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내게 이력서란 '빈칸 없이 빽빽하게 증명해야 하는 전장'이었다. 연도와 월 사이에 단 한 달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매끈한 경력의 연대기만이 나를 지켜줄 방패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이력서의 최근 2년은 아무런 텍스트도 기입되지 않은 채 하얗게 비어 있다.
인사 담당자의 눈에는 '경력 단절'이라는 무미건조한 행간으로 읽힐 그 화이트 스페이스 속에서, 사실 나는 생애 가장 치열한 직무 교육을 이수하는 중이다.
기업은 늘 '멀티태스킹'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인재를 갈구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마감 기한에 쫓겨 보고서를 쓰면서 동시에 우는 아이를 달래고, 끓어 넘치는 냄비를 조절하며 다음 끼니의 식단을 설계하는 육아의 멀티태스킹에 비하면 사무실의 그것은 차라리 정돈된 고요에 가깝다.
육아는 매 순간이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의 연속이다.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작은 생명체를 대면하며 나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대상을 설득하는 법을 배웠고, 내 감정을 분절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는 고도의 '인내'라는 자원을 채굴했다. 이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다. 협상이 결렬된 순간에도 다음 대안을 즉각적으로 도출해내는 전략적 유연성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육아를 커리어의 '정지'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지금 '나'라는 브랜드의 하드웨어를 교체하고 있다. 이전의 내가 효율성이라는 단일 엔진으로 구동되는 기계였다면, 지금의 나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내고, 타인의 욕구(아이의 울음)를 데이터 없이도 직관적으로 해석해내는 고성능 센서를 장착 중이다.
이력서의 공백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더 거대한 담론을 담기 위해 스스로 비워둔 '확장 슬롯'인 셈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공백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동양화의 여백이 그림의 완성도를 결정하듯, 내 삶의 이 여백은 지난 10년의 경력을 더 깊이 있게 해석해줄 완충지대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하얀 공간을 '육아 휴직'이나 '가사'라는 빈약한 단어로 채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곳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무한한 인내의 시간'이라는,
어떤 자격증보다 값진 문장이 투명하게 새겨져 있다.
복수하고 싶었다. 공백이 있는 이력서를 '낙오'로 간주하는 세상의 편견에 대해.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그들에게 내 가치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이력서의 여백을 응시하며 내가 얻은 무형의 자산들을 조용히 갈무리하는 것.
오늘 나의 복수는 내 삶의 공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에서 시작된다. 노트북을 덮으며 나는 확신한다. 다시 이력서를 제출하게 될 날,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그 여백 위를 걸어갈 것임을. 무너진 줄 알았던 내 커리어는 사실, 더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잠시 지면 아래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