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는 아프지 마
올해 봄이었을게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삼월 이십일 목요일.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날 오후 직장에서 받은 친구 남편으로부터의 문자를 아마 수 십 번은 읽었을 것 같다. "아내가 많이 아파요."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내가 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은 이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월 중순경인 이천 이십 삼 년 뉴저지를 방문하여 친구와 이틀간 하루 종일 같이하며 지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 친구는 최근 며칠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8시간마다 진통제를 먹고 있다는 얘기를 했고 난 가까운 응급실에 가 보기를 친구에게 권했었다. 그리고 친구는 내가 떠나던 날 응급실에 가서 다행히 신경염 증상임을 진단받고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한 오 년여 전부터 친구는 항상 피곤해 있었고 자주 갑작스러운 복통이나 두통등으로 응급실을 자주 방문했던 것 같다.
삼 년 전 이 있을까. 친구는 오랫동안 좋아지지 않는 근 무력증과 가끔씩 찌르는 듯한 손발의 통증과 머리 아픔 때문에 주치의의 진단을 받고 MRI를 찍고 나서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머리의 전두엽 쪽에 하얀 부위가 보이는 게 의심쩍었고 이후 주치의는 신경계 전문의를 만나도록 의뢰해 주었다. 그리고 작년은 한 두어 번 전화와 문자로 짧게 연락을 주고받은 후 올해 초 해피 뉴이어 새해인사 메시지가 전부였다.
친구의 남편은 친구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그날 저녁 전화를 하였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친구는 뉴저지 한 대학병원의 외래병동 Infusuon Center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암환자를 비롯하여 자가면역환자들을 많이 간호하다 보니 가끔씩은 응급상황도 많이 생겨 근무 스트레스가 높은 것 같았다. 게다가 친구가 다니는 병원, 특히 그 부서는 동양인이 친구 혼자였고 모든 동료들은 백인이 다수였다.
친구 남편 얘기로는 한국에서 아버지를 모셔와서 삼 년간 같이 지내시다가 작년 가을에 한국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가셨는데 올해 초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친구는 남편과 함께 일주일 동안 한국방문을 하여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후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입원하였고 모든 검사를 꼼꼼하게 하였지만 다른 새로운 진단 없이 퇴원하였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 휠체어를 타고 출국하여 미국 입국을 하였다. 바로 도착한 그날 밤 친구는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고 역시 아무런 새로운 진단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직장에 복귀하여 일하던 중 친구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동료들이 같은 병원 응급실로 데려간 날이 마지막 근무가 되었다고 한다.
친구는 3주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뉴저지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과 전문의를 통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던 중 크루츠펠트-야콥병(Creutzfeldt- Jakob Disease), 뇌에 비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이 쌓여 뇌를 파괴하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올 삼월초 집에 퇴원하지 마자 호스피스 방문을 시작한 지 3주째인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뇌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 같아 친구남편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픈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올 4월 초이다. 주말을 끼어 2박 3일로 급하게 친구가 살고 있는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마중 나온 오랜 벗인 Tu와 Dori도 이 년 만에 만났다. Tu 집에 머물면서 우리 셋은 아픈 친구를 두어 번 관장을 해주고 목욕을 시킨 다음 휠체어에 앉게 하였다. 우리는 친구가 어떤 기억이라도 떠올리기를 바랐지만 초점 없이 응시하는 눈동자를 보고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삼주가 지났을까, 성금요일 새벽 여섯 시 즈음 뉴저지에서 친구 Tu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랑하는 친구가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장례식을 참석해야 하는 날이 부활절이 지난 이틀 후라 비행기 티켓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거의 자정이 지나고 겨우 그중에 상대적으로 가장 싼 표를 사고 화요일 아침 새벽비행기를 타기 위해 집에서 새벽 네시에 집을 나섰다. 뉴왁 공항으로 전 동료가 마중을 나왔고 오후에 Tu를 만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천주교 세례명이 엔젤라인 친구의 장례식에 신부님의 짧은 설교 후 긴 Viewing 시간을 가졌다. 그다음 날은 화장지로 향해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싶었지만 부활절 이후 대기줄이 밀려있다며 가족을 포함하여 모두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날 오후 친구 Tu가 뉴왁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휴스턴 하비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열 시가 다 되어갔다.
친구남편은 구월 삼일 친구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십일 후 묘지에 안장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난 이번에는 갈 수없다고 전했다. 친구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 날밤 꿈에 친구와 함께 SUV 뒤에 타고 어디론가 여행하며 서로 즐겁게 바라보며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깨어서 생각해 보니 알 수가 없지만 꿈에서 만큼은 모두 알아듣고 둘 다 기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먼 길에 함께 와서 위로해 주고 간 것 같다. 이제는 함께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의 친구야,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See you again, dearest my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