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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Dec 14. 2023

128. ‘양심(良心)’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28

양심(良心)’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말한다. 양심의 가책(呵責)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듯이 자기가 행하게 된 일, 특히 나쁜 행위를 비판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양심에 관한 말로 자주 쓰이는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며, 인간으로서도 반드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소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는 귀부터 빨개진다. 이걸 나타내는 글자가 ‘치(恥)’이다. 염치에서 온 말 중 얌체가 있는데 마음이 결백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가 없는 사람, 즉 염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염치불고(廉恥不顧)는 상대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때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은 일반적으로 ‘선량한 마음, 착한 마음’을 나타내지만, 헌법 제19조에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이란 ‘널리 개인의 인격 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서 가치적윤리적 판단은 물론 더 나아가 세계관인생관주의신념 등도 포함하는 것이라 법률적으로 정의했으며 사상이나 신념에 가깝다. 헌법재판소의 정의는 양심이란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양심을 마음속의 삼각형에 비유했다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면 마음속의 삼각형이 돌아가 처음에는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계속 돌리면 삼각형 모서리가 무뎌지면서 나중에는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 양심이라고~. 우리가 ‘양심에 찔린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절묘한 비유가 아닌가. 

양심이라는 용어는 고대 중국의 맹자가 사용하였고, 문화나 교육으로 주입되었으며 어떤 행동의 도덕적 특성에 관해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양심을 어기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므로 양심의 명령을 어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몇몇 신앙에서는 양심은 신의 목소리로 절대 믿고 지켜야 할 행동 지침으로 여겼다. 힌두교 신자들은 양심을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생각했고, 양심을 내적인 빛으로 보는 서구의 종교집단도 있었다.

철학자·사회과학자·심리학자들은 양심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는데,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결정하는 타고난 직관력’이라고 보는 걸 직관주의, ‘미래 행위를 유발하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누적된 주관적 추론’이라고 보는 걸 경험주의, ‘특정 사회적 자극에 대한 일련의 학습된 반응’으로 보는 건 행동주의라고 부른다.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듯이 자기가 행한 일 중 나쁜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가치와 충돌하는 행위를 저지르고 후회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양심 때문이다. 또한 양심은 불문율의 개념이 크지만, 법(法)적인 개념도 있어 전체 사회에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공익을 위한 많은 행위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인 신념 때문에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지 않다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2018년에야 36개월 교정시설 합숙 근무로 하는 안이 확정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동기를 기준으로 두 부류가 있는데, 종교적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와 그 밖의 윤리적·철학적·정치적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로 분류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 온 나라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를 우선 인정하고, 점차 윤리적·철학적·정치적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에까지 확대해서 인정해 왔다. 다만,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은 ‘양심에 따른 이유’로 한 병역거부일 뿐 도덕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 해서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사람들이 비양심적인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감추어져 온 비리나 부정을 양심에 따라 많은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일을 양심선언(良心宣言)’이라 하는데, 권력 기관이 저지른 비리나 부정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일을 말한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잘못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내부고발이 일어날 수 있지만, 양심선언과 내부고발은 약간 다르다. 내부고발은 소속집단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고, 양심선언은 소속집단과 상관없이 고백하는 것이다.

흔히 도덕적으로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양심에 털 났다.’라고 많이 말한다. 양심에 털이 났으니, 양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양심 없는 사람’을 일컫지만,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 털이라도 났겠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있는 것을 보면, 주변에 양심 불량, 양심이 아예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요즘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양심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인데,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고, 바른 판단을 알고 있다고 해도 행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에서 양심과 상식이 내면화되면서 일종의 도덕률이 생긴다. 이 도덕률이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다. 한마디로 양심이 없는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얼굴에 철판을 깐 뻔뻔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일이 잘못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기 자신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원인을 남이나 환경 탓으로 돌린다.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자신의 부정적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하지 못하고, 복잡한 인과관계를 다 각도로 바라보지 못한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 순간 반짝 앞서 나갈 수는 있지만, 양심을 지키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사람을 이겨낼 수 없다. 

양심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잣대이다. 또한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는 기준이며 가치다. 그러므로 양심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하며,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명확해야 한다. 당연히 양심은 일반적 사회적 통념과 일치하고 상식적이며 보편타당해야 한다. 같은 사물을 보면서 기준이나 의식이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양심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심이 올바르게 서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러한 행동이 잘못된 일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경고문을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로 하지 않고 ‘양심을 버리지 맙시다’라고 적어놓으면 훨씬 효과적이라 한다. 무의식중에 쓰레기를 버리던 행동을 양심을 지키려는 마음이 이기기 때문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작가 HL 맨컨은 양심은 우리에게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타일러 주는 내부의 소리이다.’라고 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양심에 꺼리는 일을 쉽게 저지르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인간을 비추는 유일한 등불은 이성이며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다.’라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도 있다. 

   

양심적인 사람은 뒷모습이 예쁘다언행이 천박하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한 행동으로 돌아서 가는 뒷모습으로 삶의 어두운 길을 활짝 밝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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