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반의 서재 Mar 27. 2024

경단녀, 장숙희

8화 역지사지.

남편의 되지도 않는 질문에 봉착한 나와 딸은 예의 상 엄지 척을 올리며 대답했다.


"우리 아빠, 멋진 걸...?"

"여보, 모자를 쓰니까 십 년은 젊어 보인다. 그나저나 그 모자는 어디서 났어...?"


두 여자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는지 남편은 자기가 마치 전설의 홍콩 배우 장국영이라도 되는 양...


아비정전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추던 잘생긴 그처럼...


자신의 부담스러운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어 대며 흥에 겨워서는 냅다 툭 던졌다.


"내가 아무리 봐도 젊어 보이긴 한 것 같아. 

내 나이보다도 기본적으로 십 년 정도는 젊어 보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내가 왕년에 장국영을 많이 닮았다고 여자들이 줄을 섰었잖아. 안 그래, 여보...?"


하여튼 칭찬만 해주면 이렇게 자신이 왕년에 장국영을 닮았었다고 되지도 않는 행오버를 떨고 있는 이 나르시시스트 남자.


정말 이 남자는 장국영을 알기는 한 걸까?

아주 그냥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장국영이 아니고 홍금보 아니었을까?

아니지, 홍금보는 머리숱이라도 많지.

혹시 다른 배우를 장국영으로 진한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여보 알았으니까... 내려가서 당신 좋아하는 모닝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차 시동도 좀 걸어 놓고... 나갈 때 현관 앞에 놓여있는 여행 가방도 하나는 가지고 가서 실어 놔. 알았지?"

"응. 그럴까...? 그럼."

"자기도 원두커피 한잔 마실 거야?"

"응. 올 때 잊지 말고 챙겨 와."


나는 대답 대신 남편에게 고개 만을 끄덕이고는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있었다.


때마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민성이 엄마였다.


"언니, 지금 어디야?"

"어어~그게 우리는 삼십 분 전에 출발을 했거든."

"그랬어? 우리는 이제 막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언니는 나의 말에 별 게 다 미안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좀 늦게 출발할 수도 있지? 어차피 목적지는 같잖아."

"그나저나 언니."

"응? 왜?"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일단 휴게소에 도착하면 뭐라도 먼저 먹어, 알았지?"

"온 식구가 같이 먹어야지, 얘는 무슨 소리야? 우리끼리 먹을 거면 뭐 하러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겠어?"

"응, 알았어. 우리도 곧 출발할게. 이따 봐."

"그래... 알았어."


언니와 통화를 마치자마자 아들은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는 여유롭게 머리를 말린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여유가 몸에 배어 있는 아이라 기다리는 사람들만 아주 속이 터진다.


학교도 아마 내가 깨워 주지를 않았다면 제시간에 도착을 했을 리가 만무한 아이였다.


머리를 천연덕스럽게 천천히 말리고 있는 아들을 속이 터질 것 같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던 내게 딸이 물었다.


"그나저나 쟤는 왜 그렇게 머리를 밀지도 않고 있지? 민성이도 아직 머리 안 밀었대?"


"민성이? 말도 마라. 걔는 진작에 밀었다고 하더라. 그 집 엄마가..."


나는 속이 터지는 말투로 딸에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우리 얘기를 들은 척 마는 척 전혀 관심도 없이 자신의 젖은 머리 만을 한참 동안 말리고 있던 아들이 드디어 드라이기를 끄고는 그 소음 사이로 죄다 듣고 있었는지...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누나, 걔는 원래부터 머리 스타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 그런데 너는 내일모레가 입대인데 머리는 언제 박박 밀 거야?"


한치의 생각도 없는 눈치 제로 아들은 


"누나, 나는 훈련소에 도착해서나 머리를 밀 거야. 머리 미는데 일 분도 안 걸린다고 네이버에서 그러더구먼."


아들은 늘 모든 것을 검색해서 카더라를 믿는 신봉자였다. 


