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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Feb 06. 2024

경단녀, 장숙희

4화 개뼈다귀 불여시

아들은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유난히 풍부하고 예민한 성향이라 내게 꾸지람을 듣는 날이면 세상이 다 떠나갈 듯이 서럽게도 울었다.


이렇게 혼을 낼 거면 자기를 왜 낳았느냐며 되려 나를 나무라는 말투로 울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이 늘 옳다며 똥고집을 부리는 고집쟁이 녀석.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융통성이 있는 딸과는 정반대로 아들은 자기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고집불통이었다.


결혼을 한 직후부터 마마보이 남편처럼은 절대로 키우지 않기로 결심을 했던 터라

나는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는 따끔한 혼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였다.


오냐오냐 금지옥엽 키우면... 마마보이로 자랄게 뻔한데... 자신의 아빠처럼...!


그럼 그 아이를 마음에 두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남의 집 귀한 딸에게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다른 집 아들보다도 올곧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만큼은 여느 엄마 못지않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 장숙희는 내 뜻대로 그냥 인성이 바르고 남에게 절대로 민폐를 끼치지 않는 아들로 키우려고 노력을 했다.


문제는 이 아들이 공부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아주 잘 자라줬다는 사실.


이 부분이 항상 남편과 내가 부딪히는 부분이다.


남편은 내게 왜 집에서 아이 교육을 소홀히 해서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게 만들었냐고 나를 타박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때가 오면 해도 늦지 않는다는 주의였기에...


본인이 명문고, 명문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떡하니 취직을 해서 이렇게 가정을 꾸리며 단란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어머니의 학구열이라는 주제로 또 일장 연설을 한바탕 신나게 하고 있는 남편이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학구열보다는 치맛바람이겠지...


아들 귀한 집에서 아들 하나 낳고 딸들을 줄줄이 소시지 마냥 넷이나 낳았으니...


어머니 욕심에 하나 있는 아들만큼은 어떻게든 남의 눈에 훌륭하게 잘 키워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과 사랑과 치맛바람이 가뜩이나 마마보이인 아들을 나르시시스트, 관종으로 키운 데는 나름 큰 일조를 하셨을 것이 뻔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먹혔을지는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성적이 잘 오르지 않고 뒤에서 몇 번째로 노니...


당연히 공부가 무척이나 싫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입에서 침을 더럽게 튀기며 엄마의 학구열이 어쩌고~저쩌고~ 


일장연설을 하는 이 놈의 꼴 보기도 싫은 인간은 또 말도 안 되게 자기 자랑을 한가득 늘어놓기에 바쁘다.

언제나 기 승 전 지 자랑 한 뭉탱이...!


그러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아빠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다 가도 이렇게 기 승 전 지 자랑만 침이 튀기도록 하고 있는 아빠와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두 아이들은 남편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을 섞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편이다.


그러면 그렇지~~ 이 인간은 매번 이렇다~~


아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콕 걸어 잠근 지가 언젠데...


그러든지 말든지 이 배불뚝이 훌러덩  남자는 계속해서 주저리주저리 지 자랑 질에 바쁘다. 


솔직히 너도 노는 아들이었다고 하더구먼. 


학교 다닐 때 사고도 많이 치고 점수는 맨날 바닥에서 놀고...


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남편과는 불알친구의 아내인 두 살 터울 언니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이들 나이 또래가 같기도 하고 그녀는 두 살 어린 나를 늘 친 여동생 대하듯 살갑게 챙겨 주는 아주 고마운 지인이다.




큰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시어머니한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구박을 당하고... 입덧까지 심한 날이 겹쳐지며 날마다 눈물을 흘렸다.


어쩌다 시댁에서는 미운털이 콱 박혔는지.


솔직히 나는 그 어머니께 미운 짓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 기억에는 결단코...


그냥 자신의 소중한 왕자님 같은 아들을 어디서 굴러 들어온 개 뼈다귀 불여시 같은 년에게 빼앗겼다는 허탈감이 컸던 탓이 아니었을까?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고 싫은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날마다 구박은 구박대로 당하고 남편은 늘 일이 바쁘다며 늦고 야근을 해야 한다고 늦고 초상집에 가야 한다고 늦고... 이래 늦고 저래 늦고...


맨날 없는 일도 만들어서는 늦게 들어오는 비상한 재주를 갖은 남편이 아닌 남의 편.


차라리 친정만큼이나 시댁도 멀리 동떨어져 살고 있었더라면 마음만큼은 덜 고달팠을 텐데...!


바로 옆집이 시댁이니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집으로 오라는 시어머니의 호출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다고 임신을 해서 입덧을 하는 며느리를 위한 요리를 손수 해 주시는 사려 깊은 분이었더라면 

십분 내가 양보해서 어머님의 호출을 이렇게 까지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착한 그 순간부터 물 한잔 마실 틈도 주지 않고 내게 명령을 하셨다.


뭐를 만들든지 손이 엄청나게 큰 시어머니는 날마다 그렇게 김치를 담그셨다.


이건 뭐~ 그냥 김치를 담그는 게 유일한 취미인 것처럼...


