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98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네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비난도 받지 않는다.” [엘버트 허버드]
‘비난(非難)’은 ‘개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불신임하고 나쁘게 말하는 행위’를 말한다. 누군가가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한 데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을 질 때 비난받게 된다.
비난과 비슷한 말로 ‘비판(批判)’이 있는데. 비난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단점을 공격하거나 폄훼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표현이고, 비판은 상대방의 문제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지적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의도를 가진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비난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고, 비판은 건설적인 대화의 시작점이며 올바르게 사용하면 상대방과 신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로 타인을 탓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인 비난의 심리적 이유는 인간의 방어기제와 관련이 깊다. 즉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피하거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비난을 사용한다. 이러한 비난의 주요 심리적 이유는 첫째, 자존감 보호와 자기 편향이다. 성공할 때는 자기 능력을 인정하지만, 실패할 때는 외부 요인이나 타인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무의식적 전략으로, 대부분 사람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편향이다. 둘째, 죄책감, 수치심, 불편한 감정 피하기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타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특히 부정적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셋째, ‘투사’라는 방어기제다. 자신의 결함이나 부정적 특성을 인정하기 싫어 타인에게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통제력을 잃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타인을 비난하면 상황을 ‘타인의 잘못’으로 만들어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타인의 행동은 ‘성격’ 탓으로 돌리지만, 자기의 행동은 ‘상황’ 탓으로 보는 경향,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비난을 통해 감정을 풀어내는 감정 배출과 공격성 등이 비난 심리적 이유들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없이 흘러나오는 정치권 뉴스를 보노라면 진정한 뉴스인지 비난의 말장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정치와 비난은 매우 밀접할 수밖에 없고 정치 과정에서 ‘비난’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전략적 도구로 작용하며, 권력 유지, 지지자 결집, 상대 약화 등을 목적으로 십분 활용된다. 비난이 인간의 기본적 편향과 연결되어 정치에서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비난이 좋은 결과는 자신의 공로로 돌리고, 나쁜 결과는 상대방이나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 상대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진영을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는 점, 분노나 공포 등의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투표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점 등이 정치권의 놓칠 수 없는 동아줄인 셈이다.
하지만 비난의 정치는 타협을 어렵게 하고, 정책 논의 대신 감정싸움으로 변질되어 바른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고 공공 신뢰가 무너진다. 결국 민주주의의 양극화, 사회 분열 등 부정적인 면만 초래한다. 상대방의 못한 점을 비난하기보다 상대보다 잘하겠다는 진보의 정치는 요원한 것인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정치 속성상 소시민의 희망 사항으로 남겠지요. 그래도 상대를 비난으로 깎아내려서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상대를 놔두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우월해지는 정치, 비난 중심에서 이해와 해결 중심의 정치가 되길~!
비난하는 습관 즉 자신이나 타인을 과도하게 탓하는 경향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 패턴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비난 충동이 생기면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멈춤’ 습관 들이기,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의 비율 나누기(상대와 나의 책임 비율), 비난 뒤에 숨은 감정과 필요를 찾아 말하기, 비난의 순간 기록하기 등으로 과도하게 타인을 탓하거나 비난하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첫째,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비난이 나를 괴롭히기 위함인가? 나름의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가? 이성적으로 구분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둘째,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시간 낭비고 에너지 낭비고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먼저다. 세상과 타인의 소음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세상은 더 소란스러워지고, 사람들은 더 말이 많아질 뿐이다. 다른 사람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내 삶이 소중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단기적으로는 안도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관계를 해치고 개인 성장을 막기 때문에 비난 습관이 강하다면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거나 책임을 인정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난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고 의식적으로 사용하면 개인의 성장, 관계 개선,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핵심은 비난의 에너지를 내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건설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자기 비난은 자기 성찰과 동기부여의 기회로 활용한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점은 뭐지?’와 같이 불편한 감정을 성장 동기로 바꾼다. 타인 비난은 자신의 건설적 피드백으로 변환한다. 타인 비난 충동이 생기면 ‘너 때문에~’ 대신 ‘~할 때 ~한 감정이 들어, ~해 주었으면 좋겠어’로 비폭력 대화 표현을 활용하면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지 않고 문제 해결로 이어져 관계가 깊어지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 한편 사회적․정치적 비난은 변화 촉진 도구로 사용한다.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에 대한 분노를 개인 탓이 아닌 구조 탓으로 방향 짓고, 구체적 행동 제안과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비난 에너지를 창의성이나 생산성으로 승화한다. 비난하고 싶은 감정이 강하게 올라올 때 그 에너지를 다른 곳, 글 쓰기, 그림 그리기, 문제 해결 활동 등에 쏟는다.
다만, 비난이 구체적이고 행동 중심일 때만 긍정적이다. 인격 공격, 일반화, 반복적 비난은 절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을 때는 타이밍을 조절하거나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비난 자체를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에너지와 메시지를 건설적으로 방향 짓는 연습이 중요하다. 비난은 ‘뭔가 잘못됐다.’라는 강한 신호이므로 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폭발시키지 않고 변화의 촉매로 만드는 것이 비난의 진정한 긍정적 활용법이다.
“적들이 있나요? 좋습니다. 그건 당신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위해 서 있다는 뜻입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비난은 종종 비난하는 사람의 문제이거나, 당신이 제대로 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비난을 받을 때 너무 마음에 새겨 상처받지 말고, 건설적인 부분만 취하여 성장의 기회로 삼고 앞으로 나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