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를 가슴으로 이해하기까지
‘이해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이해라..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말도 안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그의 감정과 느낌을 알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며 자신밖에 모른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러자 저기 진실이 말을 걸어온다.
내 과거 속을 손으로 샅샅이 뒤져가며 천천히 고요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응 엄마라면
너와 나, 같은 엄마라면 가능할지도’
나는 그러니까 정확히 24년 1월 29일 엄마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의 엄마를 향한 분노의 화살을 멈추지 못한 상태였다. 왜 날 위해 누구보다 희생하고 헌신한 엄마를 미워하는 둥지 잃은 아기 새 역할을 36년 동안하고 앉았을까?
미련하다. 미련하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가슴에서 쏟아 오르는.. 나도 모르게 심어져 버린 토악질을 제발 멈추게 하소서.
24년 8월 1일
맞았다. 남편에게 딱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엄마는 헐레벅떡 뛰어와 남편에게 소리 지르며 퍼붓고 있었다.
반복되는 괴로움이 시작됐다.
저 인간이게 전달되는 퍼붓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삼 센티가 넘게 찢겨 나간 내 머리 통보다
저 철없는 인간에게 퍼붓는 분노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아기가 나뒹굴러 울음을 그치지 않는 상황에 분노의 지껄임이 중요하다니..
요란하다. 참 요란했다.
사실 그동안 내 인생도 참 요란했다.
자 잠시 고요해지자.
이제 조용히 좀 하자.
그리고 질퍽하기 짝이 없고 쥐덫처럼 끈적한 시간의 길을 되짚어보자.
맞다. 찾아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분노다 분노였다.
빌어먹을 그놈의 분노였다.
저 분노하는 엄마의 모습을 딱 보니,
내 인생을 악다구니로 몰고 간 행세를 한 주인공이렷다.
비루하지만 나 내 얼굴과 마주한다.
엄마의 얼굴이다. 분노하는 그 얼굴을 내가 꼭 닮았구나.
내가 원하지 않던 내 모습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어릴 적 나에게 언제나 분노를 퍼붓던 그 괴물.
끔찍한 꿈이었다.
요리하는 엄마가 등을 돌렸다.
호랑이의 탈을 쓰고 이빨 빠진 치아를 내보이며 웃었다.
무서워하는 날 보고 그 호랑이는 조롱했다.
나 평생 왜 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지난 일이다. 그것도 몇십 년이 흐른 지난 일..
나를 위로하는 몇몇 부류의 사람들은 그럴 수 있어 아플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렇다 충분히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사는 건
너무 비효율 적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기까지 3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충분히 이해하리라. 일론머스크조차도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 부모는 그런 존재다. 세상이었다. 우리의 전부였던 세상.
많은 상처받은 자들은 그 세상에서 나오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꿈꿔 보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이제라도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흰색 도와지에 회색바탕을 칠하며 온갖 알록달록한 내가 선택한 색상들로 가득 채운다. 나만의 그림을 완성시키고 맘에 들지 않는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리고 이번엔 애초에 회색 도와지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고 몇 날 며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한다.
그림을 그리는 내 가슴은 이야기한다
’ 두려워 ‘
’ 괜찮아’
‘아직 두려워’
‘괜찮을 거야 ‘
맞다.
사실 두려웠다. 두려워서 놓지 못했다.
호랑이의 탈을 쓰고 이빨이 빠진 채 웃는 엄마를 놓지 못한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비겁하다.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당당한 나는 죄다 거짓이었다.
마마걸
나는 마마걸이었다. 세상에 맞서 이겨낼 힘이 없는 가엽고 불쌍하고 비겁하고 촌스럽기 짝이 없는 등신 같은 계집 같으니.
내 엄마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빠의 바람으로 이혼하고 홀로 나를 키웠다. 그런 엄마를 원망했다.
사실 저 성질에 나 같은 성질머리 계집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의 바람도..
남편의 폭력도..
그 분노라는 놈만 없었다면..
피해 갈 수 있었을까?
핑계를 댄다. 핑계라도 대자 엄마 탓도 내 탓도 아니다.
그 분노라는 그놈 그 악다구니의 성질머리 그놈
우린 그 성격을 선택한 적이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나쁜 분노라는 놈을 미워하기며 나를 놓아주기로 한다.
남편에게 죽을 만큼 맞은 그날
생각했다.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나 살 수 있어’
엄마는 나처럼 성질 더러운 엄마는 있었지만 나처럼 기댈 수 있는 엄마는 없었다.
외로운 이혼을 어린 딸아이를 부여잡고 울었던 이유를 이젠 알겠다.
미안하다. 원망만 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의 엄마야.
당신 그 안에 못된 분노까지 내 이제 사랑해 주마.
하며 다짐한다.
사랑한다. 그 나쁜 분노라는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