직접 해보지도 않고는 검색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을 하면 그대로 믿고 마는 이상한 구석을 가진 아들이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카더라를 믿냐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인데...


얘는 정말 네 살 터울인 딸과는 다르게 인터넷 카더라 무한 신봉자였다.


경험을 직접 하기보다는 인터넷을 뒤적이며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그 말을 믿는다라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믿는 아들.


혹시라도 아주 어렸을 적에 잠시 떼어 놓았던 아이라서 애정결핍의 한 방향은 아니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안심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지도 못했고 젖을 물리지도 못했다. 


그런 이유로 이 아이가 애정 결핍의 일환으로 오히려 조바심보다는 느긋함의 끝판왕이 

된 케이스는 아니었을까...?


엄마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상태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를 하게 마련이다.


별 탈 없이 무탈하게 잘 자라주면 더없이 고맙지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나 때문일까 봐 덜컥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차라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기 전에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지 없는 지의 자격시험을 봐서 통과를 해야만 한다.


만약에 그 시험에 통과를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엄마로서의 수련이 부족한 관계로 아이를 낳는데 제한을 걸어야만 한다.


이 무슨 개똥철학을 쏟아내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아이가 혹시나 나 때문에 라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다.


어른들도 때로는 아이들처럼 나보다 경험이 풍부한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에 늘 배고프다. 


나이를 먹는다고 무턱대고 다 어엿한 성인이 되는 건 아니다. 


뭐든지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완벽하게 잘하는 건 아마 신만이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신이 아니고 실수를 밥 먹듯이 하는 인간이다.


나는 아들이 커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주 마음이 답답할 때는 어떤 책에서 읽었던 이 구절들을 찬찬히 다시 음미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을 때가 있다. 


지금도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이 나랑은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고 질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차분하게 좀 기다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차 안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가져다 줄 원두커피를 내리기로 했다.


그 편이 아마도 나의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될 거라는 의미도 있고 어차피 좀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아들이 느긋하다고 해서 나 혼자서 굳이 얼굴을 붉히면서 노심초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내 안에서 강한 의구심과 노파심이 요란스럽게 소용돌이치듯 파문을 일으키는 것도 정신 수양에는 최악이니까.


그냥 나 역시 오늘 만큼은 차분하게 아들의 속도에 맞춰보기로 했다.


민성이네 식구들에게는 아주 미안한 일이지만


내일모레면 이 아이도 우리 곁을 떠나서 나라의 부름을 받았으니...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그러니 떠나는 전날이라도 그냥 이 아이가 마음 편하게 끔 엄마인 내가 화를 내기보다는 차라리 이 아이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템포에 무작정 맞춰보기로 작정했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이 아이와 속도를 맞추면서 갑자기 그전에는 몰랐던 평화로운 마음이 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것도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았다.


결혼과 동시에 늘 아등바등 살얼음판을 걷던 삶에서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위로해 주거나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해 준 기억이 거의 없었다.


늘 부족한 나를 채찍질만 하고 당근을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살면서 스스로를 믿을 수도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나 자신을 나무라기만 했지...


스스로를 꼭 끌어안아주며 괜찮다고 토닥여 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풀이 잔뜩 죽은 나는, 늘 숨죽여서 소리 없이 울면서 절규했었는지도  모른다. 

준비를 드디어 마친 아들이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장숙희 여사님! 오늘은 어쩐 일로 이 느긋한 아들에게 언성도 한번 안 높이시고 말없이 기다려 주세요...? 혹시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하시는 건 아니죠...?"


아들의 말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자코 듣던 딸이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다가는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다 됐냐...? 엄마는 그만 건드리고 빨리 출발이나 하자. 이 느림보 거북이 녀석아! 나중에 너랑 살 부인은 차라리 너보다 더 느린 사람을 골라서 한번 당해 봐라...! 그때나 돼서야 네 놈이 엄마 마음을 알겠지...?"

작가의 이전글 경단녀, 장숙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