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아니라, 비상등을 켜고 나를 대면하는 시간

by 육아의 속도

과거의 나에게 '멈춤'은 공포였다. 직선으로 뻗은 트랙 위에서 옆 사람의 보폭을 훔쳐보며, 내 페이스가 0.1초라도 늦어질까 전전긍긍했다. 효율은 나의 종교였고, 성과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이었다. 쓸모없는 시간은 죄악이었기에, 이동 중에도 팟캐스트를 듣고 식사 중에도 메일을 확인하며 나를 끊임없이 '생산적인 소모품'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강제로 멈춰 선 이 거실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나의 효율 경영은 처참히 실패했다. 10분을 투자하면 리포트 한 장이 나오던 세상과 달리, 이곳은 두 시간을 달래도 아이의 울음 하나 그치게 할 수 없는 무력한 공간이었다. 투입 대비 산출이 계산되지 않는 이 지독한 비효율의 늪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그동안 놓쳐왔던 질문 하나를 붙잡았다.



"나는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아이를 가만히 응시한다. 이 작은 생명체는 아직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 매출을 올리지도, 혁신적인 기획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저 숨을 쉬고, 울고, 웃으며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를 보며
생애 가장 완벽한 충만함을 느끼는가.




그것은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존재의 미학'이었다. 무언가 되어야만(Becoming)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 있다는 것(Being)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




철학적으로 볼 때, 나의 멈춤은 고장이 아니라 '비상등'을 켠 상태에 가깝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혹은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잠시 비상등을 켜고 멈춘다. 그 멈춤의 시간 동안 나는 비로소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내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성과라는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낸 뒤에 남은, 초라하지만 정직한 '민낯의 나'를 긍정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력서에 적을 수 없는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후의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에 코를 부비는 일, 그리고 아무런 결론 없는 상상에 잠기는 일.




이 '비효율적인' 행위들이야말로
고갈되었던 내 영혼을 다시 채우는
가장 밀도 높은 생산 활동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복수하고 싶었다. 멈춰있는 나를 향해 '이제 어쩔 거냐'고 묻는 세상의 무례한 질문들에 대해.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그들을 납득시킬만한 대단한 성과를 들고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히 귀하다는 사실을, 내 눈빛과 걸음걸이로 스스로 증명해 내는 것.




멈춰 서서 비로소 보게 된 나라는 존재의 풍경은, 그 어떤 화려한 커리어보다 눈부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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