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13
인생을 살면서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는 인간의 숙명이다.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에게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하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상처 대부분은 사람에게서 받는다. 특히 현대생활은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한 기쁨도 있지만 스트레스도 많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 중에 특히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상처를 많이 받는 점은 바로 복잡한 관계에서 오는 갈등 상황이다. 상사는 상사대로, 부하는 부하대로 직장이 힘든 이유가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보기 싫은 인간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면 가까운 사람은 괜찮은가.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가까운 관계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가까운 관계 중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만큼 아픈 것도 없다. 애정의 달콤함에 빠져 세상 전부라고 믿었던 상대에게서 받는 상처이기에 그만큼 깊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연약함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그것도 청춘 한때의 경험이고 추억이라 가볍게 생각하는 것으로 치유한다. 그런 면에서 ‘너 혼자만의 사랑~! 나 혼자만의 사랑~!’을 외치며 ‘Only Yes~!’의 사랑을 구하던 기성세대보다 ‘사랑도 No, 결혼도 No, 연애만 Yes’의 요즘 MZ세대 젊은이들은 사랑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안부와 위로가 상처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과 관심의 표현으로 안부를 묻고, 무심코 묻는 말 한마디가 안부와 위로의 경계를 넘어 상처의 영역으로 넘어가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때가 자주 있다.
명절이 되면 전국구로 흩어졌던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마련이다. 화기애애하게 술 한잔하면서 놀던 중 별 뜻 없이 한마디 했다가 딸 아들에게 말로 두들겨 맞았다. 결혼한 아들과 딸은 아들 손자만 둘씩이다. 결혼해 아이를 안 낳고 있는 막내딸도 있고 해서 웃으면서
“아빠가 셋째를 낳을 때는 출산 의료보험도 안 되었는데.”
“요즘, 셋째 낳으면 돈을 엄청나게 주데~!”
셋째인 막내딸이 똑바로 눈꼴 치며 하는 말
“아빠~!”(너무 큰 소리라 깜짝 놀람)
“요즘 꼰대가 명절 때 가장 하면 안 되는 말이 뭔지 아나?”
“취직 언제 하냐? 결혼 언제 하냐? 애 언제 낳냐?”다.
“같이 술 못 마시겠네.”
큰딸 하는 말
“주는 돈보다 들어가는 돈이 열 배는 더 들여요.”
“며느리 앞에서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같이 못 논다.”
한마디 했다가 두 딸에게 완전 쌍폭탄 맞았다. 이렇게 나는 별 뜻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 딩크족인지 아이를 못 낳는 부부인지 속사정도 모르면서 ‘즐기면서 사니 좋겠다.’, ‘피임 안 해서 좋겠다.’라는 등의 말은 난임 부부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안부 인사랍시고 ‘공부 잘하고 있나?’, ‘어느 대학 갈 건데?’ 등의 말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꼭 해야 할 과제나 숙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아무 말 대 잔치’ 쯤으로 치부하자. 미리미리 가까이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하시길~!
김혜남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에서 “상처는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엇인가 원하는데 그게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 상처받는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무언가 바라는 마음, 즉 ‘욕심’이 상처의 원인이라는 것. 바라는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비결이란 것을 잘 알지만,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기에 상처받고 산다. ‘적당한 욕망’이란 무엇인가? 거창하게 질문하지 않아도 실천하기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최소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능력을 고려한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회의 석상에서나 술자리에서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세상을 가장 편하게 사는 비법을 하나 말하면, “상대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부탁할 때, 상대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요구해라.” 거기에 덧붙여 “내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 요구하세요. 능력 밖의 요구를 했다가 상처받지 말고~” 인생 명언이라며 입에 발린 말과 ‘요구하지 말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00 선생님~! 너무 영악해요’라는 애교 섞인 불만도 듣곤 했다.
이렇게 상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받기 쉽다. 사랑만큼 상대에게서 받고 싶은 것이 많을 때가 없다. 사랑도 받고 싶고, 관심도 받고 싶고, 시간도 받고 싶고, 선물도 받고 싶고 등 받고 싶은 것이 많은 만큼 상처받기 쉬운 것도 당연하다. 원래 사랑은 주는 것이라 했는데, 그 원리를 어기고 받으려 하니 상처를 포함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받으려는 사람이 상처받을 수밖에.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만큼만 주고, 상대가 주는 만큼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사랑을 하면 열정이 없다고 상대가 도망가기 바쁘다. 그러니 모두 주고 모두 받으려 하는 것이 사랑이다. 불가능한 사랑을 바라는 것이 사랑에서 상처받는 원인이다. 또한 사랑의 상처는 아프기는 이를 데 없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아이러니가 가장 자주 표출되는 것이 사랑이니.
원래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부작용이 없다. 부작용 덩어리는 사랑받으려는 마음이고, 상처의 원인이 되며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진다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미워질 수 없는 마음이다. 속은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마음 뒤에 숨겨진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워진다. 친구는 의리가 있는지 없는지? 사업 상대는 신용이 있는가 없는가만 보고 사귀면 된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결혼은 아니다. 그래도 연애 상대는 좋아하면 그만이지만, 결혼 상대는 사랑만 보는가? 전혀 아니다. 사랑은 뒷전이고 인물도 봐야 하고, 경제력도 봐야 하고, 직장도 봐야 하고, 집안도 봐야 하고, 보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결혼을 하니, 세상에 그 많은 것을 만족할 결혼 상대가 흔치 않다. 아니, 단언컨대 없다. 사랑을 가장하고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아니라서 상처받고 후회한다. 기껏해야 밖에서 한두 시간 보는 연애와 한 집에서 하루 종일 보는 결혼생활이 어찌 같겠는가. 같을 수 없는데, 같을 것이라 믿는 것부터 잘못되었으니, 갈등이 생기고 부딪쳐 상처받는다. 일반적으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어쩌면 많은 부부의 갈등 원인이 되는 말이다. ‘당신과 나는 하나야’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사랑한다는 부부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 상처의 시작이다. 사실 상처는 남이 주는 것 같지만 내면을 살펴보며 자기가 받는 것이다. 상처 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잘살고 있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 안다. 인정하고 대충 넘어가면 스트레스나 상처도 받을 일이 적다. 주위에서 성격이 원만하고 서글서글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너는 너, 나는 나’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당연히 상처도 적게 받고 산다.
사랑의 상처도 시련을 통해 서로 용서하고 상처를 덧나지 않게 잘 아물게 하여 희미한 흉터로 바꾸어 가면 삶을 단단하게 할 수 있다. 견뎌낸 아픔만큼, 흘린 눈물만큼 부부는 더 튼튼한 동아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원래 사랑은 기쁨과 환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고통이 함께하는 것이 본질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을 걸으며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가는 여정도 함께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사랑이 어찌 완전하기를 바랄 것인가. 불완전하다는 사랑의 속에서 완전한 사랑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내일은 좀 덜 불완전한 사랑을 만들어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바라던 사랑의 모습이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친구, 가족, 배우자를 인정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상대가 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상처받지 않는 원만하고 화목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시길~!
https://brunch.co.kr/@dd05cb7dd85a42c/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