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60
나는 도시 외곽의 개 공장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새끼만 낳는 일을 하는 많은 엄마가 있다.
나는 함께 태어난 쌍둥이 5형제 중에 셋째다.
내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고 아래로 개구쟁이 남동생 둘이 있다.
엄마는 있지만 아빠는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개 공장에 있는 엄마들은 남정네와 붙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다.
주인 놈은 엄마들이 남정네와 붙고 싶은 것을 귀신같이 알아서
주사기 같은 것을 자궁에 푹 찔러 씨만 뿌려 새끼를 낳도록 한다.
이런 방법을 ‘인공수정’이라 한다.
그래서 여기 엄마들은 새끼는 계속 낳으면서도
평생 한 번도 남정네와 붙어 보지 못하는 불쌍한 여자들이다.
평생 남정네 ‘남’자도 구경 못 한 숫처녀 엄마들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홀어머니 새끼들이다.
지들에게 남자는 여자 없이, 여자는 남자 없이 살라 하면
아마 세상은 짝을 빼앗는 전쟁터로 변할 거다.
지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가 보는 앞에서도 잘만 붙어먹으면서
우리에게는 이성 구경도 못 하게 하는 아주 인정머리 없는 놈들이다.
더욱 낯도 두껍게 겉으로는 동물권이니 개권을 외친다.
우리 옆에서 풀을 뜯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래도 태어나 한 달간은 엄마와 형제들이 몸 부대끼며 재밌게 살았다.
쌍둥이 형제들과 매일 뒹굴며 장난꾸러기로 지냈는데,
그 시절이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유일한 기간이다.
한 달 후 우리 형제는 모두 엄마와 생이별해야만 했다.
공장주인 놈은 엄마로부터 우리를 빨리 떼어놓아야
엄마가 빨리 새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엄마의 젖을 떼기도 전에 생이별시켜
도시의 유리창이 있는 쇠창살 집으로 보내버렸다.
그곳을 ‘애완견 분양소’라 했다.
깨끗하기는 했지만 정말 감옥 같았는데
다른 곳에서 온 동료들도 많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방을 같이 썼다.
방이라 해봐야 쇠창살 칸막이로 막아놓은 공간이다.
언니와 한방을 쓰며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혼자 살아 심심하다는 처녀가 찾아와 언니를 데려갔다.
언니는 가기 싫다고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엄마가 그랬고, 언니도 그랬고, 남동생들도 그렇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나도 ‘분양소’란 곳에서 보름쯤 더 살다가
여자 어린 꼬마와 엄마가 함께 와서 귀엽다며 데리고 갔다.
그때까지 오빠와 남동생 둘은 남아 있었다.
우리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인기가 좋아서
언니와 나는 새로운 집으로 갔고 쌍둥이 남자들만 남았다.
남자애들은 성질이 못돼 말도 잘 안 듣고
좀 지저분하고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겨서란다.
인간도 예전엔 아들이 인기 있었는데 요즘은 딸이 인기 있단다.
나를 데리고 간 집은 주인 놈, 주인 년, 주인 아이 이렇게 세 식구다.
아마 아이가 우리를 키우고 싶다 엄마에게 졸라서
귀여운 나를 선택해 데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주인 아이가 나를 제일 귀여워해 준다.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곳은 ‘아파트’란 곳이다.
거긴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같이 삭막하고
바닥은 엄청 미끄러워 걷기가 엄청 힘들다.
처음엔 걷다가 미끄러진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되어 괜찮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네모 상자인데
지들은 살기가 제일 편하다는데
내가 살 곳은 전혀 아니다.
처음 며칠은 엄마도 형제들도 보지 못하는 외로움 때문에
울기만 했고 입맛도 없어 굶기 시작했다.
내가 사료를 먹지 않는다고 어르고 달래며
소시지 같은 것도 줬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며칠을 굶고 나니 너무 배고프고 하늘이 노랗다.
진짜 눈알이 핑핑 돌고 죽을 것만 같아
억지로 콩알 같은 사료를 몇 개 먹어봤다.
맛은 없었지만 자주 먹으니 그냥 먹을 만했다.
적응하여 잘 먹으니 주인 년은 많이 먹으면
똥만 싸고 살찐다고 코딱지만큼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항상 배가 고파서 먹을 것만 눈에 아른거렸다.
