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한 해를 보내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술과 친해질 기회도 많아지기에, 술과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기원하며 술에 대한 의미를 짚어봅니다.]
‘술(酒)’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를 말한다. 술은 에탄올(에틸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로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마약성이 있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되어 있다. 주세법에서는 술을 ‘에틸알코올이 15℃ 기준으로 부피 대비 1% 이상 함유된 음료 또는 이를 분말화한 상품 등’으로 정의하고 주세(酒稅)를 징수한다. 우리나라에서 현행법상 술은 담배와 함께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못한다. 酒(술 주)는 뜻을 나타내는 水(물 수)와 소리를 나타내는 酉(닭 유)가 합쳐진 글자인데, 원래 酉는 술이 담겨 있는 항아리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술의 뜻이었다. 후에 酉가 십이지의 닭이라는 뜻이 되어 술과 구분하기 위해 水(氵)를 붙여 酒가 되었고 ‘술’을 뜻한다.
술은 인류의 역사화 함께했으며 의례적 행사 및 일상생활의 여러 상황에 두루 쓰이고 있다. 술에 대한 관념은 동전의 양면이다. 술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되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는 반면, 부정적인 면에서 ‘광약(狂藥)’이라고도 불렸다.
술은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는다고 하여 음주를 권하는 옛 문헌의 기록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혈(氣血)을 순환시키고 정을 펴며 예(禮)를 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에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 등이다. 설날 차례를 마치고 마시는 술인 도소주(屠蘇酒:나쁜 기운을 물리기 위한 술), 정월 대보름에 마시는 이명주(耳明酒: 눈과 귀를 밝게 하고 어른께 만수무강을 비는 술) 등은 모두 건강과 장수를 바라던 술의 긍정적인 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결혼식 또는 폐백례(幣帛禮)에서 신랑·신부가 교환하여 마시는 술인 ‘합환주(合歡酒)’와 같이 혼례나 제사, 제례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술이었다.
술의 가장 큰 부정적 이유는 사람을 취하게 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는 작용이다. 근대에 와서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육체 건강을 해치는 것이 주목받았다.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 광범위하여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부족하다. 옛날에 임금이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친다고 하여 임금이 마시는 술을 ‘망국주(亡國酒)’라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술은 크게 탁주·청주·소주의 세 가지가 있는데, 탁주는 ‘농주(農酒-농군들이 마시던 술)’, ‘막걸리(즉석에서 걸러 마시는 술)’, ‘백주(白酒-빛깔이 흰 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청주는 탁주에 비해 정성을 들여 빚은 고급술로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이후 지역마다 특색있는 다양한 재래주가 보급되어 지금까지 민속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의 우리나라 술 소비 경향을 보면 주세 비율로 맥주(65%), 소주(20%), 위스키(10%)가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소주와 위스키의 독주 소비량이 늘고, 탁주가 감소함에 따라 맥주 소비도 늘어나는 경향이다. 소주에 의한 독주화와 맥주에 의한 고급화의 길을 걷고 있다.
특이한 술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정월 대보름에 마시는 귀밝이술인 이명주(耳明酒), 봄철 청명(淸明)에 담그면 맛이 좋다는 청명주(淸明酒), 여름을 탈 없이 보내기 위해 마시는 과하주(過夏酒), 정월의 첫 해일(亥日)에 시작하여 3차에 걸쳐 해(亥)일에 담그는 삼해주(三亥酒), 정월의 오일(午日)에 시작하여 4차에 걸쳐 오(午)일에 담그는 사마주(四馬酒) 등 모두 정성이 깃들이 민속주들이다.
