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묘약이라는 술은 인류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술은 포도주다. 실제로는 포도 이외의 다른 과일이 발효되어 만들어진 술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런 과실주는 지구에 존재했고, 지능이 높았던 원시인들은 비교적 원리가 간단한 과실주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점점 술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포도주가 개발되었고, 술과 관련된 전선이나 유물들을 많이 남겼다. 이집트 문명의 파라오 무덤에서 포도주 단지가 발견되고, 주된 교역 상품으로 유통까지 되었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대량 재배했다는 사실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술인 곡주(곡물의 당분을 발표시켜 만든 술)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여자들이 사탕수수로 이를 닦고 쌀을 씹은 것을 항아리에 모아 담근 ‘처녀주’에서 곡주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침의 아밀라아제로 쌀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당을 발효시켜 에틸알코올이 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절에서 승려들이 술을 점잖게 ‘곡차(穀茶)’라고 하는데, 곡물로 빚어낸 차라는 뜻이다. 그 외 반야탕(般若湯-지혜의 물) 또는 지수(智水-지혜의 물)라 부른다. 술에 취하면 속세를 벗어난 느낌을 준다고 하여 ‘지혜의 물’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반대로 술을 경계하는 의미에서는 미혼탕(迷魂湯-사람의 혼은 미혹하게 하는 물 또는 지혜를 흐리게 하는 물), 화천(禍泉-모든 화의 원천)이라고 표현한다. 적당히 마시지 않고 취하도록 마시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술꾼들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주님의 ‘주’와 술 ‘주(酒)’의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술을 ‘주님’이라 하는데, 술 마시는 변명으로 ‘주님을 섬긴다’라는 말로 장난을 하기도 한다.
실제 밀이나 보리로 술을 만들게 된 우리나라의 숨겨진 술 이야기가 있다. 최초의 밀을 심을 때, ‘사람 셋을 죽여서 간을 거름으로 주라.’는 계시를 받은 농부가 언덕에서 낫을 들고 기다렸는데, 처음 나타난 것은 선비, 다음에 나타난 것은 스님, 마지막 나타난 것은 미치광이였다. 농부는 그 셋을 차례로 살해한 다음 배를 째서 간을 꺼내 거름으로 밀을 재배했다. 그렇게 길러진 밀(또는 보리)에는 배를 짼 자국이 세로선으로 남아있고, 그것으로 술을 빚으면 죽은 세 사람이 차례로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선비처럼 점잖고, 다음에는 중이 부처님 앞에 공양하듯 자꾸 남들에게 권하고, 마지막으로는 미치광이가 된다는 술 마신 후 나타나는 행동 비유가 녹아든 이야기다.
<탈무드>에 나오는 술 관련 이야기를 보면, 아담이 처음으로 술을 빚었을 때 처음 보는 음료수에 호기심에 이끌린 악마가 다가와서 자신에게도 한 모금 나누어줄 수 있느냐고 청한다. 경계심이 없던 아담은 흔쾌히 허락했고 술을 마시고 그 맛에 감동한 악마는 아담에게 ‘나도 이 멋진 음료수를 만드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라고 말한다. 아담의 허락을 받은 악마는 술을 담글 포도가 키워지는 밭에 거름을 뿌려주겠노라며 거름을 찾으러 떠났다. 악마는 양, 사자, 원숭이, 돼지의 4마리 짐승을 잡아 돌아온다. 그리고 포도밭에 그것들의 피를 거름으로 부었고, 포도는 모든 인간이 술을 마실 수 있을 만큼 풍성하게 자라났다. 그 뒤 동물의 피가 갖는 본성 탓에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포도주를 마시면 처음엔 양(순해지고)→사자(사나워지고)→원숭이(춤추고 노래하고)→돼지(더러워지는)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한국에는 술 마시면 개가 된다고 하는데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술 마신 개는 한국판이다.