할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내가 가진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재롱이라 해봐야 주인이 보이면 꼬리 흔들고 반가운 척하는 것이다.
절대 진심으로 반가운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꼬리를 칠 때마다 소시지 같은 간식을
조금씩 얻어먹을 수 있어 허기를 달랬다.
주인 아이가 ‘오른손~!, 왼손~!’ 하면서 손을 내 발 앞에 내민다.
도무지 알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억지로 내 발을 잡아끈다.
억지로 발을 잡아당기니 좀 아프다.
그래 발을 앞으로 내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잘했다며 간식을 준다.
손 내미는 방향을 눈치 보면서 발을 내밀었다.
그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으니 괜찮다.
그러다 머리를 누르며 ‘인사~!’하고 외친다.
‘인사~!’라는 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오른발~!’, ‘왼발~!’, ‘인사~!’라는 세 단어를
내가 할 행동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듣겠다.
그랬더니 너무 똑똑해서 잘한다고 칭찬하며
훈련소에 가서 전문적으로 배워 보잖다.
우리는 뭘 배우는 것에 자신이 없는데 큰일이다.
나를 데리고 ‘개 훈련소’라는 곳으로 갔다.
무슨 훈련소? 우리가 지들처럼 군대 가는 것도 아닌데.
하여튼 훈련소에 끌려가 들어서니
거기엔 많은 동료가 있었다.
엄청나게 큰 동료도 있었는데 사람보다 더 무서웠다.
완전 쫄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무섭게 생긴 개통령이란 놈이 나를 끌고 갔다.
무서워 완전히 얼어붙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꼼짝 못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지만 그 훈련은 어렵고 힘들었다.
무엇을 배우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개통령이란 놈과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참고 참아서 3일의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집도 감옥이지만 훈련소는 지옥이었다.
살아서 지옥에서 벗어나 감옥으로 온 것이 다행이다.
고생한 덕분에 몇 가지 재롱을 더 부리며
자주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건 좋다.
어쩌다 급해서 구석에다 똥이나 오줌을 싸면
화장실에 안 싼다고 주인 년은 발로 차고 난리다.
화장실을 지들 거지, 내 것이 아니다.
지들은 똥오줌 안 싸고 사나?
지들은 어렸을 때 걷지도 못해 기저귀 차고 살았으면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연놈들이다.
하여튼 살아남기 참 어렵다.
이럴 바엔 아파트 창문으로 확 뛰어내릴까도 생각했다.
내가 죽었다고 슬퍼해 줄 놈도 없고 너무 무섭기도 하다.
참고 구차한 목숨 부지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 달쯤 살았을 때 산책을 시켜준단다.
이제야 바람 쐬며 세상 구경을 하고
맘껏 뛰어보겠다고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웬걸. 현관에서 목줄에 긴 줄까지 연결해서
꼼짝 못 하게 해서 끌고 나가는 게 아닌가.
목줄을 잡은 주인 아이 주변에서 멀어지지 못하도록 그러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 구경하러 가는 것이니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그런데 조금 앞으로 가려 하면 잡아끌고,
그래서 뒤에서 따라가면 잡아당기고,
목이 아파 죽겠다.
주인 아이의 속도에 맞춘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러다 보니 산책이 아니고 내 목만 늘어나고 아프다.
누가 나가자 했나?
집에 돌아오니 완전 녹초가 되어 구석에 널브러졌다.
그 뒤로 산책하러 나가고 싶은 맘이 일도 없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나를 끌고 나갔다.
산책을 안 가면 살이 찌고 운동이 부족해 못 걷는다나 뭐라나.
‘니들이나 운동해, 나는 이리 살다 죽을래’하고 싶지만
내 말을 들어줄 리도 없다.
요즘은 지들 새끼 태우는 유모차와 똑같은
개모차를 사 와서 거기에 태우고 산책하러 나간다.
산책은 걷는 것인데 태우고 나가려면 왜 나가나?
주인 연놈 열심히 붙어서 새끼 하나 더 나아
인구도 늘이는 데 일조하고 거기 태워 다녀.
나는 니들 새끼처럼 못 걷는 게 아니고
잘 걷고 뛸 수 있는 거 모르나?
한해 인간의 출생아 23만보다
많은 30만 마리가 개공장에서 태어나고
유모차보다 개모차 판매량이 많다는데
드디어 저들의 세상이 가고 우리의 세상이 오는가?
