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석연 Nov 02. 2023

118. ‘옷(衣)’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18

 ()’은 몸과 외모를 보호하거나 꾸미는 것들의 총칭이다. 衣(옷 의)는 옷을 입고 깃을 여민 모양을 본뜬 한자로 ‘옷’, ‘의복(衣服)’, ‘입다’ 등을 뜻한다. 옛날엔 상반신에 입는 옷을 (옷 의), 하반신에 입는 옷을 (치마 상)으로 하여 합쳐서 衣裳(의상)이라 하였다. 

옷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3요소 중 하나이다. 옷을 입는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큰 차이 중 하나이다. 인간 이외의 생물은 대부분 평생 옷을 입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기본이며 당연하게 여긴다. 옷을 입지 않고도 집단생활에 지장이 없이 잘하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옷’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인간만은 옷을 만들어 입고 옷에 집착할 정도로 꾸미며 알몸을 부끄럽고 상스럽게 여긴다.

그러면 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입게 되었을까? 창조론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옷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었던 나뭇잎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화론의 인류 조상은 옷을 입지 않았고, 다른 동물과 다름없는 나체에 훨씬 더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다 신체에 털이 사라지게 진화된 이후 맨몸으로는 더위와 추위를 막는 데 한계가 있어 몸을 보호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주변의 재료로 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 옷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는 지능과 기술을 갖고 있어 좀 더 신체에 맞고 적합한 옷을 만들어 입게 되었다.

시대적으로 인류가 옷을 입게 된 시점은 100만 년 전 불을 다루게 된 이후부터 가죽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석에서 발견된 옷의 기원은 4~5만 년 전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떼어내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고, 크로마뇽인들은 동물의 뼈로 만든 바늘을 사용하여 상하가 분리된 옷을 만들어 입은 흔적이 있다. 또한 상아로 만든 팔찌나 물고기의 뼈로 만든 목걸이 등의 장신구까지 착용했다고 한다.

옷의 주요 기능은 첫째신체 보호 기능이다. 더위와 추위 등 외부 환경, 외부의 충격이나 마찰, 태양의 자외선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방어한다. 방한복과 같은 수많은 기능성 옷, 장갑, 갑옷, 방탄복, 우주복 등의 특수복을 착용하는 이유다.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여성들의 정조대 역할을 하는 것도 옷이다. 둘째가리개 역할의 정숙성과 비정숙성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아담과 이브와 같이 맨몸을 몹시 부끄러워했고,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정숙성으로 옷을 착용했다는 것이다. 수치심이라는 도덕적 관습이 발생한 사회에서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와 반대로 몸에 관한 관심을 끌기 위한 비정숙성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의 노출 패션을 탄생시킨 것이 비정숙성이다. 옷은 가리기 위해 입기도 하고, 적당히 보여주기 위해 입기도 한다는 것이다. 셋째장식의 기능이다. 현대에 가장 큰 파급력이 있는 기능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 성적인 매력 발산, 타인의 관심 끌기, 용기와 지위의 표현 등을 위해 옷을 입는다. 한마디로 옷은 자아의 연장선 위에 있는 중요한 자기표현을 위한 강력한 도구이다. 사실 옷의 장식은 배우자나 친구, 신하 등의 관심을 끄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오늘날 옷이 패션이란 산업의 큰 영역으로 자리 잡게 한 기능이다. 넷째구분해 주는 기능이다. 옷은 탄생부터 인간과 동물, 문명과 야만을, 사람과 사람을 구분시켜 준다. 과거 궁궐에서처럼 신분과 계급에 따라 강제적으로 옷을 구분해서 입게 한 적도 있다. 오늘날이야 신분에 따른 옷의 구별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지금도 명품 등은 빈부의 표식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 경찰, 소방관, 종교 지도자 등과 같이 직업과 신분을 빨리 확인시켜야 할 때, 경기, 행사 등에서도 상대 또는 역할을 구분할 때 옷을 활용한다.

