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22
‘경계(境界)’란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한계’, ‘어떤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에 일정한 기준으로 구별되는 한계’를 말한다. 境(지경 경)은 뜻을 나타내는 土(흙 토)와 소리를 나타내는 竟(마침내 경)이 합쳐진 한자로 ‘지경(地境)’, ‘경계(境界)’, ‘경우(境遇)’, ‘장소’를 뜻한다. 界(지경 계)는 뜻을 나타내는 田(밭 전)과 소리를 나타내는 介(낄 개)가 합쳐진 한자로 ‘경계(境界)’, ‘둘레’, ‘세상’의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경계선(境界線)’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어떤 분야나 인식의 정도 따위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 등과 같이 사용한다. ‘경계인(境界人)’이란 말도 많이 사용하는데, ‘바탕이 서로 다른 문화나 사회, 집단의 경계선상에 있고,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심리적으로 여러 집단에 대해 귀속감을 가지고 있어 쉽게 흔들리고, 어느 문화에도 속하지 않고 소외감과 고독감을 가지기 쉬운 경향을 나타낸다. 소속 집단을 옮겼을 때, 새로운 집단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할 때 흔히 일어난다. 경계인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니 불안하고, 유의어로 ‘주변인(周邊人)’이 있다.
경계란 말은 가끔 장애물, 장벽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당신을 가로막는 경계는 무엇인가요?’라고 하는 질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이, 성별, 능력, 편견, 장애 등 세상에 존재하는 장벽, 즉 가로막는 경계들이다. 이런 경계 중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들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경계 없는 세상 만들기’다. 이때 경계는 안과 밖, 너와 나, 여기와 저기, 우리와 그들 간의 구분 짓기, 나누기, 제한하기, 걸어 잠그기 등의 의미가 연상된다. 그래서 반면에 넘어가기, 지워버리기, 혼합하기, 통합하기 등의 반작용 의미도 생겨난다. 따라서 경계(儆戒)해야 할 경계(境界), 지켜야 할 경계는 무엇인지, 왜 경계선을 지워버리면 안 되는지, 경계 짓기의 힘이 무엇인지, 경계에 의한 폐쇄와 열림에 의한 혼합과 통합의 조화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수적이다.
심리학 분야에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설정하는 데 중점을 둔 ‘바운더리 심리학(Boundary psychology)’이 있다. 여기서 경계(Boundary)는 개인과 다른 개인, 그리고 개인과 외부 세계 사이를 조화롭게 이어주는 부분을 말한다. 개인의 심리적 경계 설정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반면, 심리적 경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이 경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경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관계가 ‘가스라이팅(심리 지배)’이다. 가스라이팅은 착취적이고 학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관계라고 한다. 이보다 덜한 일반적이고 쉽게 볼 수 있는 관계가 부부 관계, 부모-자녀 관계, 친구 관계, 직장동료 관계 등이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경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얼마나 문제가 덜 생기도록 경계 짓기를 해야 하는 지가 숙제다.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 화가 났다는 사실은 옆집 아저씨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를 느끼며, “넌 공감 능력이 너무 떨어져.”라고 말한다. 이렇게 경계가 혼란하고 자기중심적인 분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간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별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설명이 안 되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긴 세상에서 애매모호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양쪽을 걸치는 듯한 양다리 상황이 경계를 짓지 못함이 원인이다. 이렇게 심리적 경계 설정을 못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경험 부족, 개인의 문화적 요인, 불안 등의 정서적 문제, 경계 설정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인간관계 등이 있다. 이럴 때는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하여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하지 말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경계를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업무 경계이다. 내 업무의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 한편으론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다른 한편으론 다른 사람 업무까지 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알아 할 수 없다면 분명히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 밖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꺼려 책임을 지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 모든 걸 잘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것이 바로 업무와 책임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고,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원활하게 일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세상에 구분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것들을 구분하고 묶어내기 위하여 경계를 긋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인류는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 사이에 경계선을 그으며 결정해 왔다.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 것인지, 안과 밖으로 분리된 양극을 선택하며 산다. 될 수 있는 한 선 안의 긍정적인 것을 택하기 위해 갖은 애쓰지만, 가끔 선 밖의 부정적인 것을 택함으로써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나와 선(線)이 비슷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선이 다른 사람은 분리하고 밀어낸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 여겨져 자기돌봄 하느라 자신의 경계선을 확고히 하고자 애쓴다.
인간관계에서 설정된 나의 경계도 허용적이고 수용적인 관계라 믿으면 선은 넘나들기도 한다. 신뢰 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 선을 너무 지키고자 하면 피상적인 관계로 끝난다. 이렇게 각자의 기준 따라 설정한 선들이 누구에게는 허용적인 수단의 선으로, 누구에게는 보호의 마지노선으로 작용한다. 드물게 선으로 위계를 정하는 이들은 ‘어디서 감히’라는 속마음으로 참을 수 없는 갑질이나 종속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내 경계나 타인의 경계를 잘 지키고 있다고 믿지만, 자신도 모르게 남의 경계를 무시로 침범하고 밟고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선, 경계를 짓는 일에 대해서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안과 밖의 경계나 이쪽과 저쪽이라는 극단은 애당초 없었다. 그리 만든 건 내 마음일 뿐, 실재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행과 불행, 고통과 쾌락, 슬픔과 기쁨 등의 양극단을 만들어 놓고 불행하고 고통스러울까 안달하며 경계선으로 스스로 속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애당초 ‘경계가 없는 세상’을 무수히 많은 경계를 만들어 놓고 ‘경계 없는 세상 만들기’를 하는 인간의 모습이 우습지 않은가. 그리해서 조금이라도 경계가 지워졌으면 좋으련만.
한 사람은 그대로인데,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쁘다고 생각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전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경계를 만들어 그 기준으로 갈라치고, 잘 못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그 사람의 본질을 알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다.
‘선을 넘는 녀석들’이란 방송도 있었지만, 경계를 넘는 건 목숨 걸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는 상대의 선을 넘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영역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만큼은 아니지만 영역에 대한 본능이 있다. 생존을 위한 경제적 영역부터 국경선까지 다양하게 선을 긋고 있다.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옳다고 믿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경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경계를 넘기가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확신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경계는 계속 좁아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경계 밖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다. 내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넓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자신이 보고 있는 모래알 몇 개가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한, 그는 자신의 경계 너머에 있는 세상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 경계를 넘어야 한다. 경계를 두는 한, 진정한 세상을 볼 수는 없다. 나 스스로 경계를 만드는 한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만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일, 그것이 어쩌면 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실 우린 늘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경계를 하나하나 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담장이란 경계를 넘어서야 바깥세상으로 갈 수 있듯이, 알 수 없는 세상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 익숙함의 경계를 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보지 않고 하는 생각과 계산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뜻밖의 결과들은 용기가 주는 선물이다.
이유 없이 사회적 지위와 상황에 대해 비교당하고, 부끄러운 정체성을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고통받는 이들이 아직도 수없이 많다. 각자의 개성을 누가 한 틀에 넣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만큼, 딱 그만큼만 서로 이해하면 내일이 달라질 수 있다.
편견, 인종, 성향 등 수많은 세상의 모습을 아우르는 '경계'와 '경계인'들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함부로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