개모차 타고 산책 다녀도 괜찮으니
제발 우리의 세상이 와 저들에게
개목줄을 달아 끌고 다녀봤으면~!
오늘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단다.
포식 한 번 하겠구나, 고소한 냄새가 죽인다.
좀 주려나 아무리 기다려도 지들만 먹는다.
한점 얻어먹으려 식탁 밑을 어슬렁거린다.
'너는 안돼~!' 하면서 발로 밀어낸다.
소금간이 되고 기름기가 많아서 안 된단다.
나도 고기 먹을 줄 안다고.
니들과 같이 잡식성이거등.
개 침만 실컷 흘렸다.
그러다 여름이 왔다.
어느 날 이쁘게 해줄 테니 미용실에 가잔다.
내가 무슨 미용실?
니들은 깎을 머리가 있지만 난 깎을 머리가 없거등.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처지에 뒹굴며 버틸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미용실에 따라가니 내 털을 다 깎는단다.
내 털은 내 옷인데 옷을 다 벗겨버린다고…
숙녀의 옷을 이렇게 벗겨도 되는 거야.
놀라서 몸부림을 쳤더니 깔때기를 목에 채워버린다.
윙윙거리는 기계가 내 옷을 다 벗겨버려도 꼼짝없이 당했다.
이거 지들이라면 성추행에 성폭행 아닌가?
미투할 수도 없고 벗겨진 몸이 당황스럽다.
조금 있으니 춥겠다며 지들 옷을 입혀준다.
언제는 벗기더니 이제는 입혀주네.
인간 족속들은 참 웃기지도 않다.
근데 입혀준 옷이 바람도 안 통하고 답답해 미치겠다.
이건 니들 옷이잖아, 내 옷은 탐스런 털이야
얼릉 니들 옷은 니들이 입고 내 옷 돌려줘~!
그러더니 한술 더 떠 머리에 있는
몇 가닥 털마져 고무줄로 꽁꽁 묶어버린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지들은 이쁘다고 난리다.
하여튼 미친X~!
지들은 공부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고 배웠으면서
입장 바꿔 생각하는 건 하나도 없다.
정말 지들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다.
이렇게 한바탕 거사(나체)를 치르고 돌아오는데
나는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하니 부끄러워 죽겠는데
보는 연놈들이 모두 예쁘다고 난리다.
계속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당황스럽다.
집에 와서 입혀준 옷만이라도 벗겨주면 좋으련만
며칠 동안 벗겨줄 생각을 안 한다.
나체로 살지 않아서 좋지만, 답답한 게 더 어렵다.
여인으로 거리까지 활보하며 다 보여준 몸
그냥 나체로 사는 게 좋겠다.
성폭행~! 한번 하려면 해봐.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확 물어버릴 테니.
그렇게 반년쯤 살았는데 갑자기 병원에 가잖다.
나 아픈 곳 없는데 왜?
혹시 내가 남정네랑 붙어 새끼를 낳으면 큰일이라며
새끼를 못 낳게 수술을 해준단다.
그걸 ‘불임수술’이라 했다.
으메, 겁나라. 병원에 가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술까지.
시멘트 상자 안에서 붙어먹을 남정네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얌,
어쩌다 밖에 나가도 목줄로 오도 가도 못하게 하면서
남정네랑 붙어먹을 상황도 남정네도 전혀 없는데 제발 냅두시오.
나도 썸도 타고 연애도 하고 붙어도 보고 싶단 말이야.
왜, 원천 봉쇄하냐고~?
지들은 내가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도
밤낮없이 뒹굴고 붙어먹어 아이도 낳으면서, 나만 왜?
미치고 팔딱 뛰겠다.
남의 사정 봐주지 않는 족속이 내 말을 들을 리 없다.
가축병원이라는 곳으로 끌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아랫배도 아프고 걷지를 못하겠다.
어디를 어떻게 했길래 멀쩡하던 다리도 말을 안 듣는 거얌.
하는 수 없이 주인 연의 품에 안겨 집으로 왔다.
오면서 의료보험도 없어 돈만 많이 들었다고 난리다.
누가 해달라 했나? 지들 맘대로 해놓고 불평은.
걷지도 못하겠고 입맛도 없고 그냥 구석에 널브러져 잠만 잤다.
