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어느 날

지난 날의 일기

by 이루리



지난 날의 일기



21.12.21


친정집 옆에 꽤 높은 산이 있는데 아파트 짓는다고 나무를 다 베어내고 난장판을 피워놨다

저기에서 위풍당당한 매도 만났었는데

오래된 도심 구역 재개발하는 것보다 비용이나 여러모로 쉬워 산을 미는거겠지만 하루 아침에 터전을 잃어버린 동식물들에게 미안하다

고라니 멧돼지를 사냥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어디로 가라는 걸까 터전을 빼앗고 사지로 내몰면서 합법으로 목숨을 앗는다한다


며칠전까지 찾아뵙고 손도 만졌는데

요양하시다 퇴원하실거라 믿었는데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입소하신 후부터 계속 주무시기만 하시다가

오늘은 의식이 없으시다

세상이 상황이 얄궂다

보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실텐데

같은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 손도 잡지 못하시고 의식이 거의 없으시다하신다


내게 세상 소중한 외할머니가 다른 손주들에게는 야속한 할머니일 수도 있다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친할머니가 그런 존재라 이해 가면서도 그래도 야속하다..

첫 면회에서 외할머니외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첫외손녀인 내이름을 부르시고 한참을 말씀없이 바라보셨다 마스크를 코위로 바짝 쓰신 탓에 눈꼬리에 맺힌 투명한 눈물 밖에 보지 못했다

코로나가 심해져 면회는 더이상 안된다 이제 들어가셔야한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할머니할아버지 또 올게요 하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기다려주시기 힘드신 것 같다

올해 쑥떡만 10만원어치 사드셨다는 말씀듣고 봄에 쑥떡 많이 사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러려고 그렇게 많이 사드셨나 싶기도 하다


마음을 놓아야한다는데 익숙해질 법도 한데 쉽지 않다

아기들 보고 싶다고 빨리 만나고 싶다 하셨었는데 진작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고 다음이 있다고 생각한건 오만이었다

끝자락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지금 시국이 거지 같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했다로 끝났으면 좋겠다

주어진 생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 추억하며 행복했던 즐거운 기억들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간 외에도 세상 모든 존재들이 그러하기를

떠남이 슬펐다로 끝나지 않기를






21.12.25 첫번째 일기


둘째날이 되어서야 겨우 찾아뵈었다. 입관하시는 것도 못보고.. 첫손녀가 할머니 지켜드리지도 못하고..

친구랑 오랜만에 반갑게 통화하면서 가다가 장례식장 글씨가 보이면서부터 힘들었다. 내일이 발인인데 아기를 맡기기 힘들어서 같이 갈까 생각도 했지만 신랑도 시댁도 코로나 걱정하시는데 그냥 가기도 힘들 것 같다


할머니랑 소소한 전화도 하고 싶고 할머니집에 가면 다현이 왔나 하실 것만 같다


어느날 쭉정이 같은 마늘 까셨던걸 내게 잘못주셔서 다음에 미안하다하시면서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완전 크고 튼실한 깐마늘들을 한아름 주셨다

침침한 눈으로 한 알 한 알 매운내 참아가며 힘들게 까신 걸 알아 아껴 먹는 그 마늘을 1년전 산후도우미가 와서 마늘을 헤프게 써서 엄청 짜증났었는데 그 마늘이 생각나서 냉동고를 열었다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다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하다. 샀던 마늘은 썩어서 냉동고에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마늘은 크기가 작아졌을 뿐 아직도 깨끗했다. 방부제보다 할머니의 사랑이 유효기간이 더 큰 것 같다.. 이 마늘을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겠지..


사랑 많은 외할머니 그 기억들 장례식장에서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나는 내일 다시 오겠다 약속했지만 또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수년전 자식 잃으신 슬픔에 이상한 종교 가지셨다가 서울 아가씨 큰외숙모가 시집오시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신 우리 할머니 ..


오늘 세 교회에서 오셨다

큰외삼촌 다니시는 서울지구촌교회에서도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오셔서 예배드려주셨다.

