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영화 [런]
설민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 나를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한다는 생각을 의심해 볼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엄마’다. 그러나 그런 줄 알았던 엄마가 상상 밖의 인물이라면 어떨까?
태어날 때부터 장애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외딴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며 일상을 보내는 클레이. 딸을 사랑으로 돌보는 엄마 덕분에 힘들지만, 매일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놓인 장바구니에서 하나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고 믿었던 모든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숙아로 태어난 클로이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세상의 세균과 만났기 때문에 천식, 하체 마비, 소아 당뇨 등 있는 병 없는 병을 모두 달고 산다. 그 탓에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는 건 일상이고 종종 구토까지 한다. 이런 이유로 클로이는 엄마 다이앤과 홈스쿨링을 하느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사회생활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클로이는 대학을 다니며 주체적인 사회생활을 갈망한다. 17살이 된 클로이가 대학에 입학 원서를 제출했지만, 합격통지서는 도통 오지 않는다.
어느 날 클로이는 쇼핑백에서 간식인 초콜릿을 빼돌리려다가 자신이 먹는 약 중 하나인 초록색 알약이 들어있는 약통을 발견하는데, 처방받은 사람 이름이 그녀의 엄마였다. 자신이 먹는 약이면 자신의 이름으로 처방을 받았어야 하므로 클로이는 의아해한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이에 관해 물어보지만, 어설픈 대답만 돌아온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수상함을 느낀 클로이가 초록색 약은 삼키지 않고 보관하다가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클로이가 무언가를 알아차린 낌새를 느낀 엄마는 인터넷을 끊어버린다.
이 수상한 초록색 약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클로이는 다이앤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영화를 보던 중 화장실에 간다며 혼자 빠져나온 클로이가 근처 약국에 가서 약에 관해 물어보는데 약사는 이 약은 사람이 아닌 개에게 먹이는 근육 이완제이며 사람이 먹을 경우,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순간 다이앤이 다급하게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와 클로이에게 진정제를 주사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그 이후로 클로이의 방문을 잠가 감금한다.
클로이가 어떻게든 집에서 탈출하기로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몸으로 쉽지가 않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을 시도하지만, 도움을 요청했던 택배원 톰도 엄마에게 살해당하고, 클로이는 지하실에 다시 감금된다. 클로이는 그곳에서 다이앤이 만들고 있던 가정용 신경 독 제조 현장과 함께 여태까지 워싱턴 대학 합격통지서를 숨겼던 것을 발견하고 분노한다. 그러다 다이앤의 결혼 전 성으로 보이는 이름이 적힌 상자를 발견하고 기어가서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데, 그 안에는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었던 자신의 어렸을 적 사진이 있다. 또, 클로이가 출생한 지 약 두 시간 후 사망했다는 사망 확인서, 그리고 멀쩡한 갓난아기가 누군가에 의해 유괴당했다는 신문 기사 스크랩이 있었다.
자신의 진짜 딸 클로이를 잃은 슬픔에 미쳐버린 다이앤이 다른 부모의 아이를 유괴하고 심지어 멀쩡한 아이였지만 다이앤에 의해 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다이앤이 클로이가 필요하다며 화해를 요구하지만, 클로이가 거부하자 가정용 신경 독을 주사기로 주입하려 한다. 클로이가 겁에 질려 온갖 약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에 들어가 문을 잠그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없자 농약을 마셔 버린다. 클로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그녀를 큰 병원에 데려간다.
다이앤이 응급치료만 받고 클로이를 곧장 퇴원시켜 손수 간호하려 하지만, 의료진이 자살 기도를 한 미성년자는 무조건 격리 및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자 클로이를 병원 밖으로 빼돌리려고 한다. 클로이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곧바로 간호사에게 다이앤의 정체를 밝혀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글을 써서 알리려 한다. 힘겹게 쓴 ‘Mom’이라는 글자를 뒤늦게 발견한 간호사가 그 의미를 알고 결국, 다이앤은 병원 경비원에게 피격을 당해 체포되어 교도소에 갇힌다.
7년 후라는 자막이 나오고 클로이는 혼자서 차를 몰고 여성 교도소를 방문한다. 조금 힘겹지만, 지팡이를 짚은 채 스스로 힘으로 일어나 걷는 클로이가 다이앤에게 다가가 자신의 근황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하고 딸까지 낳는 등 행복한 가정을 이룬 듯하다. 그러다가 떠날 시간이 되자 클로이는 갑자기 혀로 자신의 입안을 뒤지더니 입속에 숨겨두었던, 이전에 다이앤이 자신에게 먹이던 초록색 알약 리도카인이 든 비닐봉지를 꺼낸다. 그리고 비정한 표정으로 “사랑해, 엄마. 이제 입 벌려.”라고 말한다.
클로이는 멀쩡한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십수 년간 감금했던 다이앤에게 똑같은 짓을 7년간 그대로 돌려주며 복수를 하고 있던 것이다. 다이앤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뺏어서라도 갖고 싶은 욕망,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장애를 만들면서까지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만드는 심리는 무엇일까? 다이앤은 자기애적 인격 장애로 상대의 인격체를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세상과 단절시키고 자신만 바라보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을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새삼 무섭게 느껴진 영화다. 딸을 사랑해서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감옥을 만드는 다이앤의 심리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