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물질성에 대한 논의
생각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생각은 일반적으로는 어느 대상·사태 또는 그러한 것들의 측면을 감각기관의 작용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과 서로 상보적 작용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활동 또는 과정을 가리킨다. 감각기관의 작용에 직접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은 유효한 정의일까? 신경과학에 의하면 생각이나 의식은 신체 및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각 그 자체가 물질이라는 관점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슬링거랜드, 바라드, 맥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신체(특히 뇌)와 동일하며, 이 신체-뇌는 수백만 년의 진화의 산물인 매우 복잡한 물리적 대상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는 유령 같고 비체화된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일련의 신체-뇌 상태 각각이 물리적 대상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다음 상태를 야기하는 물질의 일련의 물리적 구성”이다. [1]
"의식과 종교적 경험의 결정력은 비물질적이거나 초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게 물질적이다. 종교적 현상은 ‘행위적 분리 가능성’, 즉 ‘현상 내부의 외재성’을 부여하는 실천에 의해 매개된 물질성을 가지며, 뇌-신체의 물리성에 근거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 만약 신비의 근원이 인간 지성의 구조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의식에 대한 종교적 신비주의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세계에 마법적 과정을 가정하지 않고도 신비의 감각을 설명할 수 있다. 신비의 근원은 주어진 인지적 한계에 있으며, 우주의 초자연적 차원에 있지 않다." [2]
신지학자인 C.W. 리드비터, 애니 베산트가 쓴 <상념체 Thought-form>라는 책의 제목인 ‘상념체’라는 단어는 생각이 곧 물질적 차원의 몸을 형성할 수 있다고 의미하는 단어다. 생각이 행위를 통한 단계적 물질화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내는 눈물처럼 즉각적인 물질성을 띈다고 가정하면 상념체는 가시적인 범위에 속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이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와 세계와 우주를 떠다닌다는 가정은, 생각이라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미지 및 정보 생성인 신체 반응과 뇌가 만들어내는 전기 신호나 기타 무엇이 외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관련성이 밝혀져야 가능할 듯이 보인다.
초월 세계에 대한 무함마드와 이슬람 신자들의 태도는 비가시적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긍정한다. 물질과 비물질은 구분되지만 서로의 실재성을 부인하지 않더라도 공존이 가능하다고 인식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슬람에서 모든 것은 그 종교적 궁극자인 신을 중심으로 한다. 신은 비물질적이며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 아랍인들은 그의 실재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결코 -현대의 물질주의적 태도에 의해 심하게 강화되는- 오직 가시적인 것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3]
사랑의 신비주의는 ‘마음의 지식’을, 그리고 기쁨에 찬 상태는 ‘시각적 또는 환영적 지식’을 산출하는데, 이는 초지구적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직관적 신비주의는 수피들이 ‘마리파(ma’rifah)’라고 부르는 ‘정신적 지식’을 가져오며, 이는 ‘마음의 눈’이라 불리는 식별의 기관을 통해 얻어진다. 마리파를 통해 도달하는 현실들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마음의 눈 역시 비물질적이다. 그것은 물리적 눈과 경쟁하지 않으며, 물리적 눈의 대상들, 즉 세계의 평범한 대상들은 완전히 시야에 남아있다. 대신 그것은 이러한 대상들을 천상의 빛으로 입힌다. [4]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예수에게도 초월 세계는 현실이었다. 영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 이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최대로 나타났지만, 엘리야에게는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다른 예언자들에게는 사자의 포효로, 그리고 출애굽과 같은 극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나타났다. 동시에, 인간들도 그것과 접촉하는데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금식과 고독은 그렇게 하는 수단이었고, 소명을 느끼는 유대인들은 주기적으로 세상의 산만함에서 벗어나 이러한 도움을 통해 신성과 교감했다. [5]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가 속했던 성경적 전통은 보이지 않는 질서와 히브리 민족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대화로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질서를 영(성경의 첫 구절에서 영이 원초적 물 위에서 세상을 창조하듯이)이라 불렀고, 그것을 매우 생생하게 느끼면서 천사들, 대천사들 … 과 같은 존재들로 채웠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야훼가 있었고, 그들은 그를 보았다. … 둘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했다. [6]
위와 같이 체험자의 관점에서는 비물질적인 세계는 존재성을 가진다. 일반적인 감각으로 인식되는 물질성이 없는 것일 뿐, 이를 비물질로 볼 수도 있고 일반적 감각을 넘어서는 물질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접근 가능한 해석은 체험자에게는 현실이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세계는 언어 등을 통해 물질화되어 타인에게 전달되고, 사회와 문화에서 신비주의 등과 같은 범주로 위치를 차지하는 물질화를 경험한다.
초월적 세계나 존재의 실재성에 대한 논의는 이처럼 개념 정의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체험자에게는 단순히 생각, 상상, 일시적 환각 등을 넘어서는 구조적 맥락으로 경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럴 때 일반적 시선에서 체험자들의 경험 구조를 단언하는 것은 관점의 폭력일 수 있다. 또한 정신과 물질 개념은 이원론에서 과학적 근거들을 기반으로 통합된 관점으로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 세계의 실재성을 따져 보기에는 정신이나 의식의 물질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1] Vasquez, More Than Belief, 203.
[2] Vasquez, More Than Belief, 206.
[3] Huston, The World’s Religions, 235-56.
[4] Huston, The World’s Religions, 261.
[5] Huston, The World’s Religions, 321-22.
[6] Huston, The World’s Religions,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