할머니의 믿읃과 기도가 싹이 되고 열매 맺어 자식들이 장로권사집사전도사가 되었고 손주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찬송 드리는 소리는 크고 힘이 찼다. 목사님이 장례예배드리러 다니면서 보신믿음없는 가정과 있는 가정의 이야기를 종종 해주셨는데 믿음 있는 가문인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니시던 목사님도 오셔서 예배해주셨는데 할머니를 이렇게 추억하셨다하신다

참으로 사랑 많으신 분이었다고

달래를 캐면 달래를 나눠주시고 콩을 따시면 콩을 나눠주시는 분이셨다고. 자녀분들 눈물보다 손주들이 가슴아프게 우는 것을 보니 분명 손주들에게도 사랑 많이 베푸는 분이셨을 것 같다고..


위독하시다는 소리 듣고 이브 전날 미리 형님이 맛있다는 케이크 주문해서 드리려했는데 돌아가시게 되어 행복한 날 축하하는 케이크 살 수 없었다


아빠가 아프셨을 때 잠도 못주무시면서 아빠 살려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셨다하신다

편찮으셔서 서울에 계셨었는데 엄마아빠 언제 오시냐고 3월이나 4월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서도 너무 기운 없어보이셔서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었던 기억이 있다

쉽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할머니는 기다려주셨다


여름 어느날 찾아뵈었을 때 일주일째 소변을 보시지 못한다고 기운없이 누워계셨었는데 속으로 소변 보실 수 있게 해달라 기도드렸더니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으시다하셔서 부축해서 화장실로 모셨지만 일어나기 힘들어 요강을 드렸다.

할머니의 속옷은 이게 속옷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다행이 소변이 시원하게 나와 시름을 덜었었는데 한여름에 린넨 원피스는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밖에 나오자마자 더운 공기가 에워쌌지만 상쾌했었다

그렇게 무거우셨던 것이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차서 그런 건 줄은 나는 몰랐다..


주시는 용돈 염치 없어 숨겨놓고 안받고 가면 마음아파하시고.. 손녀가 주는 용돈 한번 안받으시고 역정내시며 더 얹어주시고 좋아하는 김밥 사들고 갔을 때 밥도 못먹이고 보냈다고 멕아리?낀다고 자책하시며 그날 일 계속 이야기하셨었다..

쑥떡 나올 시기에는 먹어보라하시며 올해 쑥떡만 10만원어치 넘게 사드셨다고 하셨던 것도 생각난다.. 엄마에게 봄에 쑥떡 많이 사달라하셨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려고 쑥떡을 그렇게 사드셨었나보다..

오늘 쑥떡 사서 올려드리고 싶었는데 겨울이라못샀다.

요양원 가시기 전 입원한 병원에서 할머니가 콧줄하고 계실 때도 할아버지가 서른중반의 외손녀에게 용돈 안주고 보내셨다고 노발대발하셔서 다음에 뵈었을 때 할아버지가 챙겨주셔서 내가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용돈 줘야할 어린 손녀로 보이실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김밥 사들고 갔을 때 오랜만에 드셔서 그런지 맛있다하셔서 뵐 때마다 김밥 사들고 갔었다

매번 가던 김밥 집이 매장을 닫았을 때, 늘 충전해 마를 새 없는 배터리가 할머니집 갔을 때 17프로인 것을 봤을 때 이야기의 복선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21.12.25 두번째 일기


기억이 감정이 흩날리기 전에 남기는 글

요양병원 가시기 전 날 찾아뵈면서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랑 있었던 일 이야기하면서 이래서 행복했다 감사했다 할아버지랑 있었던 일도 이야기 나누고 싶었었는데 고모할머니와 다른할머니할아버지와계셔서 쑥스러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랫듯 다음이 있을거라고.

