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과의 화해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 정신병의 종합병원이었던 내가 어떻게 존재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는가?
비유하자면 내 이야기는 마치 어제 썼던 글이 너무 부끄러워진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내 일상은 어떤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일상에선 나를 점점 더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정신병원에서 완전히 돌아버린 나, 6개월 아기를 안고 죽을 만큼 맞았던 가정폭력, 돌부처로 만들어준 이혼소송, 매일 나의 한계를 바라봐야 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육아는 날 변화의 소용돌이에 과감히 밀어 넣었다.
당신들이 고통이라 부를지 모를 소용돌이에서 난 정말이지 돌아버린 상태에서 춤추었다. 내가 얼마나 예술적으로 나와 나의 삶이 함께 어우러져 춤췄는지 지금부터 차분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그동안 무례했고 상처 주는 것에 익숙했으며 비인간적이고 함께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했으며 나의 잘못을 많은 분들이 눈감아 주었다. 이로 인해 지금의 난 아주 건강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미친 인간에서 나의 존재를 탈바꿈시켜 준 두 가지 가 있다. 먼저 나라는 미친 사람과 화해였다. 나와 손을 부여잡고 화해하기 위해선 내가 아주 별로인 인간이라라는 걸 알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또
많은 종류의 인간과 화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이 그리 위대하지 않다 는 걸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알아버린 순간 비로소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변화했고 아직도 변화하고 있으며 그것 변화를 낱낱이 파해치는 중이다.
우린 왜 변화해야만 하는가.
변화하고 싶지 않아도 인간은 변화한다. 또 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인간의 변화는 곧 삶에서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의 문제다.
만약 당신은 고통을 만난다면 어떻게 고통과 마주할 것인가?
고통이 오면 무너져 내리고
행복이 오면 덩실거리며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허허 대며 말할 것인가?
고통의 순간에도 눈을 뜨는 오직 지금 순간의 행복에 감사함에 살아갈 것인가?
어떤 인간이 더 지혜로운 자인가.
변화해라. 던져지는 주사위에 돌고 도는 상태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라. 어떤 숫자가 나와도 상관없다 주사위가 모서리로 서있더라도 좋다. 무수한 변화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자 단단하게 나아갈 것이다.
잔치를 벌여라.
축제다. 오늘 벌어지는 고통 또한 축제렸다.
이제 당신 차례다. 변화의 춤사위에 몸을 맡길 것인가. 이미 일그러진 벗겨지지 않을 것 같은 밤나무처럼 단단한 가면을 온몸을 부여잡고 머무를 것인가.
선택은 이제 당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