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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에세이

멋있게 이혼했다.

by psy

멋있게 이혼했다.


24년 12월 26일 조정이혼 기일이다.

전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자 지구 멸망을 대하는 자세까지도 그에겐 축 제렸다. >


아직도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단정하고 화려하지 않은 겸손한 스타일에 꾸미지 않았지만 멋스럽고 지적인 분위기를 내는 도도한 옷차림. 독특하지만 강인한 예술가스러운 문장력으로 법정에 당당하게 선 나는 주인공이 되어야지.


설렌다. 아. 설렌다.


약간의 유머러스함 두 방울 넣어 어떤 시비와 방해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 90%와 함께

나를 뛰어넘는 테스트를 화려하게 만나보자.

어찌나 설레는지 가슴이 쿵쾅거려 잠 못 이룬다.

나에게 불안 분노는 없다.

오직 그 안에 변화될 나를 발견한다.

그 공간에서 나는 멋지고 강하며 뛰어날 것이다.


일상은 변화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불행이라 불리던 시간은 나에겐 감사함일 뿐이다.


홀가분하다. 끝나지 않았지만 이혼한다는 사실이 그토록 기쁘다.

가정폭력이 이혼사유지만 결국 내가 혼자가 되고 싶어서였다. 전혀 몰랐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몰랐다. 결국 사랑이 뭔 줄도 몰랐다. 어쩌면 사랑할 줄 모르는 자에게 결혼을 실험당한 남편 또한 피해자 일 것이다.

미안하다. 그러니 잘살아라.


내 주위엔 이혼 패배자들이 많다. 난 이혼에 승리할 것이다.


주위에 이혼 패배자들은 내 이혼을 예상했다고 한다. 이혼을 겪는 대부분 그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기 파괴, 정서학대, 상대를 극도로 혐오하며 자신의 뇌를 더럽히며, 말기암 환자의 몰골을 했다. 그중 몇몇은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에 와선 그래도 그땐 아름다웠노라 말한다.

그들은 ‘내 그럴 줄 알았어’를 외치면서 왜 자신들의 불행은 미리 대비하지 못했는가.

거울을 보라. 이미 거울을 봤어야 했다. 당신들의 고통 어느 한 지점에서 살점이 찢어져 나가는 반성의 고통을 당신 분노하는 눈동자에서 찾아냈어야 한다. 당신이 피해자였다 말해도 좋다. 근데 부부 사이에 온전한 한 명의 피해자가 가능한 일일까?


결혼에 실패하지 않았다. 난 이혼에 성공했다.


나는 비교한다. 당신보다 더 건강한 이혼이었다고 비교하면서 내가 누구보다 건강했음을 자신한다. 내 이혼은 적어도 고삐 풀린 망아지들의 향연은 아니었다.

가끔은 비교도 꾀 쓸모가 있다. 내 어머니의 이혼보다 건강했다.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그걸로 괜찮다. 아주 장하다.


이혼한 게 자랑이냐고?

어떤 이혼은 혼인 유지보다 이혼이 나은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이 닥쳐도 잘살아낼 줄 알았다.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참 인생이란 게 얼마나 재미있는가? 죽어도 살지 못할 이유를 가지고 나에게 찾아온다.

참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축하한다.

오늘은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날이다.


이건 경험이었다.


이혼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혼을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이혼은 결혼에 대한 실패가 아니다. 이혼은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 있는 너무 자연스러운 경험이다. 이것을 상처로 담고 가느냐 경험으로써 성장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여보게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으니 힘내고 경험으로 쌓고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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