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석연 Nov 06. 2023

119. ‘인정(認定)’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19

인정(認定)’은 옳거나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뜻한다. 認(알 인)은 뜻을 나타내는 言(말씀 언)과 소리를 나타내는 忍(참을 인)이 합쳐진 한자로 ‘알다’, ‘인식(認識)하다’, ‘인정(認定)하다’ 등을 뜻한다. 定(정할 정)은 뜻을 나타내는 宀(집 면)과 소리를 나타내는 正(바를 정)으로 이루어진 한자로 ‘정(定)하다’. ‘결정(決定)하다’, ‘선택하다’의 뜻을 가진다.

인터넷이나 SNS 채팅방에서 동의하거나 공감할 때 이를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인정을 초성으로 ㅇㅈ이라고 표현하고, ‘ㅇㅈ’에 반대되는 개념인 ‘인정할 수 없다’를 ㄴㅇㅈ’(노인정)으로 소통하는 줄임말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엄지족들의 고유한 표현 방식이라 하겠다.

인정은 그 주체가 상대와 나 두 주체가 있고 의미도 매우 다르다. 상대가 인정하는 것은 내가 인정받는 일이고내가 인정하는 것은 상대나 어떤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수용(受容)’의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 인정받을 것이 없다면, 최소한 이해라도 받고 싶다. 인간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이다. 타인에게 자기가 어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및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자부심으로 살아갈 맛을 느끼고 삶의 목표를 만들게 한다. 인정 욕구가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해결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대결 구도에서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을 승부욕이 강하다 한다. 승부욕은 긍정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좋은 곳에 쓰여 세상을 좋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타인보다 높은 위치에서 군림하거나 갑질을 하기도 한다. 적극적 인정 욕구 외에도 자신의 욕망이나 처지를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타인에게 ‘너는 가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계층설에 따르면, 인정 욕구는 생존을 위한 의식주가 해결되고(생리적 욕구), 전쟁과 재해로부터 보호받으며(안정 욕구), 가족을 이루어(소속과 애정의 욕구) 함께 하는 집단에서 내 의견을 인정받고자 하는 기본적 욕구라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의해 처음 제시된 인정투쟁 이론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는 주장이다. 최근 온라인의 SNS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기과시 등 일련의 행동이 모두 ‘인정투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맛에 산다. 그러니 당연히 삶도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투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다른 사람의 인정에 대한 갈구라고 했다. 나아가 헤겔은 우리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도 먹고 살기 위함보다 그 활동을 통해서 승인받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벌이는 파업도 단순히 임금을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본다. 자기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라는 요구이다.

권력투쟁이 그 목표가 권력의 획득이라면, 인정투쟁은 그 목표가 인정의 획득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투쟁이라 표현할 만큼 인간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마음, 더 나아가 그 결과물로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이렇게 인정받으려 하는가? 사람은 가까운 타인이 ‘나’를 겪어보고 느낀 이미지로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에 맞게 행동하려 한다그러므로 인정 욕구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인정 욕구 자체는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인정 욕구가 지나치게 심할 때 문제가 되고 부작용이 나타난다. 지나친 인정 욕구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거나 왜곡하고, 허세와 가식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기 쉽다. 또한 자신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온갖 변명이나 거짓,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상대가 바라는 모습으로 연기를 한다. 결국 인정받으려는 자기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비방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내 이미지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타인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모습이 혼합된 결과다. 지나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탓이다. 그 과함을 잘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공개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서로 경쟁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는 것은 가장 큰 잘못이다. 상대도 나와 같은 존재이며, 그도 나와 같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똑같은 사람이다. 내가 인정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면, 상대도 나를 인정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너무 목매는 생각이 나는 없고 무수히 많은 상대만 존재하는 세상이 된다. 내가 존재하고 상대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되어야 맞지 않은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이다.

많은 사람이 인정 욕구를 좋지 않은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본능적인 인간의 욕구이고 적당한 인정 욕구는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요즘 SNS가 발달하면서 자기애 과잉이 심해지고, 인정 욕구를 채우는 방법에 변화가 생기면서 좋게 보지 않는다. 인정의 개념이 세속적으로 변질되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SNS다. 과거엔 자기과시를 위해선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 했고, 큰 노력이 필요했지만, SNS는 그런 번거로움을 일시에 해결해 준 신세계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 상상, 허상이 교차하는 대표적 공간이다. 인터넷 공간은 ‘인정 욕구’에 굶주린 관종들이 우글거리는 정글로 변했고, 그런 관종들은 SNS에 중독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인 양 유혹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정 욕구가 너무 과하고 민감하면 상대방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거나 정상적인 조언 등을 망설인다. 결국 속마음을 억누르며 살아가게 되고 자신을 궁지로 빠트려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타인과 친밀한 사이로 발전하기 위해서 상대의 눈치만 보지 말고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려 무리하지 않으며 자신과 바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다면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만 집중하지 말고, 상대방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전문가는 더 이상 타인에 비친 나라는 인정 욕구에 휘둘리며 자신을 비하하지 말고지나친 인정 욕구를 버리고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고 한다돈, 권력, 명예, SNS 팔로워 등에 필요 이상의 충족을 바라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인정 욕구와는 거리가 있다. 나아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은 가치가 없다.’라는 논리로 변질되면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정받고 싶은 심리에 관하여 이야기했다면, 다음은 인정하는 주체가 되어 타인의 행동이나 결과,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를 받아들이는 인정하는 것에 대하여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정받기를 바라면서도 인정하기는 싫어한다. 인정하면 지거나 패배한 것으로, 양보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명약이기도 하다. 모든 운동의 기본이 육상이라면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화근은 부정당했다고 느끼면서 시작된다. 인정을 해주고 인정을 받는 일에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도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방법이 인정이다인정은 마치 인간관계의 비타민과도 같다.

인정하는 것에 제일 먼저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장점만 보는 것도, 자신의 단점만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거울에 비친 그대로 자신을 보고, 상대를 보는 것이 상대를 똑바로 인정하게 된다. 장점도, 단점도, 상처도, 열등감도 모든 사람은 인격적으로 대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상대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인정~! 받는 게 중요할까, 하는 게 중요할까? 받는 것도 중요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일등 지혜이다.

인정~! 받는 게 쉬울까. 하는 게 쉬울까? 하는 게 쉽다. 받는 일은 남의 일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하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당연히 인정받는 일보다 인정하는 일이 훨씬 쉽다. 인정하는 것의 가치와 행동하기 쉽다는 것을 알지만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삶의 딜레마다. 

    

상대를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면의 성찰과 자기 인정이 완성된 사람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이든 인정하는 것보다 편한 삶은 없다.

남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남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118. ‘옷(衣)’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