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권태(倦怠)’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97

by 오석연

인간의 삶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간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고, 충족되면 권태가 온다. [쇼펜하우어]

‘권태(倦怠)’‘어떤 일이나 상태가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을 뜻한다. 심리학적으로 지루함을 의미하며, 불쾌한 감정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상황이나 활동에 관한 관심 부족, 집중 어려움, 그리고 만족스러운 참여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권태(倦怠)는 인간의 본능과 깊게 연결된 심리 상태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움에 대한 탐색은 생존을 위한 기본 본능이다. 따라서 권태는 뇌가 ‘더 이상 탐색할 가치가 없다’라고 보내는 신호이자 경고등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가 아니라 ‘더 이상 의미가 없다’라는 권태는 생존 본능의 정지 신호이다.

연구자들에 의한 권태의 정의는 “현재 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 부족과 집중 어려움을 느끼는 불쾌하고 일시적인 감정 상태”로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이를 충족할 수 없는 갈등에서 비롯되고 결과적으로 불안, 초조함, 무기력감이 동반되기도 한다.

‘권태기(倦怠期)’는 연애나 부부 관계에서 초기의 열정과 설렘이 줄어들고,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기간을 말한다. ‘사랑이 변했다.’, ‘연애가 식었다.’, ‘권태가 왔다’라고 표현하며, 많은 커플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리상담 자료에 의하면 권태기는 연애 커플에서는 6개월~2년 사이에, 동거나 결혼에서는 3~7년 사이에 발생하며 많은 커플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권태기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연애나 부부 관계에서 나타난다. 초기의 열정적인 사랑이 안정적인 동반자 사랑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지만, 무시하면 관계 만족도 저하, 갈등 증가, 심지어 이별로 이어질 수 있다. 연애 초기에는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분비되어 모든 게 설레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도파민이 줄고 예측할 수 있는 일상이 지루함을 유발하게 되고 새로운 경험 부족하여 짜릿한 자극이 사라진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시작되는 사랑도,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불타오르던 마음도 세상만사 만물이 그러하듯 쉼 없던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순탄한 사랑을 가로막는 권태는 곧 마음의 휴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 권태는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굳이 탓하자면 지칠 줄 모르고 과감히 서로에게 쏟아부은 둘 사이의 과한 사랑 탓으로 돌릴 수 있겠다. 그만큼 어쩔 수 없는 것, 타인과의 만남에서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불안과 관계의 불완전함이 권태라 할 수 있다.

권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무자극 상태보다 과잉 자극을 선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권태의 원인으로 과도한 반복성, 자극 부족, 의미 상실로 인하여 생물학적인 도파민의 부족이나 과도한 노출로 인한 보상 중추 둔화 등이다. 권태의 영향으로 만성적 권태는 우울증, 불안, 충동적 행동 등 관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지루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 떠오르는 것과 같이 창의성 촉진 기능도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권태기’는 익숙함으로 인한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감정적 거리감으로 나타나며, 대화와 스킨십 감소, 짜증 증가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뇌과학적으로 권태는 주의 집중 실패와 관련이 깊어 뇌가 의미 있는 자극을 찾지 못할 때 발생하며, 시간 지각이 왜곡되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진다. 즐거운 시간은 엄청 빨리 지나가지만, 지루한 시간은 엄청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권태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권태가 보내는 신호를 읽고 근본 원인을 파악하여, 그 신호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활동이나 환경에서 지루함이 오는 상황적 권태와 삶 전체가 무의미하고 존재감에 대한 회의에서 느껴지는 존재적 권태가 있는데, 상황적 권태의 경우 특정 활동이나 환경을 새롭게 바꾸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매일 하는 일 바꾸기, 새로운 음악이나 미술 활동하기, 새로운 기술 배우기 등의 새로운 경험으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권태를 줄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능력보다 좀 더 어려운 활동, 주의 집중 훈련, 신체 활동 등도 권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관계 권태라면 모임, 동호회, 클래스 가입 등을 통해 사람과의 깊은 대화와 여행, 취미의 새로운 공동 경험 만들기로 관계에서의 권태를 극복할 수 있다. 존재적 권태의 경우는 현재 하는 일이 ‘돈을 벌기 위해서’보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자기 암시로 의미를 다시 찾는 노력이 도움이 된다. 권태는 ‘삶이 충분히 자극적이지 않다.’라는 뇌의 정당한 신호이다. 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작은 것이지만 새로운 한 가지를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대부분의 권태는 생활 변화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하지만 권태가 몇 주 이상 지속되고 우울감·무기력감이 강하다면 전문가(상담심리사,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권태 극복의 핵심은 신규성이다. 그렇다면 취미, 여행, 데이트 등의 방법에서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는 것이 권태 극복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열정을 유지하며 권태를 극복한다면 권태는 관계의 ‘위기’가 아니라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헤어졌던 커플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만나면 더 끈끈해지고 권태기를 극복한 많은 커플이 더 강해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권태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단계다. 모든 장기적인 인간관계는 새로움, 설렘으로 시작한 열정 단계에서 안정 단계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당연하게 발생하는 마음의 감정이 지루함이다. 권태는 ‘관계가 끝났다’라는 뜻보다 ‘관계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할 때가 됐다’라는 신호다. 커플 대부분이 이 시기를 겪고, 이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경험과 소통을 늘리면 더 단단한 관계가 될 수 있다.

권태를 부정적인 신호가 아닌 변화를 촉구하는 기능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상황이 의미나 자극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새로운 활동이나 목표 탐색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일상이나 관계에서 권태가 느껴지면 이는 ‘더 만족스러운 것을 찾아라.’라는 뇌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진화적으로도, 권태는 위험한 정체나 비효율적인 행동을 피하게 하는 적응 메커니즘으로 여겨진다.

권태기도 단순히 지루한 시기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본능·관계·의미 감각이 재조정되는 전환 구간이라 볼 수 있다. 연애·결혼에 있어 권태기도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새로움이 사라진 상태이다. 상대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가 지루해진 경우가 많다. 한편 권태기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권태기는 인간관계에서 정상적으로 오는 과정이고 필요하다. 권태기가 없다면 인간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회피하면 무기력·중독·파괴로 흐르지만 이해하면 방향 전환·창조·성숙으로 이어진다. 권태기는 삶이 멈춘 시간이 아니라, 삶이 방향을 바꾸기 위해 잠시 속도를 줄인 상태라 할 수 있다.

권태는 무시하거나 억누르면 우울증·중독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인간의 적응과 성장에 중요한 기능적 감정으로 평가되는 긍정적인 점도 있다. 권태는 단순히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현재 상태가 더 이상 최상이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 변화와 창의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활동, 취미, 목표를 탐색하게 만들어 개인적 성장을 촉진하고 많은 예술가, 작가, 과학자들이 지루함 속에서 작품을 창조하고 연구 활동에 전념하게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여 자아 성찰로 명확한 가치관과 목표를 세우고 인간관계에서는 권태를 극복함으로써 더 성숙하고 안정적인 사랑으로 발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와 같이 자극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즉각적 쾌락이 많아질수록 뇌의 보상 기준이 높아지면서 평범한 경험은 무의미함으로 처리되어 권태는 심해진다. 권태는 인간 본능이 ‘지금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다’라고 보내는 메시지로 ‘새롭고 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라’라는 뇌의 따끔한 조언이자 생존 전략이다.

샤를 보들레르는 “권태는 욕망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에서 생긴다.”라고 했다. 살면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높은 욕망의 언덕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훨훨 날아다니며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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