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존재(存在)’의 의미

삶은 의미다 - 200

by 오석연

“이 순간 당신과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존재(存在)’‘있음’이다. 한자도 存(있을 존)과 在(있을 재), 둘 다 ‘있다’라는 동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가 존재한다.’, ‘~가 있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한자 있을 존(存)은 무형의 생각, 신념, 사랑 등의 가치를 보존하고 추구하는 ‘있음’을 의미하고, 있을 재(在)는 인간의 오감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해당 시공간의 범위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명사로써 ‘존재’는 ‘대상’이다.

존재(existence)의 실질적 의미는 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이 논의해 온 개념이다. 먼저 형이상학에서 존재는 ‘실재하는 모든 것에 중립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존재는 실재의 기본 조건으로, 가상의 것과 구분되는 속성이다. 존재를 본질(속성)과 분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철학자마다 다르고 복잡해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보편주의에서 존재는 모든 객체가 가진 보편적 속성으로,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실존주의적 관점의 존재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선택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이는 ‘존재의 의미’를 인간의 삶과 연결 지어, 형이상학적 추상성을 넘어 실질적·실존적 의미를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존재의 의미는 개인이 어떻게 해석하고 사는지에 달려 있으며, 이는 철학의 매력입니다. 우리 삶에서 존재는 단순히 ‘살아 있다’라는 사실을 넘어, 삶의 모든 경험, 선택, 고통, 기쁨의 기반이 된다. 존재가 없다면 의미, 목적, 사랑, 성장 등 삶의 모든 요소가 사라진다. 삶에서 존재는 모든 의미의 전제 조건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삶에서 존재의 중요성은 첫째, 삶의 모든 가치는 존재 위에 세워진다. 사랑하는 사람, 이루고 싶은 꿈, 느끼는 감정, 심지어 고통과 슬픔까지도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을 선행한다’라고 했다. 즉, 우리가 먼저 이 세상에 존재한 후에야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만약 존재가 없다면, 어떤 의미도 창조할 수 없게 된다. 누군가 ‘내 삶은 의미가 없다’라고 느끼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이란 말이다. 존재가 없다면 느낌 자체가 없다. 둘째, 존재는 삶의 유한성(죽음) 때문에 더욱 소중해진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이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선택에 책임을 지며, 진정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오늘의 선택, 오늘의 사랑, 오늘의 후회는 그 중요성과 무게감을 잃는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소중한 것처럼 삶도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빛나는 것이다. 셋째, 존재는 자유와 책임의 출발점이다. 자유는 무거운 책임이지만, 동시에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가 선택하는 직업, 관계, 가치관, 심지어 하루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존재를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넷째, 존재는 연결과 관계를 통해 깊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깊이를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를 만나 행복할 때의 충만함 등은 존재가 타자와 연결될 때 더욱 강렬해진다. 이 밖에도 우리 일상에서 존재의 중요성, 즉 살아 있다는 느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순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고통 속에서도 버티는 순간 등 이 모든 순간이 바로 존재가 삶에 부여하는 선물이다. 우리는 종종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강렬한 증거기도 하다.

삶에서 존재의 가장 큰 중요성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답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일 의미를 창조하고, 사랑하고, 성장하고, 느끼고,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존재와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지만, 동시에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고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죽음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로 여겨져 왔고 실존철학의 핵심 주제였다. 죽음은 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낸다. 존재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고, 결국 죽는다. 이 유한성이 없다면 존재의 의미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만, 이는 오히려 존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죽음의 불가피성 때문에 삶의 매 순간이 더 소중하고 무게를 더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자기의 삶에 빠져 죽음을 잊고 살고, 죽음은 타인의 일로만 치부하며 도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도 대신 죽어줄 수 없고, 내 죽음은 오직 나의 것이다. 따라서 내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충실한 존재라는 증표이다. 존재와 죽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지만, 존재를 가장 생생하게 만든다. 죽음에 관한 생각이 때로 무섭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 더 깊고 아름답다. 우리의 존재는 유한하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진정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존재의 가치는 단순히 ‘살아 있다’라는 사실뿐 아니라,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를 담고 있다. 존재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연결, 사랑, 도움, 창조를 통해 가치가 실현된다. 존재의 가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존재의 가치는 외부에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최고의 가치이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당신이라는 독특한 존재가 나타난 것은 기적과 같다. 그 존재를 통해 느끼고, 사랑하고, 성장하고,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존재의 가치 핵심이다.

존재하는 것,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응답이며 당신이 지금 글을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이 순간이야말로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증명하고 있다. 때로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감정조차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주에 없어서는 안 될 무한한 가치임을 인식하고 삶을 펼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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