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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Jul 19. 2024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양한 인물들의 단면을 총체적으로 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나의 모습은 절대 객관적일 수도 없고 어디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승전결을 알 수 있는 소설이 흥미롭다. 그게 아닌 삶의 단면이라도 그 사건의 객관적인 면모를 알 수 있기에 더 재미있다.

   글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려지는 소설이다. 제목마저 [자기 앞의 생]이라니, 너무 비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마지막까지 읽어가면서 소설가 에밀 아자르의 표현과 묘사가 생생하게 그려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가슴이 아파서 짜르르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무리 늙거나 어리더라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처절하게 느껴진다. 

   소소한 삶의 굴절과 결을 주목하면서 그 아래에서 인간 본질의 문제를 제기하는 프랑스적인 감수성. 표현하는 것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이지만 결국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인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묻어나는 에밀 아자르의 글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었다.


   [자기 앞의 생]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가 그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자신의 생 중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게 되자 이번에는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가 천천히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모모.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모모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면 찾아가는 하밀 할아버지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모모에게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관심으로 모모는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종종 나쁜 짓도 일삼는 영특한 어린 아이다. 소설에서는 모모가 사는 곳이 얼마나 열악한지, 로자 아줌마는 어떤 사람인지, 모모는 또 어떤 아이인지 이렇게 묘사로 표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 층에 살고 있다. 소설 첫머리부터 로자 아줌마는 "아무 때고 난 이놈의 층계에서 죽고 말 거야"라며 한탄한다.

   로자 아줌마는 커다란 드럼통 같은 육중한 몸뚱이에 유태인이고 젊었을 때는 엉덩이로 빌어먹고 사는 창녀였다. 나이 들어서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창녀들의 자식들 예닐곱 명을 돌봐준다.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거다.

   유태인인 모모도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로자 아줌마가 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아무 데다 똥을 사고 다니고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 복통과 발작을 일으키는 잔꾀도 부리는 아이다. 도둑질을 하고 찻집에 들어가 에클레르 과자를 실컷 먹고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본 뒤 문 쪽으로 뺑소니를 치고 프랭탕 백화점에 가서 진열대의 장갑을 슬쩍해서는 쓰레기통에 처넣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고 하는 모모.

   잘못 태어난 아이들을 맡아주는 일을 하는 로자 아줌마와 사는 은밀한 집에서 예순다섯의 아줌마의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주변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능력이 떨어지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

   로자 아줌마가 살아 있는 한 아줌마를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내겐 로자 아줌마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이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은 아무런 대가 없이 행동을 할 때도 있으니까.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고, 상냥함을 보이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숨지으며 떠났다, 나쁜 년.'

   사회복지위원회 사람들이 별일 아닌 체하고 접근 해서 행정적인 조사를 한다면서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그녀를 보며 표현한 말이 놀라웠다.

   이렇듯 철학자 흉내를 내는 모모는 자신의 삶이 벅차 때로는 집에 돌아가기가 싫어서 계속 어슬렁거렸다. 길거리를 오가며 발자국 수를 세다가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숫자를 잊어버리고 마는 어린 아이다. 그런 성숙함이 가슴 아프다.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나는 그녀 곁에 펴놓은 매트에 내 우산 아르퀴르와 함께 누웠다. 그리고 아주 죽어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 '

소설의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자기 앞의 생]은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고, 상처받을까 봐, 나의 것을 잃어버리고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는 나약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너의 안에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가난하고 공허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이 더 뜻깊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세상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 말 그대로 ‘똥 같은 사람’을 모모는 사랑한다. 가진 것도 없고, 주고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로의 곁에 앉아 있는 일, 서로를 포옹하고 위로하는 일뿐이다. 모모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로자 아줌마가 자신과 함께 있어주는 것, 자신이 로자 아줌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은’ 어린 날들은 곧 지나가버린다. 곧 커다란 상처와 그것을 숨길 수 있는 힘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자기 앞의 생]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범한 일이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모는 보여준다. 


   로자 아줌마가 의식을 잃기 시작했을 때 모모는 아주머니가 평소에 사랑했던 방, 혼자만의 방, 무서운 것이 있을 땐 혼자 숨어들곤 했던 지하실의 방으로 데리고 간다. 모모는 진동하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사람들이 지하실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까지 삼 주 가량을 아주머니와 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모모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살아갈 낯선 땅을 찾아가던 길에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 나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리고 모모는 깨닫는다.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줌마를 죽인 것은 생이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이라는 사실 또한. 그건 모모의 깨달음이자 곧 우리들의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

책의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가 주는 울림이 아주 진하게 남는 책.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인생. 자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묘사와 생생한 주변 사람들. 열악한 상황에서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삶이 현실에 있을까? 자꾸만 되묻게 된다.

   철학자 흉내를 내고 있다는 모모. 어린 나이에 삶의 본질을 간파한 듯 한 밀과 그의 시선이 놀라우면서도 가슴이 아픈 건 왜지 그 나이에는 아직은 몰라도 좋았을 거라는 나의 선입견이 묻어나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너무 힘들어하지만 자신에게는 모모밖에, 로자 아줌마 밖에 없다는 절박함. 그게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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