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201
“거절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의 입 때문에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도록.” [Steve Maraboli]
‘거절(拒絶)’은 ‘상대편의 요구, 제안, 선물,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는 것’으로 ‘거부(拒否)’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 다만 거절은 개인 간 부탁·제안·고백 등을 안 받는 것이고, 거부는 공식적·집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좀 더 강한 느낌이다.
거절은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불필요하고 해로운 요구나 제안을 물리치는 데 매우 중요한 처세술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과하게 거절만 줄곧 하는 행위는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어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적당히 잘 써야 하는 게 중요하다.
거절하는 심리적 이유는 현재 이 관계나 상황이 내 삶의 에너지와 방향에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는 직관적 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사람은 대부분 내가 덜 아픈 선택을 하는 생존 본능에 따라 거절하게 된다.
한편 거절을 잘 못하는 가장 큰 심리적·사회적 이유는 첫째, 상대에게 미움을 받기 싫다는 심리이다. 상대에게 싫은 사람 되고 싶지 않고 사회적 배제(왕따 등)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다. 둘째, 상대방이 상처받는 모습 보기 싫다는 심리이다. 거절에 대한 죄책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셋째,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좋은 사람 이미지 욕구,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요구라 할 수 있다. 넷째, 갈등 자체를 극도로 피하고 싶은 갈등 회피 성향이다. 싸우는 것보다 내가 참는 게 낫다는 심리이다. 다섯째, 거절 경험이 부족해 거절하는 기술이 없는 것이다. 거절 표현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한 경우다. 그 외에도 상대방이 약해 보여 보호하려는 본능, 관계가 악화되어 미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이 거절을 어렵게 한다. 결론적으로 거절을 잘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하고, 상대가 상처받을 것에 대한 죄책감과 괴로움 등으로 거절하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거절당하는 사람보다 거절하는 사람이 되는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거절당하는 사람은 거절당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생각보다 상처도 덜 받고 쉽게 회복된다.
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내 뜻을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는 마음엔 앙금만 쌓이기 쉽다. 이렇게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할 뿐이다. ‘아니오’ ‘안 돼요’ ‘싫어요’ ‘No~!’ 등 짧은 몇 마디 말을 마음이 약해서, 혹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솔직하게 ‘No’를 말할 수 있어야 ‘Yes’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의 토대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는 가능해진다.
특히 매우 가까운 가족관계에서도 서로에게 싫다 좋다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갈등과 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관계도, 고부 관계도, 부자 관계도 모두 그렇다. 모두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지낸다는 것, 싫어도 촣은 척 미워도 아닌 척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 마음에 앙금만 쌓여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상대의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싫은 감정이 솟구치고 ‘시’자만 들어도 고개를 돌린다. 그렇다고 시부모나 며느리나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냥 싫고 미운 것이다. 이런 갈등의 시작은 처음부터 거절을 잘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확률이 높다. 거절에 익숙해지면 기분 나빠하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 결국 자기 마음을 숨기는 데서 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거절을 잘하고, 잘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생각이 옳다’, ‘내가 먼저다’라는 일방성부터 극복해야 한다. 가면을 벗고 똑같이 대하고 눈치 보지 않으며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라고 얘기하면 서로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해지는 지름길이다. 많은 면에서 솔직하면 마음의 앙금이 쌓일 여지가 없다. 마음의 앙금은 어딘가 무엇인가 불편한 마음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노후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자식과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다. 자녀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살피고, 자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으로 어려워진다. 자식 또한 부모니까 하는 수 없이, 남들 눈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자기희생을 감수한다. 그런 억지 정성과 사랑 없는 행위가 부모 자식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거절을 흔쾌히 받아들여 마음에 앙금이 없는 것이야말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누구나 거절은 불편하다. 상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소통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거절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누군가와 이야기한다는 것은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조율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거절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소통을 어렵게 한다. 상대의 말을 가능하면 들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에 말을 섞기부터 겁이 나고 싫어지는 것이다.
