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천국

천국보다 아름다운

by 설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천국

천국보다 아름다운


설민


배우 김혜자의 나이가 80세가 넘었다는 사실에 놀라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 나이에 정정하게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예전의 작품들을 볼 때와는 달리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투나 걸음걸이가 다소 느려진 듯하다) 전과 아주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 마지막에 환생하기 전, 인터뷰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시 태어나면 남편 고낙준과 잘살아보고 싶다고. 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다양한 인물로 살아가는 모습에 멋져 보인다면서. 마치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듯 소녀처럼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뭉클한 이유는 그녀가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어느 기자의 말을 들은 까닭이다. 일생을 천생 배우로 살아온 ‘김혜자’가 또다시 같은 꿈을 꾼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KakaoTalk_20250605_221405381.jpg 출처 네이버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인해 걷지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집안을 꾸려나가는 해숙은 억척스러워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 안에는 고통과 죄책감으로 새로운 자아를 만들 만큼 커다란 상처를 지닌 여자다. 세월이 그녀를 능청스럽고 뻔뻔하고 당돌하게 변화시켰지만, 마음속에는 따뜻함이 담겨있다. 술에 취해 자신의 딸을 돌보지 않고 아동학대를 일삼는 아빠에게서 어린 영애를 데려오는 것으로 빚을 탕감한다.

시장으로 매일 일수를 받으러 다니는 해숙은 돈을 받기 위해 끈질기게 찾아오는 강단으로 상인들에게 물세례를 받을 정도로 천대를 받지만, 우산으로 막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나간다. 돈을 받기 위해 협박도 일삼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남편 고낙준 앞에서는 세상 여성스럽고 귀여운 여자가 되는 모습이 애잔하다.

해숙이 죽게 되자 저승사자가 나타나 이승을 떠나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기차를 타고 하늘나라에 가다가 지옥 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빨려 나가고, 그대로 앉아있는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게 된다고. 천국에 도착해 어리둥절한 해숙에게 안내원이 질문한다. 몇 살의 모습으로 천국에서 지내고 싶으세요?

이 드라마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벌어지는 일들이 펼쳐진다. 죄를 지어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해숙이 죽어서 가게 된 천국. 이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천국의 의미는 이승에서 지낸 한을 풀고 살아가며 다시 환생하기 위한 과정으로 그려진다. 거기에는 재미난 단서가 붙는다. 천국에서 몇 살로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그렇다. 한번 정하면 절대 바꿀 수 없는 규칙. 해숙은 지금이 가장 예쁘다는 남편의 말을 기억하며 80세가 넘은 지금의 나이로 지낸다고 한다. 고령이면 속마음을 이야기해 주는 기계까지 주게 되는데 그 설정 또한 웃음 포인트가 된다.

남편을 찾아가지만 고낙준은 천국에서 30대의 팔팔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이승과 천국을 오가는 집배원 일을 하면서 번듯한 집을 꾸미며 해숙을 기다렸지만,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부인의 모습에 경악한다.

천국 지원센터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새로운 삶을 안내해 준다. 반려견들도 함께 생활하며 옛 주인과 만나기도 한다.

해숙이 일수를 받으러 다니며 한 거친 행동들이 몸에 남아있는 탓에 벌칙으로 지옥에도 가게 되는데, 죄의 무게가 땀 한 방울로 줄어 경계에 닿자, 다시 천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센터장은 교화의 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를 권장한다. 그곳에서 만난 목사는 5살에 죽어 늘 어머니를 찾는 기도를 한다. 설교만 하면 코를 골고 자는 해숙. 성도라고는 그녀뿐인 교회에서의 티키타카가 시작된다. 해숙은 목사와 함께 밥도 해 먹고, 떡도 만들고, 우렁이 쌈밥을 해 먹기 위해 목사와 직접 우렁이도 잡고, 식혜를 만들다 막걸리까지 만들며 소소한 추억을 쌓는다.

한편, 남편이 어느 날 지옥 역에서 빨려 나가는 여자를 붙잡아 데리고 온 솜이. 그녀의 정체가 극 내내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그것은 바로 젊은 해숙이 시장에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상처와 죄책감으로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자아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하나님께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목사가 답을 얻지 못하자 침묵의 의미가 무엇인지 센터장에게 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이미 답을 받았음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성경 구절에 “무엇이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기도의 언어는 느낌이자 마음의 상태, 침묵의 상태라고 덧붙이며, 우주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의 언어가 바로 침묵이라고 말한다. 구하는 것은 이미 받았다고 믿는 것, 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상태임을 느낌으로 아는 것, 그리고 그 이루어짐의 기쁨을 오롯이 음미하고 감사하는 것이 기도라고.


이로써 자신이 그토록 찾던 엄마의 존재가 해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목사는 해숙과 화해를 하고 환생을 선택한다. 해숙 또한 낙준과의 새로운 삶을 위해 환생을 결정한다.

환생하기에 앞서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전과거생을 볼 수 있는 모니터실로 향하면 지금까지 환생해서 살아온 인연을 모두 볼 수 있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연결고리로 만나진 사람들. 지금 나의 아이는 전생에 나의 부모였고, 시어머니는 전생의 나의 며느리였다. 그 둘은 23번이나 부부의 인연이었다니. 고낙준은 다음 생에는 더 잘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해숙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그때마다 매번 그녀를 힘들게 했다고. 이번에는 다른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며 작별한다.

마지막 장면에 천국에 남은 고낙준이 환생한 해숙을 그리워하며 말한다.

“우리가 함께한 그 모든 날은 지옥이 아닌 행복이었다는 걸.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돌아갈 거야. 천국보다 아름다운 당신과의 그 삶 속으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 모를 좋은 인연들에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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