고서 가슴을 가리는 노출에 대한 교묘한 이중성을 활용하여 매력을 발산하는 행동은 앞으로 계속되고 더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자리잡을 것이다
노출에 관심이 없지만, 편해서 노출하는 여성도 있다. 화장도 안 하고 치마도 입지 않는데 가슴이 드러나는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는 타입들이다. ‘여자답게~’라는 말에 두드러기가 나는 ‘편하면 최고~’라는 여자들이다.
운동하기 좋은 봄이 되면 피트니스센터가 북적거리는 것이 여름에 노출하기 위하여 몸매를 가꾸기 위한 청춘남녀들 때문이라 한다. 특히 ‘몸짱’ 열풍이 불면서, 남녀를 막론하고 식스팩의 복근, 풍만한 가슴, 조각 같은 등 근육 등을 만들어 민소매, 탱크톱, 란제리룩, 하의실종 등의 노출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해수욕장에서 멋진 몸매를 자랑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방송도 과거엔 여자 배우의 노출 수위가 높으면 시청률이 높았지만, 지금은 남성의 노출 수위가 높아야 시청률이 높아진다니 아이러니다. 하긴 주로 드라마를 보는 층이 여성일 테니.
일반적인 여성의 노출 심리는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정신과적 면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정상적이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여성의 노출 심리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성적 의미보다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 충족이 주원인이다. 예뻐지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뭇 여성의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병적인 노출증이나 지나친 과시욕과 같은 정신과적 질병이 아니라면 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자신감과 자기 존중,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노출을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최고다. 현실감 없는 과도한 노출을 조심하고 사회가 허용하는 정도의 적당한 노출이나 때와 장소에 따른 적절한 노출은 여성 모두가 지향하는 매력 포인트다.
여학교에서 교복 치마 길이를 줄이려는 학생과 치마 길이를 내리려는 선생님과의 싸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동학대라는 벽으로 학생들의 옷에 강제하지 못하는 지금은 일단 학생들이 승리했다. 하지만 하의실종 같은 짧은 교복 치마가 교육 활동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학교가 몸을 뽐내는 장소인가, 공부를 하는 곳인가,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는 것이 맞는가?
아직도 여성들의 노출은 현재진행형이다. 라떼에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무릎 위에서 측정해 단속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하의실종’ 패션은 격세지감이다. 요즘 노출은 패션을 넘어서 페티시 룩(Fetish look)이 선보이고 인기를 끌고 있다. ‘페티시’란 ‘손이나 발 등 몸의 특정 부분 또는 옷가지나 소지품 따위의 물건을 통하여 성적 흥분이나 만족을 느끼는 일’로 특정한 사물에 집착하여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인데, 패션을 통해 만족하고자 하는 스타일이 ‘페티시 룩’이다.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패션 상품들이 얼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으로 확산하고 있다. 시각화를 통해 성적 자극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 그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진화해 지금의 보일 듯 말 듯 한 노출의 패션이 발달하고 있다.
앞으로 어디까지 내려올지, 어디까지 올라갈지, 얼마나 투명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