윗사람이나 상대방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려는 경향이 있는 예스맨(Yes-man)‘ 반면 대부분의 제안·의견에 우선 거절부터 말하는 경향의 노맨(No-man), 둘 다 정상은 아니다. 예스맨은 상사 눈에 잘 띄고 승진·평가에 유리한 경우 많으며 팀 분위기 좋게 유지하여 단기적 신뢰·인맥 쌓기 쉽고 스트레스 덜 받는 편이다. 반면 독자적 의견 개발이 안 되어 자기 성장 거의 멈추고 질 낮은 결정에도 동참하게 되어 책임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무시당하거나 이용당하기 쉽고 거절을 못함으로 인한 과부하로 번아웃 위험이 높다. 노맨은 잘못된 방향 잘 막아 리스크관리 강점이 있고 독립적 사고·전문성 인정받기 쉬우며 진짜 중요한 때에는 Yes로 무게감을 줄 수 있다. 반면 까칠하며 강한 부정적 이미지로 승진·기회에서 밀리는 경우 많다. 과도한 필터링으로 인한 좋은 제안이 묻힐 가능성이 높고 인간관계에서 고립되기 쉽다. 현실에서 가장 좋은 유형은 상황에 따라 Yes/No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우리나라 사회조직에서는 적당한 예스맨이 단기적으로 유리하나 이유 있는 예스맨(70~80%), 선택적 노맨(20~30%)의 조합을 잘 구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회 고수로 거듭나고 이상적인 처세술이다.
상대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은 완벽하게 상처 0%를 만들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상당히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기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효과적인 기본 공식은 감사 → 공감/이해 → 단호한 거절 → 대안 or 긍정 마무리의 과정을 거치면 거절당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는 느낌 줄 수 있다.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거절 화법은 첫째, 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않는다. ‘글쎄~’ ‘바빠서~’ ‘나중에~’ 등과 같은 말은 더 큰 상처와 오해를 줄 수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 표현을 하는 것이 낫다. 둘째, 절대 상대 탓을 하지 말고 내 상황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네가 좀~’ ‘네가 이러니까~’ 등의 말보다 ‘내 상황이~’ ‘내 마음이~’ 등의 말로 전달한다. 셋째, 거절 후 바로 주제를 전환하지 않는다. 상대가 거절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상대가 전혀 상처받지 않는 거절은 불가능하지만, 상처는 받았어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거절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한다는 태도와 명확함 그리고 부드러운 말투이다.
일반적으로 거절하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내가 가져오기 때문에 자유로워진다. 안 하기로 결정하면 해야 한다는 강제에서 벗어나 얻어지는 시간의 자유, 싫은 일에 쓰던 감정 에너지(짜증, 참기, 죄책감)가 사라짐으로써 얻는 에너지의 자유, 거절 상대의 눈치 및 미움받을 걱정, 착한 사람 이미지 유지 스트레스 등에서 벗어나 얻어지는 감정의 자유, 억지로 유지하던 애매한 관계가 정리되고 진짜 원하는 관계만 남게 되고 관계의 질이 올라감으로써 얻어지는 관계의 자유 등을 얻을 수 있다.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자유는 거절한 직후에 느끼는 ‘안 해도 되는구나’라는 미묘한 감정에서 오는 본능적 해방감이다. 이런 느낌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제대로 거절하면 다음 거절이 훨씬 더 쉬워지고, 점점 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그러니까 거절은 단순히 ‘안 해요’가 아니라 내 인생의 운전대를 다시 내가 잡는 선언인 셈이다. 그래서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대부분 장기적으로 보면 시간도, 에너지도, 관계의 질도, 자기 존중감도 더 풍요로워지는 경향이 강하다.
거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지만 거절할 줄 모르던 사람이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불행한 관계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문화를 달가워하는 사람도 없다. 솔직함은 인간의 본능이고 진실함은 우리 인생의 신용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은 서로 ‘No~!’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거절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지고 감정이 건전해질 수 있다.
거절당하는 상대보다 거절하는 내가 더 상처받고 어렵다는 사실을 비추어보면 ‘거절’ 자체가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거절로 내 삶의 자유와 주도권을 나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