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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Jun 15. 2024

161. ‘헌신(獻身)’의 의미

살은 의미다 - 161

헌신(獻身)’은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다라는 의미다. 개신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앞에 헌신(獻身)을 붙여 ‘헌신 예배’란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예배란 본디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종교계에서 주로 쓴다. 특히 불교에서는 ‘예불, 천주교에서는 ‘미사 등 종교별로 예배를 부르는 명칭이 다른데 예배는 주로 개신교의 용어로 자리 잡았다. 개신교에서 ‘헌신 예배’는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바쳐 마땅한 대접을 간절하게 해드린다는 의미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전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특히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기 쉬운 오류다. 그 첫째가 부모와 자식 사이다. 부모는 늘 자식을 위해 간이라도 빼줄 만큼 헌신하면서 키운다. 그래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가 있어?’라며 한탄한다. 자식은 어려서 독립하지 못할 때만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다. 커서 자립할 나이가 되면 부모 말을 안 듣는 것이 독립의 첫걸음이다. 진정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으려면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말을 듣는 ‘마마보이’와 ‘마마걸’은 인기도 없고 결혼도 못 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마마보이나 마마걸은 독립적인 사고와 판단을 자체적으로 잘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고대로 움직이는 현대의 자식들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것이 심각할 경우 자식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할뿐더러, 각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꽤 많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빙자한 지나친 간섭이 만들어 낸 부모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삐뚤어진 효도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헬리콥터 맘’이라 불리는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는 자식들이 많이 보이는 현상이다.

두 번째가 연인이나 부부 사이이다한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공부 잘하는 고학생을 물심양면으로 헌신해서 성공시켜 놓으니 부잣집 딸을 찾아 배신하는 장면은 옛날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이었다. 요즘은 그리 가진 것 없는 남자에게 헌신하는 여자는 바보 소리 듣는다.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라는 말이 나온 연유다. 또한 함께 따라붙는 용어가 착한 여자 콤플렉스다. 지고의 희생과 헌신을 하고도 존중받기는커녕 사랑한다는 착각 때문에 모든 것을 감내하며 절대 복수나 질투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뒤에서 눈물짓는 자존감 낮은 여자의 전형이다. 옛날 며느리 공부에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란 말이 있었다. 시집가면 저래야 한다고 강요받은 것이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시초가 아닌지. 요즘은 남자가 장가가면 저래야 할 상황이다. 자식들 사는 걸 보노라면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한편 연인 사이든 부부 사이든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관계는 정상적이지도 않고 오래 갈 수 없다. 

헌신도 내면을 깊이 들어가 보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고 연인이나 부부가 상대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해준 만큼 받으려는 것은 헌신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법륜 스님은 해준 만큼 받으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장사꾼의 마음이란다. 덕을 보려 결혼했는데 덕을 보지 못할 상황에 부닥치니 싫고 미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할 때 1년 정도 일찍 태어난다. 송아지나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서 걸어 다닌다. 그러나 인간은 1년 정도는 지나야 겨우 일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걸어 다녀도 긴 기간 절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군가가 24시간 내내 세심하게 보살펴 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엄청난 보살핌과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가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잘나서 자기 앞가림하며 살아가는 줄 알고, 부모는 새끼를 낳았으면 당연히 해야 할 사랑과 헌신의 값은 받으려 자식은 놓아주지 않는다. 부모의 엄청난 헌신을 받은 덕분에 살아남았고 지금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부모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자식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식에 대한 헌신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앞에서 말한 법륜 스님의 말처럼 장사할 마음으로 자식을 낳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랑은 친밀감열정헌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 있다. 그중에 헌신이란 상대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결정을 의미하고, 장기적으로는 사랑을 유지하겠다는 책임감을 의미한다. 세 가지 구성 요소 중 헌신이 가장 안정성이 높아 장기적인 지속성을 갖고 있어 사랑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라 할 수 있다열정만 있는 사랑은 백년해로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을 사라지고 친밀감과 헌신이 높아져 백년해로할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잘 조합된 사랑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완전한 사랑이지만, 그런 사랑을 이루기 쉽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 열정만 있고 친밀감이나 헌신이 부족하다면, 이것은 미성숙한 사랑이거나 하룻밤 사랑이다. 한편 친밀감이나 열정 없이 헌신만 존재하는 사랑은 공허한 사랑이 될 수 있다. 오로지 의무와 책임만이 존재하는 사랑으로 오래 사귄 연인 사이나 상대방의 조건만 보고 결혼한 부부가 이 같은 감정을 느끼기 쉽다. 친밀감과 헌신이 높은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반려자 간에 생기는 사랑이 우정적 사랑이다. 오랜 인생길을 함께 걸어온 노부부처럼 친밀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습관들조차 비슷한 특징이 있다. 열정과 헌신이 높은 상태의 사랑은 허황된 사랑 또는 어리석은 사랑이라 한다. 열정을 빠르게 식는 속성이 있어 가장 쉽게 변한다. 열정만으로 성급하게 결혼을 추진하면 오래 유지하기 어려운 위험이 존재하는 이유다. 사랑에서 헌신은 음식에서 소금’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다.

희생과 헌신의 차이는 과연 뭘까? 희생과 헌신은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희생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빼앗기거나 포기하는 것이며헌신은 타인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차이점에서 보듯이 희생의 가장 큰 오류는 ‘나’라는 중심이 없고 타인의 목적을 위해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제물 같은 느낌이다. 자식에 희생하면 나는 사라지고 자식만 남는 격이다. 하지만 헌신은 자발성이고 ‘나’라는 중심이 있다. 헌신하는 관계 속에서는 ‘나’와 ‘너’의 목적이 없다. 오로지 ‘우리’의 관계만 있을 뿐이다. 자식에 헌신하면 나와 자식즉 우리가 남는 것이다둘 다 자신의 이익을 뒤로하고 다른 사람이나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둘 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데 가치가 있다. 자식들도 부모의 희생이 아닌 헌신의 에너지로 살아간다면 부모의 자연스러운 뒷모습을 닮으며 자연스레 물들어 갈 것이다.

내가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존중과 보답을 얻으려는 것과 남이 나를 위해 헌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잘못된 바람이다. 이 두 마음을 버릴 때 타인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비우고 자립할 수 있으며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누구에게든 헌신짝 되기 전에 무한의 헌신을 멈추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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