그날도 좋아하시는 김밥 사들고 가서 사이좋게 같이 나눠 먹었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엄마에게 모자 보내달라 하셨던게 기억나서 부산터미널 상가에서 요양병원에서 머리 못감으실 할머니위해서 예쁜 모자를 사드렸다

하필 그날 배터리가 17프로 밖에 없어서 동영상도 못남기고 사진도 몇장 못찍었었다. 그래도 큰외삼촌 보고 싶어하실 것 같아 페이스톡으로 얼굴 보여드렸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별말씀 안하시고 땅만 보고 계셨다. 자식이 요양원에 보내 서운하셨던 것일까 이제 요양원 가시면 못볼 것이라 생각하셔 슬펐던 것일까. 외삼촌도 먹먹하셨는지 한동안 말씀 못하시고 끊으라하셨었다.


여기저기서 양말이나 속옷이나 옷가지가 많이 들어왔던 걸로 기억난다

그런데 쓰시지 않고 거의 다 주셔서 집에 있는 양말은 거의 다 할머니 양말인 것 같다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가 걱정이다

코로나가 뭔지.. 5년전 중국과 미국이 함께 한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코로나에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장례식장에도 못오시고 발인에도 못오시는걸로 알고 있다

그게 이시기 요양병원에 룰인걸까.


할머니께서 병원에서 어디가 안좋은지 검사해야하지만 한 수치가 정상이면 다른 수치가 안좋아 검사 못하기가 여러날이었다한다

수혈하셔야하는데 피가 부족해 가족들의 피를 구하고 생면부지인 사람들의 피도 sns에서 구하기도 했다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해주겠다하셔서 감사하고 든든했다

일반병원에 심한 빈혈에 당뇨와 신부전증 간경화 증상으로 입원하고 계셨지만 홀로 계실 할아버지 걱정에 한사코 퇴원하겠다하셔서 집으로 가셨다

의료진은 그래도 요양병원가는게 나을 거라 하셨지만 집으로 가셨고

엄마가 모시고 할머니댁으로 갔을 때 거동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현관까지 나오셨는데 할머니가 "잘있었는교"하니 말없이 할머니 손 꼭 잡으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하신다


그렇게 집에서 며칠계시다가 소변이 새어나와서 요양병원 가셔야겠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셔서 가시게 되었는데 병원 가시는 분이나 남겨지시는 분이 외로우실까봐 두분 같이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봤지만 한 병실에 부부가 같이 못있는다하셨는데 어느 한 병원에서는 오케이를 해서 성#요양병원에 가셨었다

할머니가 가시기 전에 추우면 다시 온다고 어머니께 말씀하셨다한다

하지만 그날 저녁 원장 사모가 와서 방빼라고 쌩난리를 쳐대서 원장사모한테는 퇴원처리하는걸로 하고 다른병원 소개 해 준 것이 지금 있는 우#요양병원이다

원장사모는 뭔대 자기가 난리를 쳐댔는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고 한바탕해주고 싶다


목사님이 유명한 사람이나 부자의 죽음을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성도의 죽음만 기억하실 뿐이라고 할머니 마음 속에는 이미 하나님이 계셔 편안한 자리에서 영생 누리실거라 하셨다

입관하시는 날이 이브이고 발인이 아기예수 오신 날이라고 좋은 날 가시는거라고 가족들 위로하여 주셨다

결혼식에도 와주셨던 엄마친구 시장도 와주셨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나를 좋게 기억해 줄 사람들이 있을까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것들 적어 남기고 싶은데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엉망이다...

할머니사랑해요 그 한마디가 왜그렇게 힘들다고 못했는지

아직도 이렇게 기억속에 생생한데 잊으라고 묻으라고 하신다면 힘들것같다

한달전에 할머니랑 같이 시간보냈는데 며칠전에 면회 갔었는데 ..

위독하다는 연락 받고 엄마가 병원에 다녀오시길래 나도 가고 싶다고 면회가면 안되냐하니 아기 데리고 있어서 가면 안좋을 것 같다하셨는데 나는 시댁에잠깐 아기 맡기고 면회 가야겠단 생각에 병원에 전화했더니

할머니 사정도 이해하지만 방금 엄마왔다가셨다 다른 가족들 또 오시는거면 같이 오시라고 병실에 다른 환자들이 있어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해서 서울에서 내려올 외척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시간십분 뒤 돌아가셨다..

