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민 Jul 05. 2024

시그널

과거로부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시그널

과거로부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설민


   뚜두둑 두둑 지지직

   “거기 누구 없나요?”

   과거로부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어떨까? 과연 누구였으면 좋을까? 드라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알게 모르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살아오다가(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불현듯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어떨까? 그 연락으로 인해 나의 과거가 바뀐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반반의 확률. 잘 될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형편없을 수도 있다. 다만 복수를 하기 위한 연락이 아니길 바란다. 나에게 상처를 받은 이가 있다면 제발 용서하시길…….  

   과거 형사와 현재 형사가 무전으로 만나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는 발상이 신선했던 [시그널]. 대의를 위한 것이니 타당성이 있다. 2016년 1월에 방영된 [시그널]은 미제사건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드라마다. 완전 범죄는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법이다. 물론 범인이 잡혀도 그 상처를 씻지 못하고 평생 살아갈 것이다. 다만 더 원망하고 미워할 상대를 찾아내는 일, 그 고통을 한 스푼 덜어내는 일일 뿐이다.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부터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도 조세형 사건, 신정동 살인사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다뤄진 사건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나 미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하였기에 더욱 많은 공감대를 불러오기도 한다.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 이재한이라는 강력반 형사의 집념이 불러온 시그널.

   우리의 시간은 이어져있다. 과거로부터 걸려온 간절한 신호(무전)로 연결된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들을 다시 파헤친다. 강력 사건들 또한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져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1989년 형사 이재한과 2015년의 프로파일러 박해영, 그리고 두 사람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또 한 명의 형사 차수현.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묘한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박해영은 프로파일러지만 경찰들을 싫어한다. 자신이 공조를 해야 하는 경찰들이지만 그들을 신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어릴 적부터 쌓인 한이다. 찢어진 우산이라도 같이 썼더라면, 아니 굳이 비를 맞더라도 같이 학교를 나왔더라면 어떠했을까?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 반 친구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실종이 되어버리자 해영은 경찰에게 가서 그날 본 수상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무시해 버린다. 또 성장해서는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면서 경찰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다. 평소 모범적인 형이 권력 있는 집안 아이들의 비리에 맞서다가 끝내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사실 이재한 형사와의 인연은 그때,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다. 아마 그 이유로 그들의 시그널이 가능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해영이 과거의 형사인 이재한과 벌이는 공조 수사. 미제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일이 흥미진진하다. 또 이재한과 박해영의 연결고리인 차수현 형사는 강력반에 드문 여형사다. 1980년대만 해도 전문직인 여형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사무실의 꽃처럼 대하는 행태 앞에서 이재한은 상사들에게 자신이 손수 커피를 타며 차수현에게 이런 일 하려고 경찰 되었냐며 나무란다. 무뚝뚝하고 다정한 맛은 없지만 뒤에서 수현을 보살펴주는 이재한. 어느 날 실종이 되어버린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현. 혹시나 하여 변사체만 나오면 신원을 확인하러 뛰어간다. 


   그때는 모르지만 지나면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다. 

   출동 현장 다녀와서 얘기하자고 했던 게 마지막이었던 이재한을 잊기 못하고 계속 찾아 헤매는 차수현.

   가족들끼리 오므라이스 먹는 게 소원이었던 어린 해영의 형이 어느 날 사건에 휘말리고 가정이 깨지고 만다. 배가 고파 아버지를 찾아갔던 돼지껍질 집에서 해영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줄곧 오므라이스만 먹는다. 그것이 이재한이 그렇게 돌봐준 것인 줄 모르고 해영은 여사장의 인심인 줄 알았다.

   이렇듯 돌고 도는 연결고리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 인생사인 것 같다. 

   드라마 속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세상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줄인 경제계 인사들과 연결된 비리 경찰에 의해 범인을 만들어내는 것도 무서웠다. 여러 명이서 범죄자로 몰아가면서 확실한 증거도 만들어 범인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 소름 끼쳤다. 또 자식의 범죄 사실을 묵인하여 온 아버지 또한 두렵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는데도 공소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라 범인을 놓칠 뻔한 사건을 간신히 다른 사건의 증거로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쇄 살인범은 어릴 적 엄마로부터 학대받은 상처로 인한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은 뿌리인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시그널’의 주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박해영 또한 재혼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난하게 지냈지만 형이 성폭행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그나마 우애가 남달랐기에 인생의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맞벌이로 늘 돈을 벌러 나가는 부모님. 그 자리를 형이 따뜻하게 메꿔준 면이 그가 프로파일러가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재한의 무전으로 형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과거 형사 이재한과의 공조로 바꾼 과거. 그로 인해 바뀐 미래의 모습. 그것을 자신만 아는 박해영. 그런 해영을 관찰하던 차수현이 무전 시그널의 황당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극적인 이재한과의 무전. 너무나 짧고 아쉬웠지만 그 둘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울리지 않은 듯 찰떡궁합이었던 이재한과 차수현, 박해영의 캐미가 시그널을 이끌어가는 재미와 감동을 준 드라마였다.


   바뀐 미래에서 이재한은 살았을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참 의미 있게 다가온 드라마 시그널. 

   정의와 진실을 위해 그들의 시그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