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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Oct 25. 2023

116. ‘증오(憎惡)’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16

증오(憎惡)’는 사무치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으로 몹시 미워하는 마음이다. 憎(미울 증)은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曾(일찍 증)이 합쳐진 한자로 ‘밉다’, ‘미워하다’ 등을 뜻한다. 惡(악할 악/미워할 오)는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亞(버금 아)가 합쳐진 한자로 ()하다’, ‘나쁘다라는 뜻의 형용사로 쓰일 때는 ’, ‘미워하다의 동사로 쓰일 때는 로 읽는다.

특정 대상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혐오(嫌惡)’라는 말이 있는데 증오보다 덜한 감정이다. 혐오는 대상이 싫어서 피하거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 내지 치우고 싶은 소극적 개념이라면 증오는 분노 때문에 대상을 해치고 싶다는 공격적 감정이다. 혐오범죄라는 말보다 증오범죄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데카르트도 ‘증오는 어떤 나쁜 것’ 혹은 특정 집단에서 제거되도록 촉구되는 것이라고 정의했으며, 프로이트도 ‘어떠한 불행 혹은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고 하는 자아의식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증오를 매우 깊으며 참아야 하는 감정으로 생각하고, 화나 적대감을 개인집단사물에 대해 가지는 것이라 본다.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누그러지지만, 증오는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오히려 깊어지고 강력해져서 심할 때는 살인까지 일으킬 수 있는 지속적인 태도나 성향이다. 사랑의 증오만큼 격한 것은 없다.”라는 프로펠로티우스(로마시인)의 말처럼 사랑이 증오로 변하게 되면 더욱 강렬해지는데치정(癡情)살인의 원인이 된다.

어떤 사람이 미워지는 중요한 요인은 나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에 다르고 미운 정도도 달라진다. 나에게 영향을 직접 주는 태도와 행동에 대한 ‘직접 증오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태도나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는 ‘간접 증오가 있다는 말이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미움의 감정이 생길 수 있고, 심해져 혐오나 증오의 단계까지 넘어갈 수 있지만, 말 그대로 ‘나만의 감정이다. 미움, 혐오,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피해는 당연히 본인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해서 미워하는 감정이나 불이익이 상대방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미워하는 그놈은 밥 잘 먹고 멀쩡하게 잘 살아간다. 계속 찜찜하고 불쾌하며 기분 나쁜 것은 라는 사실이다. 길을 지나다 피어있는 예쁜 꽃을 보고 너무 곱고 예쁘다~!’라며 감탄하고 예뻐하면꽃이 좋은가내가 좋은가? 길가에 꽃도 예뻐하면 내가 기쁘고, 미워하면 내가 우울해집니다. 미움과 증오도 똑같다. 그래서 많은 성인과 선지자들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는 것이다.

버리지 못한 미움은 결국 미련이라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고 더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내 삶만 망가지지 미워하는 사람의 삶은 그대로이다. 거기에 더 화가 나고 악순환은 반복되어 나는 없고 상대만 남게 된다. 이게 무슨 현명한 처신이겠는가. 내가 있고 상대가 없어야 할 것을 왜 그리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다. 불가능한 일을 놓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사니 불편하고 괴롭고 힘들다. 너는 너나는 나라는 쿨한 마음으로 내려놓는 것이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다. 또한 내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나 지구촌에서 많은 문제가 되는 이슈 중의 하나가 증오범죄(憎惡犯罪)이다. 증오범죄는 다른 인종국적종교성적(性的취향을 가진 사람들혹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말한다. 쉽게 말해 기존의 범죄에 편견이 더해진 범죄다. 인종 차별, 백인 중심주의 등에 의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학살이나 테러, 성격 차이, 장애인에 대한 범죄도 포함된다. 편견이 포함된 범죄라 해서 편견 동기 범죄(bias-motivated crime)’라고도 한다. 증오범죄가 더 나쁜 것은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등의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 장애인, 노인 등 더불어 보호하고 보듬고 함께 가야 할 사회적 약자층이 주요 범죄 대상이라는 점이다. 

증오범죄가 법에 따른 규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으로 인식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인권과 법률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인간성을 무시하는 구시대적인 가치나 이데올로기가 규범화되어 있는 사회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는 “증오범죄 행위자는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이를 정당화한다.”라고 주장하며, 대표적으로 독일 민족주의자들의 유대인 학살, 미국의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한 노예 제도 운용 등을 편견적 사고방식과 가치체계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도 사회적 약자(외국인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 등)에 대한 ‘묻지 마 범죄’, 정치적 의사 및 확신에 근거한 반대편 공격행위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불만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상황에서 법을 정비하고 이들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겠다. 또한 살인, 상해, 폭행 등의 직접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정도를 넘어선 증오 표현, 증오를 이용한 선동 등도 범죄로 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괴벨스의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혐오 및 증오 표현을 통한 선동은 보기도 듣기도 거북하고 선은 넘은 악의 말 잔치일 뿐이다. 

미워하거나 미움을 받는다는 것 모두 그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일 때 가슴 아프고 불행하다. 특히 증오의 원인이 자기의 말과 행동이 아닌 존재 자체라는 사실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절망적인 일이다. 또한 대화 중에 나 자신이 밉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나 증오는 가장 큰 절망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자기의 삶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이다. 나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는 것무엇보다 먼저 멈추어야 할 감정이다. 하지만 사랑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사랑의 환상에 빠진 사람이 이별이나 상실의 고통을 겪으면서 함께 오는 자신에 대한 자책이 이렇게 나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로 옮겨가는 것이다. 하긴 사랑에 대한 증오의 마음도 일종의 사랑을 향한 커다란 그리움의 또 다른 마음이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괴테도 증오는 적극적인 불만이요질투는 소극적인 불만이다따라서 질투가 증오로 바뀌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 마음 설레는 사랑이 올 때는 미움과 질투, 그리움과 아쉬움, 심지어는 증오도 한배를 타고 오는 승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내가 사랑했던 대상은 그저 자기 생긴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 특별히 환상에 빠질 것도 열광할 것도 없다는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증오는 현실적일 수 있다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하던 것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증오의 현실주의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환상에 빠진 우리를 현실로 되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정상적인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증오는 정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런 사랑은 없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듯, 사랑에서 미움으로, 미움에서 증오로, 다시 증오에서 그리움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다만, 제 안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할 뿐이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나를 아는 것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긴 세월 가장 유명한 말이 된 이유 아니겠는가.

불교에서 8가지 고통(八苦) 중에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 살아야 하는 고통이다. 왜 인간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을 주고, 미워하는 사람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고통을 줄까. 그것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만나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 친해지라는 신의 섭리가 아닐까. 미움도 정이다.’라는 옛말의 진짜 의미는 미움이 깊어질수록 없던 정도 생긴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면 원수가 더할 수 없는 친한 사이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증오가 있으면 지옥배려가 있으면 천국이란 말이 있다. 미움에 점 하나만 옮기면 마음이 되는 것처럼 증오보다 배려의 마음으로 옮기시기를~! 

아니면 최소한 내가 사람들을 미워할 자유가 있듯 사람들도 나를 미워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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