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은 당신에게 전하는 글 2025.8.22
이 년 전 즈음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에 부목사님 가족들이 캘리포니아 산호제에서 왔다. 사모님은 처음으로 주일 아침 아이들의 묵상훈련을 돕는 사역을 시작했다. 난 그때 반년 정도 유치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봉사를 시작하여 세 살 된 어린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지만 교회봉사에 워낙 안티인 남편을 설득할 수가 없어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 묵상훈련 사역에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묵상 훈련은 영어로 주로 진행되며 어린아이들은 한글과 영어로 병행하기도 한다. 난 연말까지는 주일학교 봉사를 계속 격주로 했지만 아이들이 늘어나고 매주 함께할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하기에 묵상훈련에서 봉사하기로 말씀드렸다. 처음 6개월 동안 보조교사로 훈련을 받고 이 천 이 십사 년 유월 초부터 갓 일 학년으로 진급한 네 명의 사내아이들과 한 명의 여자아이, 총 다섯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히 휴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는 선생님이 보조교사로 함께 해 주어 항상 시끄럽고 매주 정신없는 아이들과 일 년 반을 행복하게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올 유월 초에 이학년으로 다시 함께 만나면서 각각의 아이들의 성장이 매우 다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올여름에는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의 응급상황으로 급하게 두 달 동안 한국방문을 해야 했던 사모님의 부제와 선생님들의 부족으로 주위분들에게 함께 하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중에 나와 십여 년간 친구였고 같은 동네에 사는 김박사님은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토요일 오후까지는 항상 바쁘게 보내는데 올해 봄에 두 차례 정도 보조교사로 이미 아이들과 얼굴을 익혔고 또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하였다.
총괄담당자의 두 달 부제동안의 과정은 아이들의 서로 다른 레벨과 급작스런 과격행동들의 빈번함 등으로 김박사님은 내가 삼십 분 간의 묵상훈련 이후에 혼자 이끌어 가는 Craft Art 시간을 버거워했다. 자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힘든 감정을 드러내는 가운데서 나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끝내는 사모님께 더 이상 내가 함께 하고 싶지 없음을 말씀드렸다. 사모님과의 대화 가운데 연말까지는 지금 아이들 반에 머물기로 하고 내년부터는 유아부 보조교사로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받아주었다.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지만 나와 여러 면에서 맞지 않는 김박사님을 다시 주일에 만날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어젯밤이었던가,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김박사님이었다. 지난주 출타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아이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인사였다. 지난주 다른 선생님이 도와주었고 아이들도 잘 해냈다는 인사를 보냈다. 잠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한 꿈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우리 집 부엌에서 김박사님이 열심히 야채를 씻고 커다란 통에 보리차를 끓이고 있었다. 일 끝나고 피곤할 텐데 집에 들러서 부엌일을 하냐는 대화를 나눴고 한참 동안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생생한 김박사님 모습을 뒤로하고 눈을 뜨니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이제 울 강쥐들은 날 기다리다가 기저귀에 오줌을 쌌을 거다. 문을 열고 뒤뜰에 나갔다. 밤새 비가 와서인지 더위는 한숨 가시고 오랜만에 텍사스에도 초가을의 아침 공기가 나에게 윙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