하루는 열무김치, 하루는 배추김치, 하루는 백김치, 하루는 동치미, 또 하루는 섞박지...


그 당시 나는 그 엄청난 재료들을 씻고 절이고 다듬고 직접 담그면서 처음 알았다.


김치 종류가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남들 눈에는 아주 엄청난 대 가족을 이끄는 여인처럼 사실은 이 많은 김치를 담그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만드는 김치를 인심도 좋은 사람 마냥 이 집 저 집 다 퍼주기 위한 것일 뿐.


그 어머니의 성화에 나는 날마다 고달픈 몸을 이끌고 울면서 전쟁터로 나갔다.


그 전쟁터 이름은 그냥 김치 공장.


차라리 그 당시에 김치 공장을 각 잡고 차리셨으면 또 아나?


대박을 쳐서 돈 좀 많이 버셨을지도...?


그 덕에 나한테도 콩고물이 코딱지만큼 떨어졌을 줄...?


고생은 내가 나하고 동네방네 칭찬은 어머님이 다 듣고 우쭐우쭐~~


가끔씩 친구 분들이 놀러라도 오시면 갑자기 생전 꺼내 입지도 않던 한복을 꺼내서는 곱게 다려서 그 옷을 오늘의 주인공처럼 입으시고 동네 분들을 반갑게 맞으셨다.


하여튼 동네 분들이 놀러 오시는 날이면 아주 그날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만드는 잔칫날이었다.


요리를 그다지 잘하지는 못해도 나름 간은 삼삼하게 잘 맞추는 재주가 있던 나는 그럭저럭 색깔 별로 음식을 만들어서 상차림을 하곤 했다.


그러면 그 동네 분들이 우리 어머니한테 이 집 며느리 참 잘 뒀다. 칭찬이라도 할라 치면 심기가 불편한지 부르르 떨리는 얼굴 표정으로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늙은이들이 눈은 뒀다 어디다 써? 쟤 생긴 거를 봐봐. 복이 있게 생겼어? 돈이 있게 생겼어? 나는 지금도 쟤랑 사는 우리 아들이 정말 아까워 죽겠는데... 안 그래? 우리 잘난 그 아들을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신파극, 눈물 콧물 한 바가지~) 어쩌고~~ 저쩌고~~(뒤는 열받으니 생략)"


어째 이렇게 최선을 다해 잔칫상을 차려드려도 얻어먹는 건 욕뿐이었다.


실컷 욕을 하다가 술이 서 너 잔 자신의 위를 촉촉하게 적셔줄 때는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때서야 자신이 입고 있는 고운 한복을 우리 아들이 달마다 사다 준다면서 또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전생에 모자는 필시 죽도록 사랑했지만 맺어지지 못한 연인들이었을 싶을 정도로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역시나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나는 결혼과 동시에 대단한 적을 가족에게서 얻었다.


이러니 집에 놀러 와 잘 차려진 음식을 드시는 동네 친구 분들도 이 어머니의 되지도 않는 며느리 욕에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건 아마도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걔 중에는 우리 어머니와는 정반대로 바른말을 전혀 눈치 안 보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아들끼리는 친했지만 어머니들끼리는 어찌 보면 그냥 무늬만 친구, 실상은 앙숙.


그분은 항상 입덧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신이 집에서 손수 만든 식혜를 대형 들통에 넘치도록 담아서는 우리 집에 오시곤 했다.


오셔서는 저런 성격도 별난 시엄씨 비위 맞추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 


정말 고생이 참 많다... 어쩌다 저 집 못생긴 아들과 결혼을 했느냐면서 차라리 우리 집 아들과 인연이 맺어졌으면 참 좋았을걸...? 하시면서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러게... 나도 처음부터 이 아주머니 아들을 만나서 결혼을 했더라면 이 멋진 시어머니께 예쁨이라도 듬뿍 받고 좋았을 텐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자기 맘대로 어찌 저지할 수 없는 노릇이니 그냥 내 가련한 처지를 그나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는 어머니 친구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역시나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신 멋진 어머니 친구(?) 분은 어쩌면 식혜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주셨는지


여엉~~ 김치 젓갈 냄새에 비위가 상해서 헛구역질만 잔뜩 했던 뒤집힌 속과 늘 입덧으로 위가 날이 서서 구토 직전인 나의 메슥거리는 속을 이 달달하고 시원한 식혜가...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정확히 일 년 후 이 식혜 아주머니의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그 며느리가 나중에 나와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게 된 두 살 터울의 언니였다.


언니는 멋진 시어머니만큼이나 손도 크고 자상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확실히 챙기는 성격도 확실하고 키도 큰 미인이었다. 


어쩌다 그 집 아들과 결혼을 했냐고 물어보면 그냥 얘는 참 시답잖은 질문을 다 한다는 얼굴 표정으로 되려 내게 물었다.


"그러는 자기는 어쩌다 그런 마마보이 남편을 만났니? 그 집 어머니도 엄청 대단하잖아? 나 같으면 그냥 미혼으로 혼자 살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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