또 면회오겠다 약속 했었는데 혹시나 오려나해서 기다리셨을텐데 바람앞의 등불이었을 때도 함께 못해드려 죄송하다..

외할머니 사랑해요 보고싶어요..

외할머니가 우리 외할머니라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부디 편히 쉬세요

------

곧 발인인데 너무 춥다

좀 따뜻했으면..8층 베란다 난간에서 웃으며 손흔드시는 모습도 이제는 뵐 수없다







21.12 26


마음을전할방법이없다

그렇게 끝났지만 슬프다

입관때도 발인에도 가지 못해 답답하고 애가 탔었다


잠깐 들린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으니 엄마가 왜우냐고 타박하셔서 전에 울지 않을거라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엄마는 안우시는지 알았다

발인 끝나고 연락드렸을 때는 조금 눈물났을 뿐이다고 하셨었다

나는 그렇게만 알았다


어제는 다들 서울가시고 피곤하실거 같아서

오늘 못가뵈서 죄송하다고 고생하셨다고 외척들에게 전화돌렸는데 작은 외숙모가 엄마가 납골당에서도 버스에서도 정리하러 들렀던 외할머니댁에서도 많이 우셨다고 한다..

동생이 이야기하기로는 화장하실 때 발동동 구르시며 우셨다고 했다..


나한테는 진짜 아무런 조건 없이 내편 내 사랑하는 단 하나의 할머니였는데

못지켜드린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인사 드렸어야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들 때 슬플 때 엄마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둘러댈 핑계가 많았을까..

아기 안고서라도 갔었어야했는데 라는 후회가 마음에서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위로예배 드리러 오셨던 목사님이 할머니의 유족들이 예수 믿고 의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던지 다음날 크리스마스 새벽기도에서 할머니이야기를 해주셨다

놀랍고도 감사했다

할머니가 아시면 너무 좋아하셨겠다

정말 좋은 날 할머니께서 천국가신거로구나

새벽기도 보지도 못한 채 목사님에게 위로예배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직 보시진 않아서 혼자 인사를 한거지만

새벽기도를 보고 메일을 썼으면 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을 것 같다


내가 혼자 외할머니댁 방문드리면서 간간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었다

올해에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찍어야 될 것 같은 느낌.

좀더 못남긴게 아쉽다..


외삼촌들 이모 그리고 동생들에게 공유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할머니사진 동영상 그리고 전화녹음본까지..

보고 싶을 때 느끼고 싶을 때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잘드린거겠지?


이모는 할머니가 정말 잘사셨던 것 같다고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손주들이 많이 우는 걸 보니 그런거 같다고 하셨고

이모부는 섭섭하지만 외할머니의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처럼 되기를 기도하셨다고 하셨다

외숙모들도 많이 우셨다하신다..

결혼을 해보니 마음만큼 표현하는게 쉽지가 않더라..

우리 할머니만큼 며느리들 사랑 많이 받은 분도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고 전화 드렸더니

큰외숙모께서는

안그래도 그때 작은 외숙모랑 이야기 나눴었다고

우리 어머님은 딸 며느리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주셨다고

내가 드린 사랑보다 더 사랑해주셨다고 ..


역시 우리 할머니는 최고시다


천국에 가셨는데 그럼 잘보내드린건데

먹먹함이 밀려온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엄마도 힘드실텐데 곁에 가있고 싶은데 쉬신다고 오지마라 거절하셨다

아기 데리고 가면 못쉬셔서 그러신건지 애도할 시간 가지고 싶으신건지 모르겠다


요양원에 혼자 계신 할아버지께 일곱시 넘어 전화드렸었다

약 기운에라도 일찍 주무실텐데 티비보고 계셨다

할아버지 많이 힘드시죠 라고 하니

하 흐유 그래 라고 하셨다


내가 가지 못해 애타고 힘들었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겠지..

