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12
‘상처(傷處)’는 ‘몸을 다쳐 부상을 입은 자리’를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피부 등의 표면이 찢기거나 잘리는 것 등으로 산상을 입은 상태’이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다친 자리를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마음을 다친 상태 즉, 마음의 병을 ‘병’이란 말보다 ‘상처’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하고, 더 중요한 의미로 다루어진다.
상처에는 몸에 난 상처와 마음의 상처로 나눌 수 있다. 몸의 상처는 정도에 따라 적당한 병원의 외과적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미세한 흉터는 남지만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 낫는다. 문제는 마음의 상처다. 마음의 상처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상처의 정도는 천차만별이고 보편적 상처라는 것이 없다. 모든 마음의 상처는 특수하고 특별하다. 어쩌면 그래서 마음의 상처는 추상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처를 추스르고 치료하는데도 왕도가 없고 어렵다. 또한 쉽게 아물지 않고, 사람에 따라 매우 심한 마음의 고통으로 남아 평생 가지고 간다. 심지어 어린 시절 부모나 형제에게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 때문에 평생 삶이 흔들리기도 하고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실제 인간의 삶에서 몸의 상처는 생명에, 마음의 상처는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과 정신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부분이 사람의 마음을 다루며 상처를 살피고 치유하는 분야이다.
이렇게 치유해야 할 마음의 병으로 취급되는 마음의 상처는 몇 가지 특징적인 증상이 있다. 첫째, 재경험(re-experience)이다. 마치 고통스러웠던 그 사건을 다시 겪는 듯한 현몽에 시달리거나, 반복해서 그 다시 장면을 회상하게 되어 똑같은 공포를 경험한다. 둘째, 과잉 각성(hyper arousal)이다. 아무 때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마음이 조급해지며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각성된 몸과 마음은 만성적인 불면을 일으키기도 한다. 셋째, 회피(avoidance)이다. 상처를 입은 이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을 피하려 한다. 처음에는 상처와 관련된 장소, 사람을 피하다가 점차 외부의 모든 자극과 접촉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들 마음의 병 증상은 상처의 크기에 따라 잠시 그러다 말기도 하고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수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마음의 상처 원인은 삶의 전 부문에서 온다. 우리 삶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 일 중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상실, 이별, 특히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다. 또한 가장 많은 마음의 상처가 되는 무기가 ‘말’이다. 모로코 속담에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연못에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라는 말처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심지어 인류 역사 이래,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지 않던가. 재미로 맞아 죽고 싶은 개구리가 없듯, 상대의 말에 상처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을 경계하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에 상처받은 사건을 확대하고 기억하게 된다. 상처를 통해 다시는 다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거나 받은 상황을 기억하며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노력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과한 것이 문제다. 현실로부터 사건을 무한 확대 재해석하고 왜곡해서 보는 것이다. 이것도 상처에 대한 고통 때문에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생존본능이겠지만, 상체에 대처하는 정상적인 자세는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길의 첫 번째는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행복보다는 고통의 순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삶에서 발생하는 무슨 일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또한 삶의 슬프거나 기쁜 모든 일들은 잠시 나와 함께 하는 것이지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상처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듬고, 자신을 위한 음식, 휴식, 안정적 환경을 준다.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자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울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상처를 회복하는 중요한 단계다. 만약 우리 주변에 상처를 입은 이들이 있다면, 우리 또한 그들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귀담아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소연하고, 하소연을 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술 한 잔 기울이며 긴 시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하소연하고 하소연을 들어주는 과정이다. 더구나 먹는 안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 상사, 버릇없는 부하 등의 곁들인 안주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렵고 힘들 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풀린다. 이때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셋째,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몸에 상처도 덧나면 잘 낫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도 똑같다. 마음의 상처도 덧나지 않도록 약을 발라줄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려면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것이 먼저다. 상처를 입었을 때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아가 정신과나 심리상담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몸과 마음의 상처가 자신에게 피해만 주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한편으론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바람에 흔들리고 눈보라에 시달리고 태풍을 견딘 나무가 큰 나무가 되는 되듯, 사람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이겨낸 사람이 세상의 풍파도 이겨내며 잘 살아간다.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수많은 실패의 고통도 모두 상처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고통스러운 상처 속에 성장과 깨달음의 기회가 있었다. 그 아팠던 상처들이 모여 성공의 밑거름도 되었다.
우리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없고, 그동안의 모든 후회와 실패들을 회복할 수 없고, 가보지 않은 길을 다시 가보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품고 계속해서 떠올리고 고통을 느끼는 것은 반복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가. 피부에 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과 같다.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산다 해도 똑같은 실패와 실수를 할 것이고 상처는 받는다.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으니, 살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없다. 구창모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노래도 있다. 실연의 아픔은 이야기하는 노래지만, 제목만큼은 정직하다. 아픔에 비례해서 성숙해지는 것이 사랑을 포함해 세상만사에 다 적용되는 것이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있다. 몸과 마음이 성장하면서 아프고 상처받고 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질 테니. 한마디로 몸과 마음의 성장통일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상처받길 원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받는 어쩔 수 없는 상처가 성장통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상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는 데 필요한 것이 상처를 부정하지 말고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다.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닌 게 아니다. 상처를 입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상처를 인정한다는 것은 상처를 들여다볼 줄 안다는 것이다. 상처를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상처를 지혜롭게 치료하겠는가.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행복보다 고통의 시간이 자주 온다.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상처를 인정하고 나으면 다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상처를 통해 더 성장할 수 있는 성장통의 기회로 삼는다면 더 나은 내일이 다가올 것이다. 상처가 절망만은 아니다. 상처에서도 희망이 자랄 수 있다.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삶은 없으니,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예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상의 황혼』 서문에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라는 말로 장식하고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처 입은 사람이 그 상태로 머물면 안 된다고 했다. 누구나 상처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이 성장하고 생의 활력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상처 속에서 치유의 힘을 발견하라는 얘기다. 상처를 하루빨리 아물게 하는 데는 긍정마인드가 상책이란 말을 덧붙이면서 웃으라고 주문했다.
오늘 가장 잘 웃는 자가 내일도 웃고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몸이나 마음의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여 성장통으로 삼고, 다시 더 큰 희망을 찾아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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