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23
‘기회(機會)’는 ‘어떠한 일이나 행동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나 시기와 경우’를 말한다. 機(틀 기)는 뜻을 나타내는 木(나무 목)과 음을 나타내는 幾(몇 기)가 합쳐진 한자로 ‘틀’, ‘기계(機械)’를 뜻한다. 會(모일 회)는 모임을 뜻하는 亼 또는 人(사람 인)과 增(더할 증)의 생략형으로서 曾(일찍/거듭 증)이 합쳐진 한자로 동사로 쓰이면 ‘모으다’, ‘모이다’로, 명사로 쓸 땐 ‘집회’, ‘모임’, ‘기회(機會)’, ‘시기(時機)’, ‘짧은 시간(時間)’, ‘회계(會計)’로, 부사로 쓰이면 ‘때마침’, ‘공교(工巧)롭게도’ 등으로 쓰인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機會費用, Opportunity Cost)’이란 것이 있다. 어떤 자원이나 재화를 이용하여 생산이나 소비했을 때, 다른 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했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잠재적 이익. 즉, 어떤 일을 한 결과 그로 인하여 포기된 이익을 이른다. 선택하지 않은 대안 중 최선책에 대한 비용(암묵적 비용)과 선택에 따라 발생한 비용(명시적 비용)의 합계를 의미한다. 대학을 진학하여 4년간 소모된 명시적 비용(A)과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4년간 취업해서 벌 수 있는 암묵적 비용(B)의 합이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이 고려되는 이유는 선택하지 않은 대안의 대체 가능성을 평가할 때 사용된다. 취업하는 것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유리한가?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칭찬한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일’은 보통 극도로 높은 기회비용을 요구하는 법이다. 기회비용은 가족의 희생 둥 간접 비용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해서 하는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있기 마련이다.
‘일생삼회(一生三會)’라 해서 ‘인생에 세 번의 기회를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3번의 기회’라는 말에서 중요한 것은 세 번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누구에게나 변화의 순간이 찾아오고 그 속에 성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오는 것도 아니다. 평생 한 번도 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번 오는 사람도 있을 거다. 부자가 될 기회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 이 말은 기회를 놓쳤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역할이 크다. 세 번이 아니라 더 많은 기회가 와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단 한 번도 잡을 수 없다. 이러한 기회를 잘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가 없다면 그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다.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다. 기회가 오든 오지 않든 우리가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는 것, 돈이나 자산을 비축하는 것 등은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사실 기회란 개념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개인의 자산, 행운, 인맥 등에 의해 실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우연히 다가오는 행운은 없다. 운도 준비와 기회의 만남이다. 좋은 일에 그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준비한 결과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작고 사소한 부분에 도전하지만, 그것이 점차 큰 운과 기회로 연결되어 결국 큰 성공을 거둔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시련의 크기에 있지 않다. 성공한 사람은 시련이 끊임없이 닥쳐와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지만, 후자는 넘어지면 주저앉고 포기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할 때 있는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은 성취로 이어진다. 오직 내 앞에 주어진 것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런 힘든 과정에서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꿈 때문이다.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희망으로 험난한 과정을 버티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사람에게 성공이라는 기회를 준다.
‘무엇을 기회로 볼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지금의 상황, 추구하는 목표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 돈 많이 버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열거한 것들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 더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들이다. 기회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상태라면, 성공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기회는 누가 주는 것도,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매일 똑같고, 결과가 보이는 뻔한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기겠는가? 그렇게 불확실한 상황에 서슴없이 달려드는 용감한 이에게 성공의 운이 찾아올 확률이 더 높다. 물론 그만큼의 실패도 감내할 수 있는 대담한 성격이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회는 자신이 만들고, 그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하는 것들이 모두 기회이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것이 기회를 잡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는 삶이 아닐까. 짧지만 삶보다 더 귀하고 더한 기회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회, 한 번 왔지만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과 상처에 대한 기억만 안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다.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더 큰 성공의 기회로 삼아라.’라고 격려의 말을 건네곤 한다. 데일 카네기도 ‘실패는 기회가 올 거라는 신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과 같이 삶은 고통, 슬픔, 두려움, 외로움 등의 암흑기에 성장과 통찰을 통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도 비바람을 견뎌야 하늘 높이 자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련과 고통은 획기적으로 성장할 절호의 기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려운 시련과 문제가 삶의 근육을 키우는 최고의 아령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도 거꾸로 보면 기회이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어려움도 마음가짐에 따라 좌절이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가 찾아오면 위험이라 생각하여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면, 문제 해결이 더 쉽고 도움이 된다. 가장 힘들고 지칠 때가 위기의 마지막이고 가장 행복하고 잘 나갈 때가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폐쇄적 사회로 만들 때 얼마나 답답했었나. 하지만 그 상황을 대체하기 위한 원격회의, 재택근무 등의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은 주 5일제를 넘어 4일제를 향하여 가고 있지 않은가.
기회와 위기가 서로 대립하는 말 이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위기가 기회로, 기회가 위기로 달라질 수 있다. 위기와 기회의 상황 대처에 차이는 ‘준비’에 있다. 어떤 상황이든지 준비한 사람에게는 기회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에서 주전의 부상으로 출전한 후보 선수가 준비되었다면 주전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아 졸전을 펼친다면 후보의 자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늘 후보라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으면 본인도 모르게 그것이 위기이고 후보를 벗어날 길이 없다. 주전도 마찬가지다. 주전이라는 기회가 일상이 되고 거기에 안주한다면 점점 위기가 되어 간다. 이렇게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는 말도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의 면이 보이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기의 면이 보일 뿐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성공은 기회와 준비가 동시에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리치 디보스의 말이다.
기회는 공정해서 ‘기회의 나라’로 만들겠다던 그 많던 정치인은 다 어디로 갔는가. 불공정과 불평등과 불만이 가득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국민만 걱정한다. 정치인의 말을 믿지 말고, 지금은 ‘기회와 다양성의 세상’이라는 것을 믿어 보자. 자기의 능력을 좁은 시야로 판단하지 말고, 넓고 멀리 보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어떤 일을 할 적당한 시기’를 ‘기회’라 한다면,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 시작하라. 그리고 버텨라~! 그러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