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설민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야. 후회하지 않게.”
사랑은 후회 없이! 인생은 솔직하게!
말만 들어도 속이 시원하다. 20대들의 치기 어린 말이라 해도 얼마나 세상 앞에 당당하고 깜찍한가?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된다. 무슨 일이건 대가는 따르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20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이 영화에 반영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세월이 달라졌다고 해도 사랑과 동거가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중년의 나에게는 꽤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인데,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오는 재희와 흥수는 무려 13년간, 동거를 이어간다. 때로는 힘들 때마다 위로해 주는 친구 같으면서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가족 같기도 한 두 사람. 20살부터 33살이 되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일이 존재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20대 초반과 입대와 취업 준비 등 거듭된 현실에 앞길이 막막했던 20대 중반, 그리고 본인만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까지. 그들은 로맨스는 아니지만, 서로의 우정을 통해 성장하고 공감해 간다.
미친년과 게이가 만났다. 바야흐로 애니멀 라이프의 시작. 시선을 끄는 과감한 스타일과 남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태도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 재희.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재희에게 들켜버린 흥수. 서로가 이상형일 수는 없지만,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친구로 지낸다.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하고 재희와 흥수는 사랑도 인생도 나답게 해나가지만 늘 위기는 찾아온다.
마냥 당당해 보였던 재희가 산부인과 앞 골목에서 홀로 오열하던 날도, 세상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흥수가 재희를 위해 처음으로 게이인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단단한 지지자가 되어 준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재희가 자신의 삶을 남들의 시선으로 정의하지 않듯, 홀로 영화관을 다녀온 흥수 엄마의 가방에서 발견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티켓처럼. 때로는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이해와 성장의 순간들이 있다. 아들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부정하는 엄마는 기도의 힘을 빌어보려고 교회에 다닌다. 잠자는 아들 곁에서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에 결국 흥수는 커밍아웃을 한다.
어느 밤, 엄마가 피투성이로 화장실에 쓰러져있는 모습에 흥수가 오열한다. 엄마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복분자에 취해서 토한 거라고 무심히 말한다. 흥수는 안도한다. 그렇게 모자의 세월은 무던히 흘러갈 것이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영화 속 대사가 가슴을 울리는 건, 우리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다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희의 당당함과 흥수의 조심스러움이 만나 만들어내는 균형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무언가와 닮아있다.
재희의 결혼식 날 축가를 불러주는 흥수. 그때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 가슴을 쿵, 치고 지나간다.
“그때 그 순간, 내 인생에 나타나 나를 알아봐 주고, 기꺼이 서로의 상처를 함께 하며, 의심 없이 전부를 내어준,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과 그때 내가 지었던 모든 표정을 기억하는 내가, 나인 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준, 내 20대의 내장 하드. 잘 가라 재희야!”
20세에 만나 33세에 친구 재희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해 본다. 그들은 특별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 준 사이였으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사랑너머 찐한 우정으로 서로의 행복을 보듬어 줄 것이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청춘의 한 조각과 맞닿아있다. 흥수와는 달리 재희는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단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던 우리들의 청춘 기록물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을까? 우리도 누군가의 인생을 저장하고 있는 존재일 테니 잊지 않도록 잘 찾아보아야겠다.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는지, 혹여 지금 그(그녀)를 서운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