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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Mar 27. 2024

경단녀, 장숙희

7화 반려견 몽쉐리

드디어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


나는 꽉꽉 채운 두 개의 여행 가방을 현관 앞에 두고는 눈치 더럽게 없이 지금까지 꿈나라에 가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는 아주 꼴 보기 싫은 남편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남편은 무슨 신나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발로 자신을 툭툭 치는 내게 잠꼬대까지 해 댔다.


"왜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 오빠한테 보채지 좀 말고... 자기야~~ 앙~~"


현실에서는 생전 안 떠는 아양을 닭살 돋게 떨고 있는 남편을 보니 괜히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 장숙희였다.


꿈에서 어떤 뇬이랑 깨를 처 볶고 있기에 이렇게 발로 툭툭 쳐도 모르고 늙어서 주책맞게 아양을 처 떨고 있는 건지...


나는 다시 한번 음흉한 미소로 자고 있는 남편이 갑자기 꼴 보기도 싫은 마음에 아침부터 간식을 달라고 애교란 애교는 다 떨면서 나 만을 졸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반려견 몽쉐리를 위해 남편의 볼록한 올챙이 배 위에 간식 서 너 개를 그대로 올려두었다.


그러자 몽쉐리는 남편의 올챙이 배 위로 냅다 점프를 뛰어서 자리를 잡고는 배 위에 있는 간식을 입에 넣고는 야무지게도 씹고 있었다.


남편은 화들짝 놀라서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이게 지금 꿈인지 생시 인지를 확인하는 눈치였다.


그는 자신의 배 위에서 간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몽쉐리에게 저리 가라고 손짓을 휘휘 저었지만... 


반려견인 몽쉐리에게 남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그대로 개 무시하면서 간식을 꿋꿋하게 먹고 있는 몽쉐리가 아주 사랑스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개선장군의 마음으로 마루로 나와서는 시원한 생수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다 말고 잠에서 깨어나 마루로 나온 딸에게 물었다.


"너 오늘 약속 있는 거 아니지?"

"뭐~ 별다른 일은 없는데... 왜 엄마?"

"왜긴... 오늘 가족 여행 가는 날이잖아?"


딸은 나의 가족 여행이라는 말에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왜? 오늘 엄마 생일이야?"

생일은 한참 전에 지났구먼... 생일은...?


한심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은 그다지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궁금한 표정 한가득인 그녀에게 말했다.


"그게... 월요일에 네 동생 동훈이 군대에 입대하는 날이잖아."


딸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상태로 내게 물었다.


"그랬어? 그럼 바로 내일모레인데...?"

"맞아. 그래서 이참에 민성이네 집이랑 같이 한 X 리조트 예약했거든."


그녀는 대답은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이더니 내게 물었다.


"나도 꼭 가야 하는 거야, 엄마?"

"그럼 너도 가야지. 너 어차피 이번 주 월요일 월 차 낸다고 하지 않았어?"


나의 질문에 딸은 자신의 월차 계획이 어그러졌는지 쿨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엄마. 같이 가지 뭐어."

"그럼 얼른 씻고 옷 입어."


딸은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미 화장실로 들어가고 없었다.


문제는 아침에 이 잠만보 아들을 깨워야 하는 데...


얘는 워낙 올빼미 형이라 군대를 가도 걱정이 한 보따리였다.


그래서 이 아들은 깨우는 게 항상 골치였다.


방문을 두드려도 못 듣고 자는 아들을 깨우려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생각해 보니 얘는 아침에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 놓고 자는 아이라 어떻게 해야  단박에 깨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일단은 남편은 깼으니까 운전을 해야 하는 그를 위해 보약 한 첩을 뜨끈하게 중탕을 해서는 잠이 덜 깬 듯한 남편의 눈앞에 내밀며 말했다.


"여보, 일어났으면 이 보약 마시고 씻어."


남편은 내가 내민 보약을 잽싸게 가져가서는 벌컥벌컥 마시다 말고 뭔 가가 기분이 상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몽쉐리 방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는 남편의 질문에 모르는 척 시침을 뚝 떼고는 대답했다.


"그건 왜...?"

"그게... 아침에 몽쉐리가 내 배 위에서 간식을 신나게 먹고 있더라고."