건강상으로 보면 별 도움이 될 것이 없는 식품을 발명하고,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식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술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해 왔다. 이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배웠든 못 배웠든 만인이 마시고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인류는 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가? 술은 영양이나 맛보다는 사회․문화적 이유로 마시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섭취할 식품으로 인류가 술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혹과 중독성이 강한 식품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를 들어보면 다양하다. 첫째, 맛으로 먹는 사람이다. 여러 종류의 술이나 같은 종류라도 조금씩 다른 술맛을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이다. 포도주, 맥주 등의 동호회를 조직하여 전국의 술집을 탐방하는 사람들이다. 둘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회식에서 술을 마시는 목적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즐기기 위함이다. 셋째, 상대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을 때 술을 이용한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고 진실이나 비밀 등을 쉽게 털어놓게 되는 성향이 있다. ‘수풀 속의 꿩은 개가 내쫓고, 폐부 속의 말은 술이 내몬다.’라는 말대로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넷째, 즐거움이나 기쁨을 함께하고, 괴로움이나 고통을 나눌 때 마신다. 좋아도 한잔, 괴로워도 한잔이다. 술은 잠시지만 기억을 잊게 하는 기능이 있다. 마지막으로 술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내기 위하여 마신다.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거나 집안에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맨정신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약간의 술을 마시면 술의 힘을 빌려 말하기 힘든 말을 할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이성이 둔해져 용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옛날부터 술은 접대의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태종이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왕세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유 중의 하나가 ‘효령은 술을 못 마시는데, 그래서야 어디 외교나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술을 마실 줄 아는 것이 접대의 기본이었던 것은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실제로 술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선비는 백탕(맹물)을 마시면서도 취한 척 낭만을 즐겼다니 술이 풍류의 으뜸 조건은 맞다. 우리 선조들은 술을 ‘근심을 잊게 하는 물’이란 뜻의 ‘망우물’이라 불렀다.
현대에 들어와 기업의 회식과 접대문화가 많아지면서 앞장서서 술자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접대받는 상대편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술상무’라 칭한다. 한마디로 회식, 음주, 접대문화를 대변하는 속어라 할 수 있다. 기업 간 접대에서 어느 정도 직급이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고, 회사에서는 뚜렷한 업무가 적은 상무이사가 이런 일을 맡는 경우가 많아 ‘술+상무’란 이름이 생겼다. 실제로는 꼭 상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니며, 술을 좋아하고 업무량이 부담이 없는 간부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이런 접대문화가 많이 사라져 옛날얘기가 됐지만, 실제 술상무 역할을 하다가 중병을 얻어 치열한 법정투쟁으로 산재 인정까지 된 사례가 있고, 접대 자리에 함께 앉았던 매춘부들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술상무’들이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웃픈 일이다. 가끔 드라마에서 등장하던 넥타이를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테이블에 올라가 음주가무 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접대하는 을(乙) 입장의 기업에서 보면 생존이 걸린 절실한 문제이기에 필요악이지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술 문화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서민의 애환을 달래 줄 유일한 식품도 술이었다.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달래줄 것이 중독성 기호식품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저소득층에게는 담배와 술이다. 사실 중독성이 있는 식품이 지방, 설탕, 탄수화물 등도 있지만 중독성이 약하고 비싸 과거에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저소득층에 뭔가 욕구를 달랠 수단으로 자리 잡은 식품이 담배와 술이다.
물 대신 술을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술이 물을 대체했다는 것보다 술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과 동급으로 취급했다는 것이 맞다. 이는 주변 환경 때문에 신선한 물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몽골 같은 사막에서 물 대신 들고 다니던 동물의 젖(아이락)이 술로 변해 마신 예가 대표적이다. 또한 장기간 항해를 해야 하는 선원들도 순수한 물은 오래 보관하기 어려워 술을 대신 마셨다. 한편 지형상 물에 석회가 많이 섞여 있던 유럽에서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고 하지만, 생수 값이 맥줏값보다 비싼 나라들이 많은 데서 나온 낭설에 불과하다. 실제로 유럽인은 물을 많이 마셨고, 식사 때 맥주를 마신 이유는 빵을 먹을 때 맥주와 섞인 상태로 섭취하기가 쉬웠고(고구마와 같이 퍽퍽한 음식을 먹을 때 물과 함께 먹는 것과 같음), 맛도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맥주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깨끗한 물이다. 독일의 맥주 제조지로 유명한 곳들은 모두 수질이 좋은 지역이다.
독일의 맥주 축제는 가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나라 남해 독일 마을의 맥주 축제는 한번 가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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