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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Feb 06. 2024

경단녀, 장숙희

6화 은밀한 취미

이웃사촌인 언니는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서는 자신의 아들 민성이와 우리 아들 동훈이를 데리고 입대 전에 바다를 보러 가자며 한* 리조트를 예약했다고 호들갑을 잔뜩 떨면서 늦은 밤에 전화를 해왔다.


"괜찮지? 자기야~~"


"언니, 뭘 그렇게 까지 힘을 쓰고 그래... 미안하게..."


"어머, 자기야~ 동훈이가 남이니...? 민성이 처럼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지."


"언니 고마워. 토요일 몇 시에 출발할까?"


"어차피 입실은 오후 3시니까 일단은 자기 남편한테 물어봐 봐, 같이 갈 수 있는지."


"으응, 알았어, 우리 남편도 별일 없으면 가겠지, 걱정 마."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한번 통화를 하는 걸로."


전화를 끊는 내게 남편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이 물었다.


"내일 어디 가냐? 그 집 제수씨하고?"


"아니... 그 집 언니네 식구들하고 우리 집 식구들하고 아이들 입대하기 전에 같이 바다나 보러 가기로 했지."


남편은 바다를 보러 간다는 나의 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갔다 와, 나는 집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월요일에 자기 아들은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하는 데... 지는 집에서 쉬고 있겠다는 말에 또 한 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수기에서 쫄쫄 쫄 흐르는  물을 머그컵 잔이 넘치도록 가득  받아서는 그 자리에서 숨 한번 쉬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며 열을 식히고 있던 그때


때마침 물을 마시러 나온 불청객 아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이는 물을 마시다 말고 자신을 바라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냥 다시 제 방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나는 큰 소리로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어디 가? 이리 와서 물이나 받아, 이 새끼야~~"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나의 걸쭉한 욕에 소파와 한 몸이 돼서 뭉그적, 비비적거리던 남편이 놀라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 자세로 앉아 티브이 리모컨을 슬며시 자신의 옆에 내려놓고는 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기에 바빴다.


아빠의 초 긴장하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던 아들 역시 제 방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잽싸게 반대로 돌렸다.


씩씩거리며 자신의 뒤통수에 욕을 하고 있던 엄마인 내게로 슬며시 다가와서는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머그컵에 얌전히 물을 받는다.


제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딸에게만 나의 욕이 들리지 않았는지 딸아이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로 노래를 신나게 흥얼거렸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간 만에 눈치를 보며 물을 받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너 내일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마, 알았어...?"


나의 말에 아이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머그컵에 담긴 물을 두 손으로 들은 채 앞 발꿈치를 사뿐히 들고는 조심스럽게 제 방으로 들어 가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잠갔다.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앞에서 아들에게 새끼라고 욕을 하는 이 여자가 지금 살짝  맛이 갔나 라는 표정이 돼서는 여전히 소파에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래서 내일 안 간다고...?"


히스테릭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왕년에 놀던 언니의 스멜을 느꼈는지 그는 잠시 자신의 훌러덩 벗겨진 머리통을 살짝 어루만지다 말고 갑자기 좀 전에 한 말은 실언이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아들 입소하는 건 봐야지.. 암.. 봐야지."


"설마 월요일에 회사를 무단결근을 하겠다고 나한테 선포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나 그날 월 차 냈어... 이럴 때 쓰려고 아껴뒀던 거지. 걱정 마, 내일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그냥 내 옆에서 드라이브나 원 없이 즐겨."


갑자기 저자세를 하는 남편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자 그는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무척이나 불편했는지 


정 자세로 앉아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겉옷을 챙겨 입고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지금 나가서 담배 한 대만 태우고 올게. 금방 들어올 거니까 문은 잠그지 말고... 오늘도 어머님 댁에서 김치 담그고 집안 일 하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 자기야."


"알았으니까, 빨리 피우고 들어 와."


"응응, 걱정 마."


남편은 뒤도 안 돌아보고 황급히 담배를 챙겨 들고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쌩하고 나갔다.