사람을 구분할 때 옷을 사용하다 보면 옷 자체에 권위나 힘이 형성되기도 한다. 권위와 세력, 품위 등을 조용한 방법으로 알리는 수단이다. 제복의 경우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하고, 제복을 입는 본인에게도 영향이 있다. 일할 때 사복을 입는 것보다 제복을 입는 것이 더 큰 책임감으로 역할에 몰입하게 된다. 평소 매우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껄렁껄렁한 언행을 보인다는 것은 남자들이라면 다 겪어본 일이다. 몸에 걸치는 옷이 어느 정도 사람의 인격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옷에서 성(性)적인 요소가 많이 숨어 있다. 인간은 성에 대한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맨몸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 욕구 중에 가장 이성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성적 충동을 일차적으로 통제하는 장치가 옷이다. 남성의 경우 공격의 일차적 장애물, 여성의 경우 방어의 일차적 보호막 역할을 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러한 성적 욕구를 관리하겠다는 뜻이고, 이렇게 성적 욕구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옷을 입는다는 자체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 문명 상태에 소속되어 있고 문명인이란 확실한 증표이다.

옷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한국인의 옷차림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처럼 옷을 잘 차려입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패션의 도시라는 파리를 가 봐도 활보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서울의 거리만큼 세련되고 화려하지 못하다. 등산복을 전 세계의 만능 외출복으로 퍼뜨린 나라, 몸의 굴곡이 그대로 보이는 레깅스라는 운동복이 몸 패션복이 된 나라 등 옷에서라면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K-패션 아닌가. 오죽하면 외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올 때 한국 사람의 행색으로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미용실이 갖춰져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있겠는가.

요즘 패션의 화두는 얼마나 잘 입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벗기느냐인 것 같다. 옷을 잘 벗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노출 패션 디자이너들은 실감하고 있겠지만, 보는 사람도 적당히 잘 벗은 노출 패션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보기 불편한 노출 패션이 사람들의 눈 둘 곳을 없게 만들고,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입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하와이가 천국인 이유가 아담과 이브처럼 벗고 다니는 비키니 차림이 많아서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잘 벗어야 천국이 된다는 논리 아닌가. 뒤집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들이 옷장에 옷이 가득한 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라고 푸념하는 것처럼, 옷은 남자보다 여자의 전유물인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 피부관리, 패션에 관심이 있는 젊은 남자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남성은 백화점 옷 쇼핑부터 질색한다. 백화점 옷 판매장 고객 90% 이상이 여자이고, 외출 목적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하여 옷을 챙긴다. 나름대로 옷 코디를 해 센스 있게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도 ‘입을 게 없다.’라고 하지 ‘입을 옷 많다.’라는 사람이 없다. 아마 꽉 찬 옷장을 보고 그리하는 말은 옷이 없는 게 아니라, 새 옷을 사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 아닌가. 옆에서 듣고 ‘옷만 많구먼’이라고 말하는 둔한 남성이 있을 뿐. 여성의 옷에 대한 시샘이나 질투가 그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옷을 잘 입은 친구나 동료를 보면 제일 먼저 “그 옷 어디서 샀어?”라고 묻는다. 심지어 친구와 똑같은 옷을 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몸매가 다른데 똑같은 효과는 미지수다. 사실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을 당연하다. 장례식에 화려한 옷차림은 할 수 없지 않은가.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어도 때와 상황에 맞춰 보기 좋게 갖춰 입으면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옷은 역시 미의 대명사다옷은 나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최상의 도구이며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창이다. 개인적인 옷 스타일은 지극히 자기표현이지만, 결국 타인의 눈을 겨냥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옷은 내가 입지만, 혼자만 있을 때는 의미가 없고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 의미가 있다. 타인과의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옷, 정말 잘 어울리네’ 등의 제일 먼저 듣는 칭찬이 옷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우리는 옷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옷은 처음에는 분명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옷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발달을 하고, 발달한 만큼의 수많은 의미가 옷에 부여되었다. 지금은 옷과 사람이 동일시되고 인격까지 되었다. ‘=사람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라는 글자를 자세하게 살펴봐라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있다. 잘 입은 옷을 칭찬하는 말이다. 반면 비단옷 속에 눈물이 괸다.’라는 속담도 있다. 겉치레와 사치에 의한 치장에 숨어 있는 눈물겨운 희생이 있음을 의미한다. 

겉을 가꾸는 정성으로 내면도 함께 가꾸어 예쁨과 아름다움을 겸비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117. ‘본질(本質)’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