그리고 꿈을 꿨다.
넓을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사냥으로 쥐도 잡아먹고 남정네와 붙어 새끼도 낳았는데
어느 날 어느 족속에게 붙잡혀 가스라이팅 당해
사냥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고
할 수 없이 그 족속에 빌붙어 사는 꿈.
그러다 ‘움직여 봐’하며 등짝을 내리치는 소리에 깼다.
정신은 차리겠는데 아직 몸은 못 움직이겠다.
나한테 일어나는 이런 모든 일들을
한 번도 역지사지한 적도 없고
물어본 적은 더욱 없다.
요즘은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우리 몸뚱이를
먹느냐 못 먹느냐 논쟁이 심하더니
법으로 못 먹게 규정해 놓고
동물 보호네 동물권이니 개권이니 하며 외친다.
우리가 죽어서 어찌하든 모르겠고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역지사지해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루는 집에 모르는 놈이 왔다.
원래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모르는 놈을 보면 컹컹 짖는 일이다.
열심히 짖어댔더니 주인 놈이 ‘이놈에 개새끼가’ 하면서 발로 찬다.
그 뒤로도 내가 모르는 손님이 올 때마다 짖었더니
하루는 또 병원에 가잔다.
왜, 또? 병원에 가기는 죽어도 싫구먼.
가더니 마취를 시키고 소리를 내는 목젖을 잘라 냈다.
‘성대 수술’이란다.
이제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
아무리 짖어보려 해도 소리가 안 난다.
벙어리가 된 것이다. 이건 어쩌지?
하긴 연놈에게 목이 터지라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말할 일이 없다.
근데 내 특기인 짖지를 못하니 너무 답답하다.
지들이 목소리를 못내 봐.
말도 못 하고 노래도 못하고 얼마나 죽을 맛인지.
그럭저럭 벙어리가 되어 7년을 살았다.
주인 연놈이 하는 소리가
내가 밖에서 살았으면 이미 죽을 나이라면서
지들 덕분에 앞으로 7~8년 더 살 거란다.
니들도 맘대로 돌아다니며 100년 살 걸
요양병원에 갇혀서 200년 살아봐.
그런 소리가 나오나?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한다.
이 족속은 언제나 역지사지할 줄 알려나?
아마 영원히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절대 못 할 듯.
가끔 우리를 자동차에 매달고 달린다든지 등의
동물 학대 소식이 들릴 때마다 분노한다.
애완동물의 ‘애완(愛玩)’은 순전히 지들 입장이지
우리를 사랑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지들은 ‘애완(愛玩)’이란 명목으로
매일 동물 학대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다.
내 옷을 홀딱 벗기고 지들 옷 입혀주고
지들 맘대로 목줄로 매어 끌고 다니고
짖지도 못하게 성대 수술하고
아이도 못 낳게 불임수술하고
지들 맘에 안 들면 수시로 발로 차고
평생을 배고프게 살게 하고
눈치 보며 재롱떨게 하고
이게 동물 학대 아니면 뭔가?
‘물어봤냐고~?’하는 노래는 잘 부르더니
어느 하나라도 “나한테 물어봤냐고?”
모두 지들 맘대로 해놓고선
지들은 동물 보호하고 동물권 보장한 줄 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좀 하지 마.
니들 사랑받고 싶은 생각 눈곱만큼도 없다.
제발 하루를 살아도 사람은 사람처럼~!
개는 개처럼 살게 해주시오. 아멘~!
하나 더~! 애완견(푸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동물 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염세주의 철하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진실하고 충직한 친구인, 매우 영리한 개를 사람들이 고리로 묶어두나니! 나는 그런 처지의 개들을 볼 때마다 개에게는 심심한 동정을, 개의 주인에게는 강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몇 년 전에 『더 타임스』에 보도된 한 사건을 흐뭇한 마음으로 떠올린다. 그 당신 ○경(卿)이라는 사람은 커다란 개를 묶어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안마당을 걷다가 다가가서 개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로 그 순간 그 동물은 주인의 팔을 통째로 물어뜯어버렸다. 맞아, 바로 그거야! 그 같은 행동으로 그 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당신은 나의 주이이 아냐, 짧기ᅟ간 한 나의 삶을 망치려는 악마일 뿐이지!’ 개의 목을 묶어놓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벌이 내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