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를 제거하고 살아남아도 힘든 아이러니한 세상

영화 [어쩔 수가 없다]

by 설민

경쟁자를 제거하고 살아남아도 힘든 아이러니한 세상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설민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가 돌연 해고 통보를 받는다. 어쩔 수가 없다는 통보로 마트에서 일하며 면접장을 전전한다.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진다. 급기야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문 제지”의 자리가 누구보다 자신이 제격이라고 확신한 만수는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씁쓸하면서 막막한 중년의 위기, 가정을 지키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싶은 욕망과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직했지만, 직장에 다니며 누렸던 만큼은 포기가 어렵고, 아내와 아이들을 건사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사양 산업이 주는 막막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영화 속 제지 산업은 디지털화로 인해 저물어가는 사양 산업의 상징이다. 주인공은 평생 종이를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왔지만, 세상이 더 이상으로 종이가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그의 존재 가치마저 위협받는다. 절박함의 근거로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논리를 보여 준다.

제지 공장은 모든 것을 하얗게 표백하고 매끄럽게 펴내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손에 피를 묻히며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다는 아이러니가 위선적으로 드러난다. 사회적으로는 번듯한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사는 날것의 본능이 숨겨져 있음을 상징한다.

종이는 정해진 규격과 두께로 재단되어야 상품 가치가 있다. 중산층이라는 ‘규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노동의 가치가 변하는 시대에 한 개인이 느끼는 실존적 공포를 ‘종이’라는 매개체로 날카롭게 묘사했다.

만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경쟁자들을 죽이고 재취업을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AI와 자동화다. 공장에서 유만수 혼자 일한다. 결국은 그의 자리도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헛수고 그 자체였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해서 그가 가족을 지켰는가? 사실 직장을 잃었을 때보다 더 암울하다. 가족 간의 유대와 믿음이 깨진 그 자리에 무엇이 차지할 것인가가 더 두렵다.

또, 만수는 경쟁자를 죽여 사과나무 아래 묻는다. 타인의 희생이라는 비료를 써서 자신의 낙원을 유지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다. 나무를 가꾸지만, 분재를 하는 모습에서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려는 듯 보인다.

KakaoTalk_20260213_082533053_01.jpg 출처 네이버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가 내뱉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무섭게 느껴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고 책에서 읽은 문장이 더 와닿는다.


드디어 제대로 된 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늘 장애물이 있었고, 우선순위가 있었고,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고,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있었고,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면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것을.

- 앨프레드 디 수자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이다.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로 변명하지 말았으면 하기에 오늘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