"어머어머~~ 웬일이야...? 몽쉐리 생전 당신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다가가지도 않잖아~"


남편은 나의 말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걔가 내 배 위를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내 배가 엄청나게 푹신했나 봐."


남편은 짜증을 내기는커녕 자신을 멀리하고 짖던 몽쉐리가 자신을 이제는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눈빛이었다.


이제는 이 아저씨도 속수무책으로 나이를 먹나 보다 생각을 하자 살짝 애처로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다 마시고 자신에게 내민 보약 컵을 받아 들고는 그대로 나와서는 아들의 방 문 앞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아들은 지금도 세상모르게 코를 골며 신나게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열 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차는 민성이네 집과 우리 집이 각자 타고 가는 거지만...


바다도 보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려면 서둘러 나가야 할 판이었다.


나는 일단은 아들의 방문을 연달아 두드렸지만...


아들의 코 고는 소리만 더 크게 들려왔다.


이번에는 몽쉐리를 시켜서 오빠 방문을 긁게 하는 작전을 폈다.


나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몽쉐리에게 애교 잔뜩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몽쉐리~간식 맛있게 먹었어요?"

"앙앙~~ 앙앙~~ 앙앙~~~"

"몽쉐리~~ 동훈이 오빠 어딨 어?"


말 길을 사람같이 알아듣는 몽쉐리는 나의 품에서 폴짝 뛰자마자 아들의 방으로 다가가서는 방문을 긁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이미 준비한 간식을 들고는 나에게 좋다고 펄쩍 뛰면서 난리 부루스를 추는 몽쉐리를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몽쉐리~~ 오빠 어딨 어...? 응? 오빠 좀 깨워 봐..."


그 말에 신이 났는지 몽쉐리는 아들의 방을 사정없이 긁으며 왈왈왈 소리를 지르며 아주 깨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방 안에서 뒤척이는 아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깨방정을 떠는 몽쉐리 때문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몽쉐리에게 말했다.


"우리 예쁜 몽쉐리~~ 오빠가 어딨 지...? 왜 아직도 안 보이지...?"


그녀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제는 늑대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


자신의 방밖에서 늑대처럼 울부짖는 몽쉐리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깬 아들의 철옹성 같은 방문이 드디어 열렸다.


방문을 열자마자 그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자신을 반기며 발랑 누워 흰 배를 보이는 그녀의 배를 살살 만져주며 말했다.


"몽쉐리~~"

"왈왈~~"

"누가 그렇게 오빠 방 앞에서 아침부터 늑대 소리를 내면서 개방정을 떨라고 시켰어?"


아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그제야 아들은 잠이 덜 깨서 괴롭다는 얼굴로 물었다.


"엄마, 아침부터 무슨 일 있어...?"


"이 녀석아! 너는 그렇게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군대 생활은 어떻게 할래?"


아들은 나의 걱정하는 말을 듣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너, 어디 가?"

"나? 다시 자려고."


나는 목소리 톤을 굵게 내리 깔고는 말했다.


"오늘 내가 여행을 간다고 했어? 안 했어?"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아들은 다시 제방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서는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눈치가 백 단인  딸은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


엄마인 나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갓 내린 원두커피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장숙희 여사님, 향기 죽이는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응, 아주 좋지. 고마워. 향이 참 좋네."

"그렇지, 엄마...? 역시 원두커피는 향으로 마시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인생이 참 이 향긋한 커피 향만 같으면 참 좋겠는데..."

"그러게... 엄마 말이 맞네. 이 커피 향 같이 인생에서 향긋한 일들만 잔뜩 일어나면 참 좋을 텐데."


딸은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오늘의 일정을 살짝 물어왔다. 


중간에 어느 바닷가를 들릴 거고 음식은 뭐를 먹을 거고 저녁에는 어디서 회를 뜨고...


일정 얘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기분이 화악 들떠서는 딸에게 어린아이 같이 조잘조잘거리는 내가...


한순간 수학여행 전날의  여고생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무작정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말은 아들 군대 입대 전에 가는 가족 여행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들뜨고 들썩들썩하고 신나는 기분이 수학여행 때의 그 여고생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기분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었다. 


사실은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마련된 힐링 여행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 역시 오래간만에 가는 가족 여행에 살짝 들떴는지 아들에게 받은 캡 모자를 쓰고는 나와 딸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때...? 나 되게 어려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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