역시나 이 집 남자들은 이렇게 강력하게 카리스마를 장착한 채 한 번씩은 곱지 않은 격한 비표준어(?)를 써야지만 그때서야 뒤늦게 말을 알아듣는 희한한 종족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나가자마자 그제야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일 떠날 여행을 위한 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얼마 전에 티브이를 보다가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여행 용 큰 가방 1+1을 보다가 으레 그렇듯 곧 있으면 마감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손가락은 거의 본능적으로 바로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보통의 현명한 구매자 같으면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그 모델을 기억해 두었다가 꼼꼼하게 가격을 비교한 후에 샀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매진될까 봐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결제를 해 버리는 나란 여자.


나 같은 구매자를 일컫는 그 단어 호구.


아까워서 택도 안 뗀 여행 용 가방을 열어서는 그 안에다 갈아입을 속옷부터 양말 잠옷 세면도구 화장품... 닥치는 대로 여행 가방 안에 신나게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간 만에 가는 가족 여행에 들떠 있다 보니 어렸을 적에 소풍 가기 전날이 떠올랐다.


예쁜 가방 안에 엄마가 퇴근하면서 사다 준 과자들과 사탕들과 음료수를 차곡차곡 쌓고는 잠을 자기 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일 제발 비는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꼭 소풍을 가는 날이면 반드시 비를 내려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일은 비가 와도 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니까 끄덕 없다.


도대체 이게 얼마 만에 가보는 여행이야...?


신혼여행 이후로는 남편과 아이들과 제대로 된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전무하다.


평일에는 일이 너무 바쁘다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남편은 주말에는 항상 접대용 골프를 치러 간다거나 친구 누구누구 부친 상이다 모친 상이다 장모 상이다 장인 상이다 를 아주 두루두루 갖다 붙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외출하기에 바빴다.


자신을 주말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어머니나 챙길 것이지...


뭔 남의 집 돌아가신 부모님들만 그렇게 챙기느라고... 지 엄마한테는 안부 전화 한 통을  하지도 않는 불효막심한 잘난 아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은 우리 남편의 이런 시답잖은 태도를 보고 혹시 네 남편 바람 난 건 아니냐며 대놓고 내게 화풀이 겸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세상에 얼마나 귀한 우리 아들인데.... 


집에서 쉬는 날에도 오죽 눈치가 보이고 불편했으면...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나돌아 다니고 있느냐면서 


역시 며느리는 불여시같이 낯가죽만 번지르르한 여자보다는 자신 같이 우직하고 곰같이 생겨야 남편이 집에서 편하게 쉬는 맛이 나지 않겠느냐며 골 때리는 돌려 까기를 시전 하시곤 했다.


그래서 그 키도 크고 잘생기셨던 아버님은 날마다 집이 아닌 밖을 돌아다니시면서 술을 드시고 오셨던 건가...?


어머님 말씀 대로라면 아버님은 아주 우직하고 곰같이 생긴 어머님이 곁에서 날마다 떨어지지 않고 붙어 계셨어야 했다.


그건 아주 간과하셨던 모양이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특히나 민성이 엄마를 포함해서... 한결같이 나 장숙희 남편이 혹시 내연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냐고...


모두가 자신의 육감을 운운하며 강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일생일대의 사건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참 가관 중에서도 가관도 아니었다


실상은 우리 남편은 없는 친구 어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를 팔면서 까지 주말마다 그 좋아하던 바다낚시를 즐겼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불알친구인 민성이 아빠와 함께... 그걸 왜 그 언니는 몰랐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아주 재밌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내게 이실 짓고 말했다.


"그게... 나는 사실 주말에는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우리 집 남편이 집에 있으면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나를 아주 귀찮게 하잖아. 그래서 주말에는 자기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라고 하면서 집에는 가급적이면 못 있게 했거든."


나는 언니의 말에 정말 어이가 없어서 두 팔짱을 끼고는 살짝 건들 거리는 말투로 


"그러면서 우리 집 남편이 바람났다는 걱정을 한 거였어? 언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말에 언니는 살살 웃으며 내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미안해 자기야~~ 아니면 됐지 뭐어~~ 그만 화 풀고 나랑 집 앞에 생긴 카페나 가자... 오늘은 이 언니가 풀코스로 쏜다. 알았지?"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남의 집 남편들은 웬만하면 다 성장한 아들과 함께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하던데...


이 인간은 어떻게 된 게 그냥 아내 몰래 하는 취미가 얼마나 재밌고 스릴이 있었으면 이렇게 없는 사람들까지 죄다 죽여가면서 자신만의 은밀한 취미를 몇십 년 동안이나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남편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이미 다 꿰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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