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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Jun 21. 2024

슬기로운 감빵생활

지금 너의 감방은 어디야?

슬기로운 감빵생활

지금 너의 감방은 어디야?


설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곳이 교도소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곳이 어떤 곳일까? 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교도소의 모습을 보면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다만 나는 굳이 경험해 보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마음속으로 가둔 감옥도 힘든데, 외부에서 자신을 통제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미지의 공간 속, 사람 사는 모습을 그린 에피소드 드라마. 감방이라는 곳에서의 슬기로운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서건 슬기롭게 살아야 삶이 고달프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슬기롭다’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단순하게 복종하고 의지하며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나답게’ 사는 것을 뜻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주체인 ‘내’가 없다면 슬기로운 게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제목은 이상한 반전을 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제혁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감옥을 ‘감빵’이라 칭한 것이 왠지 더 친숙하고 가까운 이들이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일반인과 범죄자의 선하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또는 어떠한 사건에 휘말려 느닷없이, 때로는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16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2024년도에 보면서도 재미있었다. 

   포기를 모르고 노력하는 슈퍼스타 야구선수 제혁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들어가게 된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교도소 안, 그 속에서도 같은 방을 사용하는 가지각색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재미를 준다. 사람마다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나오는데 그로 인해 붙여진 별명들이 재미나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빵 트럭을 훔친 장발장, 본인은 돈 때문에 회사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민원을 제기하고 정당함을 똑똑하게 밝히려는 고 박사, 한량처럼 살며 마약에 손을 댄 한양, 오래 감옥 생활을 한다고 해서 장기수, 자칭 타칭 똑똑하고 문제 해결을 잘한다지만 왠지 허술한, 혀 짧은 소리가 특색인 문래동 카이스트 등 각자의 사연과 개성으로 똘똘 뭉치면서도 서로를 은근히 배신하는 이중성의 인간성을 잘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감옥 안도 또 다른 사회이므로 서열이 있고 비리가 존재한다. 그것은 죄수들만의 일이 아니다. 교도관 사이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 드라마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올곧다 못해 외골수인 제혁이 그런 죄수들과 교도관들과 얽히면서 융통성을 가지고 활용하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또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드라마에서 볼만한다. 

   이 글에서는 어릴 적 함께 야구를 하며 지대다 교통사고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 버린 제혁과 준호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국시리즈 2년 연속 MVP, 야구를 위해서라면 술과 담배는 물론,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햄버거도 입에 대지 않는 그. 야구에서는 누구보다 민첩하고 예민하지만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답답한 나무늘보. 감정 표현이 서툴고 반응도 느리다. 야구를 하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순진무구를 너머 바보 같기도 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그런 면을 알고 보아온 지호이기에 둘이 가까워질 수 있었고 성인이 돼서는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지호가 어린애치고는 영민하기에 그 두 사람의 균형이 이루어진 듯하다. 지호는 고교시절 그 집에서 합숙 훈련을 하던 코치 선생님의 딸이다. 

   준호도 함께 야구를 하며 그곳에서 지내다가 더 큰 무대, 프로로 한걸음 더 진출하려는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교통사고로 코치는 그 자리에서 죽고 제혁과 준호는 야구를 하기는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그 둘은 실력 있는 야구 선수로 동반 성장했을 꿈나무였다. 그 사건으로 준호는 야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고, 오히려 어깨 부상으로 야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제혁은 피나는 노력을 하여 프로 야구선수가 된다.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장소는 교도소 안. 한 사람은 죄수로 다른 이는 교도관으로 마주친다. 야구는 그만두었지만 제혁이를 뒤에서 응원하며 지내는 준호. 제혁을 돕는 과정에서 스토커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보다 더한 이는 준호 동생 준돌이다. 기자면서 제혁이의 열렬한 팬. 어쩌면 겉으로는 무심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친구의 일에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고 도우려는 마음을, 동생 순돌이라는 인물로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제혁이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동생을 강간하려던 남자를 끝까지 쫓아가 때려잡은 게 화근이었다. 심적으로는 너무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릴 적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제혁의 주먹이 무기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프로 야구에서는 슈퍼스타였기에 제혁이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신 이슈를 만들어 낸다. 과시를 좋아하는 교도소장은 제혁을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그런 제혁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교도관도 나온다. 그런 조주임을 제혁이 한 방에 날려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확실히 운동을 하며 전략을 세워본 사람이라 교도소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소신대로 나아가며 정의를 실현해 가는 모습이 듬직하다. 그런 일은 죄수들 간에도 나오지만 같은 방 사람들과, 때로는 친구 준호의 도움으로 하나씩 잘 해결해 나간다. 교도소 안에서는 손과 발이 되고, 밖에서는 가족과 애인인 지호와의 메신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준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자들의 속 깊은 우정이라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면모가 있다. 어릴 적 같은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던 친구. 자신은 도중에 그 꿈을 포기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 성공한 제혁을 볼 때, 약간은 시기와 질투도 날 법한데도 친구를 지지하는 모습에서 깔끔하고, 세련되고, 싹싹한 준호의 성격이 드러난다. 

   반면 지고지순한 제혁은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한번 애인은 끝까지 간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표현하지 않는 제혁이 너무도 답답해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지호에게 다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괴로워하지만 아마도 제혁의 마음은 그녀와 이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제혁은 야구할 때는 빠르고 영민한데 일상생활에서는 반대다. 이런 성격이 답답하지만 그리 밉지만은 않은 게 제혁의 매력이랄까? 그런 무디고 답답하고 느린 제혁이의 사랑의 메신저까지 되는 준호. 아마도 준호의 노력이 없었다면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고 속으로만 애태우다가 지호를 영영 다시 못 만났을 것이다. 지호의 불만도 모르고서 말이다.  

   운동선수로서의 하루 루틴을 교도소에서도 놓치지 않고, 재기를 하려는 제혁의 노력. 하루에도 수없이 던지는 공을 때로는 자신에게로 쏟아내면서 마음은 어떠했을까? 제혁도 말한다. 야구하기 싫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자기가 살 길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제혁이. 그가 교도소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내고 또 준호의 우정과 다시 돌아온 지호의 사랑에 힘입어 조금 더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제혁처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마치고 나면 그것이 루틴이 되고 자동화되어 삶이 단순해지고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가수 박진영이 그동안 살면서 자신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배고파’와 ‘힘들어’라는 것이란다.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인 데다 춤을 춰야 해서 음식 조절을 해야 하고, 운동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므로 힘들어도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갔기 때문에 인생이 복잡하지 않게 나아갈 수 있었다고.  '왜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아니까 삶이 심플해졌다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대부분 하기 싫은 일 중에는 정말 안 해도 되는 일도 있지만, 꼭 해야 하는데 안 하면서 괴로워하는 일로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 시간에 몸을 움직여 해낸다면 그것이 슬기로운 생활이 될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는 제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신이 할 일을 분명히 알고, 내부에서나 외부에서의 강압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할 일을 해 나간다면 그것이 어디서건 잘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고. 자신이 할 일을 잘해나가다 보면 반대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도 그 노력에 동화되어 같은 편이 될 수 있다고. 거기에 준호나 지호, 더 나아가 제혁이를 도와준 같은 방 사람들처럼 든든한 지지자 있다면 인생은 살만 한 거라고. 

   이 드라마는 교도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에피소드 들이지만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곳이 어디든 마찬가지다. 문득 내 자신에게,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감빵은 어디입니까? 거기서 슬기롭게 생활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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