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은교
설민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서지우가 작가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적요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은 통쾌하지만, 그 내막을 알면 씁쓸한 축하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적요를 스승으로 모신다고는 하지만 저변에는 늘 나이가 많다, 늙었다며 자신의 젊음이 벼슬인 양한 태도가 눈에 거슬렸다. 서지우의 태도는 마치 무엇인가를 감시하거나 훔치고 싶어 하는 질투심이 내재되어 있었다. 삐딱한 태도가 왜 그런가 했더니 서지우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남의 작품으로 등단한 작가가 진정한 작가일까?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 그리고 위대한 시인의 세계를 동경한 싱그럽고도 관능적인 열일곱 소녀 은교. 이들은 서로 갖지 못한 것들을 탐한다.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세 사람의 숨겨진 도발!
영화 [은교]는 이렇게 시작한다.
70대 노시인 이적요는 어느 날 자신의 집 흔들의자에서 잠든 여고생 은교를 발견하고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은교를 가정부로 고용하면서 이적요는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되살리고, 그녀의 순수함과 활기에 젊은 시절의 자신을 투영하며 깊이 사랑하게 된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적요는 은교로 인해 영감을 받아 그녀와의 상상 속 성적 관계를 담은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이적요의 제자이자 젊은 작가인 서지우는 스승과 은교의 관계를 부적절하다고 여기고 질투심을 느낀다. 결국, 서지우는 이적요가 쓴 소설을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는 ‘심장’으로 등단했고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다. 하지만 ‘심장’은 스승 이적요가 거의 써준 소설이었고 서지우는 늘 마음 한쪽에 불안감이 있다.
우연히 이적요가 쓴 은교라는 소설을 보게 된 서지우. ‘나의 처녀 은교’로 시작하는 소설은 아름다웠다. 서지우는 이적요가 쓴 소설을 자신이 쓴 것처럼 문학동네 단편에 올리고 좋은 평가를 얻는다. 문학상까지 받게 된다.
스승이 써 준 책으로 등단한 서지우의 불안함이 극도에 달하지만, 스승 이적요를 늙었다고 자극을 하고 70대 노인이 ‘은교’ 단편을 내놓으면 더러운 스캔들이 된다고 말한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실상은 서지우는 ‘이적요 껍데기’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70대 노인이 17살 소녀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라서 나쁘게만 본 사람들도 많지만, 인간의 본능을 충실하게 그려낸 영화다. 욕망은 늙지 않는다. 마음 한쪽에 누구나 지닌 젊음과 청춘에 대한 갈망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서지우도, 은교도 외로워서 섹스한다. 어쩌면 이적요도 뒷방 늙은이가 된 자신의 처지가 가여워서 [은교]라는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적요는 제자 서지우의 젊음을 질투했고, 서지우는 이적요의 글솜씨를 질투했다. 그 중심에 끼어든 은교에 대한 갈망은 서로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욕망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욕망과 질투의 감정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