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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Feb 06. 2024

경단녀, 장숙희

5화 천하의 불청객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아들의 병역통지서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무슨 아들 입대하는 날만을 기대하고 고대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 장숙희는 천성적으로도 이 아이와는 성향이 극과 극이다.


느릿느릿 세월아 내 월아 하면서 할 일은 귀찮다고 뒤로 미루는 귀차니즘 말기 아들과 빠릿빠릿 그 자리에서 할 일은 바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그 자체가 맞지 않는 최악의 조합이다.


상생이 전혀 맞지 않으니 아들과는 사사건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신검을 받은 지가 언젠데...


머리카락만큼은 가는 전날까지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머리를 훈련소에 도착해서 깎겠다고 박박 우기는 아들과 그때 가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미리 머리를 박박 밀고 가자는 내가 대립했다.


아니 이미 입영 통지서를 받았으면 마음도 차분하게 정리를 할 겸 머리를 박박 미는 것이 정신 건강에 무지 좋을 것 같은데, 이 녀석은 귀찮다는 말과 함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엄마는 엄마 할 일이나 하라며 나를 꼽까지 주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던 나는 아들의 말뽄새에 갑자기 화악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사실 나도 양심이 없는 아줌마는 아니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혈기 왕성한 남자아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건 어찌 보면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예전부터 그래왔고 남자라면 군대를 가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돌아오는 게 기정사실인데 다니던 대학은 휴학을 하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맨날 친구들과 게임 방에서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그다음 날 개선장군처럼 뻔뻔한 얼굴로 들어오질 않나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술 약속을 잡아서는 아주 그냥 꽐라가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를 해서는 그다음 날에도 들어오고 그 다 다음날에도 태연하게 들어오는 불청객 같은 아들이었다.


연락을 해 줄 손 꼬락은 다 부러졌는지 핸드폰은 그냥 장식품인 건지...?


연락이 닿지 않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 줄도 모르는 무심한 아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집에 들어오면 샤워를 하자마자 제 방에 콕 틀어박혀서는 소리도 없이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아무래도 아들에게는 사춘기가 지금에서야 찾아온 모양이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이라니...


말을 하면 뭐 하랴...?


속에서 울컥울컥 불이 끊임없이 얼굴을 들이미는 걸 간신히 억누르면서 정신 수양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입대 1주 전으로 다가오니 내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머리도 시원하게 밀고 서서히 준비를 했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도 이 녀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밤마다 음주 가무를 즐기고 오는 꼬락서니였다.


주말에 소파와 한 몸이 되지 좀 말고...


아빠라도 그 아이를 붙들고 남자 대 남자로 아이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사이좋게 아들의 등에 붙은 때도 이참에 시원하게 밀어주고... 군대 대선배로서 몸에 좋고 정신 건강에도 좋은 조언을 해줬으면 참 좋겠지만...


남편은 흔히들 말하는 신에게 대단한 선택을 받은 신의 아들이다.


그 신의 아들이 뭐를 알아서 아들에게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찰진 조언을 해 줄 수 있겠냐?


그때만큼은 말없이 구석에 조용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웬일인지 군대에 관련해서는 지 자랑질을 할 건더기가 없으니 이해는 가다 가도 그래도 이럴 때 그냥 지어서라도 아들에게 위로가 될 말들을 눈치껏 하면 얼마나 좋아?


정작 필요할 때는 입 꾹 하고 있다가 필요하지 않을 때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동네 홍반장님 마냥 튀어나와서는 쓸데없는 자랑질로 분위기를 갑분싸 하게 만들어 내는 진정한 능력자.




오래간만에 이웃사촌 언니가 일이 없어서 심심하다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언니가 좋아하는 원두커피를 진하게 내려서 식탁에 앉아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언니에게 내밀었다.


커피를 받아 든 언니는 "원두커피 향은 언제 맡아도 참~좋아, 고마워."


우아하게 커피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언니를 보다 말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언니."


"으응? 왜?"


"언니 아들 민성이 훈련소 입대 날이 언제지?"


"왜 물어? 네 아들 동훈이 입대 날이랑 아마 같을걸? 다음 주 월요일."


언니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그건 왜 물어?라는 표정으로 다시 커피를 마셨다.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민성이는 머리 밀었어?"