평생을 단짝으로 사이좋게 지내셨는데 얼마나 힘드실까..

화요일에 큰외삼촌이 홀로계신 외할아버지 걱정에 모시고 서울로 가신다하신다

퇴소하시고 납골당 들릴 계획이신데 따라가려고한다..

자동차전용도로 타는게 겁이 나지만 서울로 가실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냥 보내드릴 순 없다.. 욕심내서라도 따라서 가보려한다..


길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미워하시지 않을지..

외할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시지 않을지..

다시 방문하는 엄마는 또 어떠실지..

아기도 같이 인사드리러 가도 될지..

거기서 내가 무너지지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당연히 일찍 찾아뵈었어야했는데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 생각하면 자주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곁에 계실 것만 같은 외할머니

헤어져보니 알 것 같아요 사랑해요❤





21.12.28


혼자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 모시러 서울에서 큰외삼촌 막내외삼촌 이모가 내려오셨다

서울가시는 할아버지 뵈려고 할아버지형제 내외분들과 고모할머니 우리 부모님이 같이 오셨다


시누이였던 외할머니와 동서였던 고모할머니는 옛날분들이셨지만 좋은 친구분이셨다

장례식장에서 나설 때 앞에 고모할머니가 낯선 할머니와 이야기하시는걸 보고 고모할머니 손잡고 섭섭하다고 건강 잘챙기시라 말씀드렸었다..


요양원가시기 하루 전날 고모할머니도 같이 계셨었는데 그때 내가 했던 말 되뇌이시며 니가 봄에 할머니한테 쑥떡 사준다고했제 못드셨지만 말이라도고마웠다고 뭐라뭐라라하시면서 글썽이셨다.


오늘 또 뵈었는데 할아버지 곁을 못떠나시며 울먹거리셨었는데 날 보시더니 봄에 쑥떡 사준댔는데 할머니가 못기다리시고 가셨다고 잘해드려서 고마웠다고 우셨다..


장례식장도 가지 못하셨던 할아버지는 몇년은 더 나이들어보이셨고 여위어 보이셨는데 아기와 같이 찾아뵙고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기를 안고 서울가기 힘들 것 같아서.. 또 만나뵙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마중나오셨는데 할아버지도 울컥하시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짐을 다 싣고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할머니 납골당에 들르셨다 서울로 떠나셨다..


큰 외삼촌이 쭉 장모님을 모시고 사셨는데 몇달전 이사를 하시면서 할머니할아버지 모시려고 장모님은 외숙모언니댁으로 가셨다고 하신다. 할아버지할머니 모실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급속도로 편찮으셔서 가시게 되셨다..


서울 도착하시고 페이스톡으로 뵈었는데 아직도 울먹이셨는지 눈가가 촉촉하고 빨갰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아니라 집에 가면 계실 것 같고 잠깐 어디 가신 것만 같다고 하시면서.. 더이상 아프시지 않고 천국 가셔서 마음이 편하다 하셨다..

입관 때 뵈었던 할머니는 얼마나 이를 깨무셨는지 입 안과 주변이 다 터있었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제일 사랑하셨던 할아버지 건강하게 장수하실 수 있게 지켜봐주세요❤







p.s 옮기면서 다시 봤는데 외할머니와 이런 일도 있었구나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잊고 살기에는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기억..

힘든 때가 많지만 순간순간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외할머니가 무뚝뚝하고 자주 찾아뵙지 않았지만 전화 할 때마다 내게


xx이 사랑해 보고 싶어

이노무소상 니를 위해 기도를 얼마나 하는데

좋은 신랑감 만나 어뜩 시집가고 자식 많이 낳고 살아라고 기도 매일 한다


라고 해주셨었다

조건 없는 무한사랑 주신 외할머니

외할머니 해주신 말씀들 떠올리며 못난 자손 또 힘내서 살아갑니다

제가 할머니가 되어도 할머니 같은 할머니 못될거에요


외할아버지는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모시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간밤의 응급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