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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Nov 14. 2023

121. ‘자립(自立)’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21

자립(自立)’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서는 것이다. 自(스스로 자)는 인간의 코를 본떠 만든 글자로 鼻(코 비)가 본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자기 자신을 나타낼 때 코를 가리키는 문화가 있어, 自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立(설 립)은 大(큰 대)와 一(한 일)의 합쳐지고, 사람의 상형 아래에 땅을 나타내는 부호인 一을 그어서 땅 위에 서 있는 것을 나타내어 ‘서다’, ‘세우다’의 뜻이다. 

자립과 함께 독립(獨立)’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어떠한 단체나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이를 벗어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는 행위 전반을 일컫는 말로 순우리말로는 홀로서기라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집단을 구성하고, 그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꿈꾸는 독립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도 어느 정도 범위에서 독립을 시도하는 것을 프라이버시라는 영역으로 허용 보장하고 있다. 한자 뜻으로 해석하면 독립(獨立)은 ‘혼자 서다’이고, 자립(自立)은 ‘스스로 서다’이다. 둘 다 홀로서기이겠으나, 개인적으로 스스로 서는 자립에 더 호감이 간다.

칸트는 자립에 대하여 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있는 이유는 이성이 없어서가 아니다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도 용기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즉 인간은 자기 책임하에 미성년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성을 발휘할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를 부모와 교육자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과보호하는 데 있다고 했다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의 지시에만 따르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로 키우게 된다.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어 자립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꼭 곱씹어 볼 조언 아닌가.

아이들에게 본인의 인생, 매일의 행동 등은 전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그 결정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양육과 교육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며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 인생은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아들러(Alfred Adler)도 『미움받을 용기』에서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제일 먼저 자립할 것을 제시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립을 시도한다. 다만 다른 동물과 달리 가장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상당 기간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생존하고 자립을 준비하여 성인이 되면 자립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 성인의 나이 기준은 만 18세라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 군에 입대하는 시기, 술과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 등이 성인이라 할 수 있다. 유럽 등 서방 외국에서는 성인이 되면, 자녀 대부분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혼자의 힘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원을 끊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아 당연하게 되었다. 

동물의 세계를 살펴봐도 사람처럼 오랜 기간 새끼를 보호하는 동물을 찾아볼 수 없다. 짧게는 알에서 깨어나면서 바로 새끼 혼자 살아가고, 길어봐야 새끼를 기르는 기간이 1~2년 안에 끝난다. 어린 새끼 혼자 살아가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떨어지기는 한다. 사람처럼 삶의 20% 이상 기간을 양육하는 동물은 전무후무하다. 그 기간의 양육도 모자라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놓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 졸업, 취업, 결혼, 결혼 후 자식의 자녀 양육 등 끝이 보이지 않게 부모가 지원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 모든 자식은 부모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존재라고 하지 않던가.

부모의 자식을 위한 육아교육결혼 등의 최종목표는 자립홀로서기이다. 부모의 자식 자립을 돕는 왕도는 하나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직접적으로 관여해서 도와주는 것은 진짜 돕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자녀의 능력을 믿고 지켜보면서 기다려 줄 때 자립심이 길러진다. 태어나 두 발로 서는 과정을 생각해 보라. 코가 깨지고 무릎이 다치는 과정을 수십 번 거쳐야 걸음마를 하고 뛰어다니지 않던가. 처음 일어서 걸을 때 기쁨에 손뼉 치며 손 내밀던 생각을 잊지 마시길.

모든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니 성인이 되었다고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부족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보충 해주는 부모의 도움은 독립하여 자립하려는 자녀를 내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살고 싶은 부모의 욕심이다. 제 자식 제가 도와주겠다는데 욕할 일은 아니지만, 잘못된 생각이고 자녀의 자립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진짜 사랑은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성인이 되기까지 최대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성인 이후에는 자녀가 자립을 위한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내 자식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다무조건 내 품에 안고 사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은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하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그늘 밑에서 평생을 살아가니 할 수 있는 말이나, 독립이 없는 자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독립과 자립은 사람의 두 다리와 같다. 한 다리로 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는 정신분석가가 여자의 자립을 이야기하며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다. 자세하게 읽어보지 않았지만, 글자 그대로 결혼 생활을 끝내고 남편을 버리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내와 여성이라는 가정 내에서의 위치에 안주하지 말고가정 밖의 세상으로 눈을 돌려 한 여성으로써의 위치를 찾으라는 말이다. 나를 만족시켜 줄 사람은 나 이외에 누구도 없다. 결혼과 가정에 대해 결혼 전에 가졌던 환상은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환상 속으로 남편을 끌고 들어온 내가 지금 내 고통의 원인이다. 남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연애할 때의 콩깍지를 얼른 벗어버리고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여성들이 자립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여성들이 들으면 기분 상할 이야기지만, 사실 과거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는 데 상대적으로 취약했었다. 늦게까지 버리지 못하는 소녀 감성과 꿈, 보호받고 부양받으려는 마음, 둥지에 안주해 살아가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삶에 대한 책임감과 자립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남녀 모두 현실에 뿌리내리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구원을 받아 안정을 누리려는 환상을 버리고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현대 여성들은 남자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발휘해 사회 곳곳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다. 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남성을 능가하는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으로 성공한 여성인 알파걸(Alpha Girl), 골드 우먼(Gold Women) 등이 대표적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립은 경제적 자립이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중요한 외적 자원이 경제적 자립이다. 의식주 해결하고 인생을 성찰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먼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적 자원인 경제적 자립이 성취되어야 인생을 이해하는 힘인 내적 자원을 생산할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고자신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정신적으로 자립하게 된다.

자립은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스스로 온전히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고통스럽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루어야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고, 정서적으로 혼자서도 삶을 즐기고 취미 생활 등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나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감정 소모하지 않는 것이 정신적 자립을 이루는 요소다. 내가 자립해서 타인과 함께하는 것과 자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주체적인 삶을 위해, 의존이 아닌 상생의 관계를 위해 자립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자립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불행이다. 기성세대는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무일푼으로 시작해도 수도권에서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부터 하늘의 별 따기고, 자신이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누릴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내 친구들의 자녀들도 대부분 양가 부모님의 지원으로 살 집을 마련하고 결혼한다. 그게 안 되니 부모의 품 안에서 안주하는 자녀들도 많이 있다. 현직에서 은퇴한 노년의 부모들이 자식을 결혼시키지 못하고 끼고 사는 일이 다반사다. 차라리 자립은 못 해도 독립이라도 시키면 다행일 텐데, 자식의 자립이 해결되지 않으니, 부모의 자립도 해결되지 않는다. 자녀의 독립부모의 자립할 시간이 되면 좀 과감하게 정신적 경제적 끈을 끊어줄 용기를 내야 한다. 앞으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립해야 할 것은 부모다. 자식에 보상받으려는 자립하지 못한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설 곳이 없는 시대다.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젊은이들의 자립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노인의 자립도 젊은이의 자립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나의 가치를 남들이 결정하는 것은 의존, 내가 결정하는 것은 자립이다. 행복한 삶의 기본인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여 삶의 주인공으로 자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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