술의 이름에는 술맛을 당기게 하는 낭만적인 것도 많다. 맛을 더하기 위하여 향을 첨가하는 가향주(加香酒)를 만드는데, 그에 따라 명명된 이화주(梨花酒)·두견주(杜鵑酒)·송화주(松花酒)·연엽주(蓮葉酒) 등은 그 이름부터 아름답다. 술 빛이 흰 아지랑이와 같다는 비유에서 붙여진 백하주(白霞酒), 푸른 파도와 같다는 데서 붙여진 녹파주(綠波酒), 푸르고 향기롭다는 데서 붙여진 벽향주(碧香酒), 맛이 좋아서 차마 삼켜 마시기 아쉽다는 데서 붙여진 석탄주(惜呑酒) 등은 모두 주색들의 멋진 발상에서 나온 술 이름이다. 술을 즐기던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솜씨 좋은 가향주를 자랑하기도 하고 ‘생애는 주일배(酒一杯)’라는 식의 낭만적인 멋을 터득하기도 하며, 곡수유상(曲水流觴: 굽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주고받는 것)의 흥취를 즐기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나온 미적 감흥은 곧 술의 풍류가 되고, 술의 예술이 된 것이다.
즐겁고 멋있는 생활은 반드시 흥(興)이 있어야 한다. 춤과 노래와 같은 예술 활동을 하는 것도 흥이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술을 마시고 흥을 돋우었다. 음주가무(飮酒歌舞)라는 단어 자체가 노래와 춤이 음주에서 생기는 흥취로 시작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로부터 예술 활동은 술과 연결되어 성행하였고, 술의 흥취는 문학이나 음악, 또는 회화 등 여러 가지의 미적 형상화를 통하여 발산되었다.
인간이 술에 에탄올이 들어있고, 에탄올 때문에 취하여 환각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에탄올이 곧 술이라고 당연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술을 마시면 취한다는 것은 알았어도 대체 무슨 물질 때문에 어떻게 해서 취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술 내부에 에탄올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술 속에는 얼마나 많은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술에 포함된 알코올의 양을 15℃에서 총용량 중 포함된 백분율을 도수로 표현한다. 20도짜리 소주 한 잔(약 50㎖)에는 알코올 10㎖가 포함되어 있다. 소주 한 잔 마실 때마다 알코올 10㎖씩 몸속에 붓는 셈이다. 술을 마시면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관, 특히 피부 주위의 혈관을 확장시킨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벌게지거나 덥다고 느끼는 이유다.
모든 술에는 저마다 그 술에 걸맞은 잔이 있다. 그런데 이런 술에 맞는 소주잔, 맥주잔, 양주잔 모두 한 잔에 포함된 알코올의 양이 10g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편의상 각 술에 적절한 한 잔의 술을 ‘1 표준잔’이라고 부르고, 음주량을 측정할 때의 ‘한 잔’이란 ‘표준잔(standard drink)’을 의미한다. 1 표준잔은 소주 1잔, 알코올 10g이라 생각하면 된다.
술은 위험하고 어려운 것만은 분명하다. 불이 위험하지만, 인류가 잘 다루어 문명의 꽃을 피우는 역할을 한 것처럼 술도 이와 같다.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 인간의 격이 높아지고 문화와 정신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술 문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간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관여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수많은 음식과 약이 있어도 술보다 귀한 것이 없다 하지 않던가. 술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누구나 마시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좋은 면만 다루기가 어디 쉬운가. 예로부터 술과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패가망신한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잘 다루기 어려운 물질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지금도 술로써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불을 잘못 사용해 화재를 일으킨다고 불을 원망하고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술도 건강을 해치고 패가망신을 부른다고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 술은 마셔서 없애야 한다는 주당들의 농담처럼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쉽지 않지만 적당하고 지혜롭게 마시는 것이 육체와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술이 처음에는 신의 음식으로 탄생했던 것처럼 신의 경지에 들어서 술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술을 이기는 사람이고 술을 마실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술 마시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도 드물다. 그래서 그런지 술에 대한 관대한 문화가 자리 잡았고, 술에 취해 행동한 무례나 범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있는 것도 술이다. 사실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절대 하지 않은 행동이 술에 취해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술이 천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술 마시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천 가지란 뜻이 아니겠는가. 술을 마실 때는 빈부귀천이 없으나 술 마신 뒤의 행동은 빈부와 귀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유사 이래 술과 싸워 이겼다는 장사도 없다.
평생 건강을 지키며 술과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진정한 술꾼이 되시길~!
https://brunch.co.kr/@dd05cb7dd85a42c/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