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외로움(孤)’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10
‘외로움(孤, loneliness)’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적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였을 때 등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 소통 수단이 온․오프라인으로 엄청나게 발달한 시대지만. ‘군중 속의 외로움’이란 말과 같이 개인적으로 외로움이 늘어나고 우울증과 자칫 자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정신과적으로 큰 병증으로 진행된다. 나아가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다고 느낄 때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 큰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의 ‘왕따’, ‘따돌림’, 그리고 회사생활 중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심리적, 사회적으로 소외시켜 외롭게 만듦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주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회적 외톨이인 은둔형 생활자들이 사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묻지마 범죄’는 외로움이 빚은 극단적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외로움의 원인으로,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존재적 관점과 산업사회로 인한 이주로 고향 문화를 잃거나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된 서구문화가 외로움에 원인이 되었다는 문화적 관점이 있다. 존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홀로 이 세상에 태어나, 홀로 인생을 살아가며 결국엔 홀로 죽는다. 또한 인간의 삶이 연속적으로 타인과 연결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외로움은 불가피하다. 이 바꿀 수 없는 사실을 수용하여 감사와 만족할 줄 알고 삶을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문화가 외로움의 원인이라는 관점도 수없이 올라오는 SNS 등의 온라인 소통 수단 홍수 속에도 증가하는 외로움, 우울증을 보노라면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외로움이 존재적이든 문화적이든 상관없이 의미 있는 관계의 결핍 때문이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관계의 양보다 질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젊어서는 타인과 관계 맺는 능력, 즉 대인관계의 기술이 중요하고, 나이가 들면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깊이 맺어놓았던 관계의 상실이 외로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매우 흔한 이별과 사별이 그렇다. 삶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는 것은 큰 슬픔이지만 외로움도 함께 찾아온다. 외로움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해체될 때 발생하기도 하며, 유학이나 취직으로 인하여 가족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났을 때 발생하는 향수병과 함께 오기도 한다.
그 외에도 외로움은 수없이 많은 방향에서 찾아온다. 민감한 성격의 사람들에게 모든 상황과 사건이 외로움을 일으킬 수 있고, 출산 후에 겪는 외로움으로 인한 산후우울증, 결혼생활의 불안정으로 인한 관계의 파괴, 불안 등 상황적 외로움이 정신건강의 문제로 악화되기도 한다. 외로움이 신체와 정신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주는 것을 알면서도 외로움 관리는 소홀하다. 해가 갈수록 전 연령대에서 외로움에 대한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으며 특히 노년층에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오프라인만을 고집하는 노년층은 젊은 층이 전자기기와 사이버 공간에 집중하는 사이 이방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여 상호 간의 연결 방식이 달라졌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외로움은 사회적 외로움(social loneliness)과 감정적 외로움(emotional loneliness)의 두 유형이 있다. 사회적 외로움은 사회 네트워크(social network)가 넓지 못하여 겪는 외로움이다. 자신이 어느 한 공동체에 속하였다든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나 동지가 있다든지 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적 외로움은 타인과 깊고 서로 성장하는 관계가 없을 때 발생한다. 이는 부모나 연인, 부부와 같은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를 통하여 충족된다. 감정적 외로움을 연인이나 부부와의 연결이 부족할 때 경험하는 로맨틱 외로움(romantic loneliness)과 가족 구성원 간의 가까운 연대가 부족할 때 발생하는 가족적 외로움(family loneliness)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가 3년이란 긴 시간 겪었던 코비드-19 팬데믹이나 이와 유사한 긴급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 조치로 인한 사회적 단절로 인하여 발생하는 봉쇄 외로움(Lockdown loneliness)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외로움에 대한 놀라운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젊은이가 노인보다 더 외롭다. 설문 조사를 해보면 노인보다 젊은이가 더 외롭다고 응답한단다. 가장 외로울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도 ‘젊었을 때’라고 말한다. 아마 젊음이 외로운 시기라는 뜻이다. 왜 그럴까? 젊은 시절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헤어지고 만나는 인간관계가 다양하고 민감한 감수성의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 나이가 들면 많은 경험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더 잘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둘째, 상당히 많은 사람(약 40%)이 외로움에 대해 긍적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외로움을 느껴야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동하며 살고, 새로운 친구를 찾거나 사람을 만나는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외로움이 아니라면 상당히 삶에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적당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사회성이 좋을 확률이 높다. 적당한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대응하는 능력이 높아질 수 있다. 넷째, 겨울이 더 외로운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축하하는 기념일이 많을 때 외로움을 느낄 것으로 생각하지만, 겨울보다 여름 휴가철에 혼자 남겨지는 것을 더 싫어할 수 있다. 외로움에는 계절이 없다. 다섯째,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공감 수준이 높다. 외로운 사람들이 부상 등의 신체적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보다 왕따 등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입장이 비슷한 사람끼리 느끼는 감정일 테니 어쩌면 당연하다.
외로움과 고독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 우울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만, 집중과 같은 인지 능력은 향상하기도 한단다. 그렇게 혼자 되돌아보는 시간을 고독이라 한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긍정적인 성장 경험, 종교적 경험, 고독한 탐색,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 등의 귀한 시간이 된다.
혼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데 혼자가 되어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일반적으로 활동이 활발한 젊은 나이에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젊어서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돌아다니게 된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계를 유지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는 시기가 찾아와 스스로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고독을 찾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에서 퇴장하는 시기가 되면 스스로 인간관계를 가지치기하게 된다.
인터넷에는 외로움을 극복하거다 대처하는 방법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모두 나름대로 효과는 있겠지만, 역시 최고의 방법은 혼자 노는 법을 개발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필요할 때마다 누가 나와 놀아 줄 것인가. 배우자, 가족, 친구, 동료 등 모두 제 살기에 바쁘다. 어쩌다 한 번씩은 몰라도 늘 놀아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특히 라떼를 남발하는 나이 든 꼰대와 누가 놀아 주겠는가. 꿈 깨라. 혼자 노는 것이 최고다. 혼자 노는 방법이 무엇이 있느냐고? 운동 겸 할 수 있는 산책, 독서와 글쓰기, 그림 그리기, 글씨 쓰기, 조그만 텃밭 농사짓기 등 수없이 많다. 혼자서 노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집에서 삼식이로 뒹굴면서 리모컨만 누르며 온갖 구박당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일어서 문을 박차고 나와라. 나오면 할 일이 생긴다. 최소한 산책이라도.
외로움의 최고 장점은 나를 똑바로 마주할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외로운 감정을 나쁘게만 보고, 무조건 없애야 하는 감정으로 보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외로움은 내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에 하나이며, 깨끗하게 지울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타인에게 집중했던 시간을 나에게 집중하고, 혼자서도 나 자신과 관계를 맺고 내 안의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밖이 아니라 안을 바라보는 시간,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우선이다. 결국 사람의 성장 목표가 자립과 독립이라면 누구나 홀로서기 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지만,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 집중하기보다, 그 시간에 ‘나’에게 집중하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렇게 외로움은 자신과 마주할 좋은 시기라는 점, 나와 깊은 대화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등이 결코 나쁜 감정도 아니고, 없애야 할 감정도 아니다.
외롭다고 생각할 때가 나 자신만의 인생 최고의 시간이다. 나를 보고, 나와 대화하고, 나 혼자만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