"그럼. 걔는 알잖아~ 나랑은 다르게 빠릿빠릿한 거!"


언니의 말에 빠릿빠릿한 민성이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 아들은 왜 머리도 안 밀고 내 속을 터뜨리고 있나 싶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나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녀가 자상한 어조로 물었다.


"왜 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자기야?"


"아니야~아무것도~~"


"아니긴... 이마에 지금 무슨 일이 잔뜩 있다고 쓰여 있구먼."


"아니야, 언니."


"빨리 얘기해 봐, 이 언니 속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언니는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성품답게 다시 우아하게 커피를 홀짝이다 말고 궁금한 듯 물었다.


"자기야~ 그나저나 점심은 먹었어?"


그제야 숙희 자신도 이제까지 입맛이 없어 점심을 거르고 커피 배 만을 채운 걸 깨달았다.


"아니... 그러는 언니는...?"


"나도 당연히 안 먹었지, 우리 요 앞에 새로 생긴 마라 엽떡이나 시켜 먹을까? 어때?"


"그러자 언니, 튀김도 먹을래?"


"당근이지, 떡볶이는 튀김과 함께가 국룰이지."


마라 엽떡을 먹을 생각에 아이같이 신나 하는 언니를 보고 있자니 예전 생각이 불쑥 튀어 올랐다.


어렸을 적 먹었던 똘이네 분식집.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서 오손도손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오징어 없는 오징어 튀김과 딱딱해서 이가 다 부러질 것 같은 납작 만두, 당면이 채워지다 만 홀쭉한 김말이와 간신히 삼 분의 일 정도만 채워진 컵 떡볶이.


모든 튀김에서는 한결같이 기름 전 냄새가 코를 찔렀고 떡볶이에서는 특이하게 고추장보다는 구수한 집 된장 맛이 유독 많이 났었던 추억의 그 집.


아마 살면서 된장 떡볶이는 먹어 본 사람만이 알 걸...?


짜디 짠 집 된장을 흠뻑 뒤집어쓰고는 떡볶이 행세를 하는 특이한 맛이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맛은 또렷하게 잔상으로 남아 있는 법...!


미각이 아니라 후각과 그 당시를 회상하던 시각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


그러든지 말든지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주전부리를 파는 분식집에는 틀림없었다.


늘 문전성시를 이루던 학교 앞 똘이네 분식집.


지금도 가끔 그 할머니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까?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그 당시 분식집을 하셨을 때만 해도 두 분은 모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다.


지금  내 나이로 추측건대 족히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시고도 남는다는 데 한 표.


한참을 멍한 눈으로 딴생각을 하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던 언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숙희 씨, 지금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은 아니고..."


"그 옛날 잘 생긴 오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장숙희 여사님?"


갱년기로 발그레해진 내 얼굴을 보던 언니는 재밌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뾰로통하게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내게 언니가 이번에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 남자랑은 어디까지 가봤어? 손잡고~키스하고~또...?"


"언니야말로 지금 결혼한 남편 말고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아니지... 그것보다 더한 짓을 한 추억의 남자가 있었어?"


"그야~~ 비밀~~"


"그럼 나도 비밀~~"


이 언니는 처음 인상은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것과는 반대로 장난꾸러기 섬 머슴과 같은 의외의 면이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나랑은 정반대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점점 동경을 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


아들인 민성이는 언니와는 다르게 의젓하고 빠릿빠릿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집 아들 동훈이는 동갑인 민성이보다는 생각하는 게 한참이나 어린아이 같다.


아이들끼리 비교를 하는 것도 나쁘고... 해서도 안되지만...


나는 우리 아들이 군대라는 곳을 갔다 오면 조금쯤은 의젓하고 속이 깊은 민성이 같은 아들로 거듭났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사심을 내비쳐본다.


그러려면 지금 정신이 영 다른 곳에 가 있는 아들을 이곳으로 데려와서 조언을 해 줄 또래 말고 성인 남자가 필요했다.


나는 머리도 안 밀고 현실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염치 불고하고 운이 매우 좋은 신의 아들인 남편보다는 귀신 잡는 해병대를 나왔다고 술만 마시면 자랑스럽게 열변을 토해내기에 바쁜 아들들의 친구 엄마이자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그 집 아들도 우리 아들과 한날한시에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앞둔 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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