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라는 창(窓)으로 본 인생풍경

보험사 영업지점의 풍경

by 보험외길

나는 1995년 보험사에 입사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내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때까지도 수도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월세살이를 했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장남인 내가 대기업 마크가 찍힌 사원증을 목에 걸었으니 이제 집안 형편도 좀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는 IMF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나는 간신히 직장을 지켰지만,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던 나의 부모님은 하루아침에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가 되었다.


나라 전체가 휘청이던 그때, 보험 영업 현장은 그야말로 사투의 현장이었다. 아무도 선뜻 영업현장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보험회사 지점장 하면 수천만 원의 큰 빚을 진다'는 흉흉한 말이 업계의 정설처럼 떠돌 정도였다. 당시 내가 첫 소임을 맡은 지점은 지방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상가 건물의 2층을 빌려 쓰는 우리 지점의 풍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아침 7시, 제일 먼저 출근해서 지점문은 내가 연다. 밤새 가라앉았던 묵은 먼지와 출력하면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던 잉크젯 프린트의 잉크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우리 지점은 전산에 등록된 영업사원은 25명이었지만, 실제로 출근 도장을 찍는 설계사는 15명 남짓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 조회 시간에 텅 빈 의자들 사이로 단 네 명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지점장인 나는 벽에 걸린 실적 현황판의 텅 빈칸들을 바라보며 타들어 가는 속을 애써 감춰야 했다. 우리 지점은 전국에서도 규모나 달성율에서나 최하위 그룹에 속해서 매달 매달 개선 대책을 쓰고 발표하는 부실지점이었다.


​우리 지점은 거대한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당장의 생활비가 급한 저소득 설계사들이었다. 그들에게 보험은 사명이기에 앞서 생존이었다. 지점장 눈을 피해 책상 밑으로 다단계 카탈로그를 뒤적이거나, 카드 영업, 화장품 방문 판매, 빌라 분양권을 기웃거리는 일은 그들의 슬픈 일상이었다. 심지어 동업사로 몰래 발을 들이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다독이는 것 또한 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볼 때마다 나는 실적 독려보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먼저 읽어내야 했다.


사무실은 늘 민원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내 돈 내놔라"며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IMF 여파로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보험을 해약하러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해약금이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 "만기금이 왜 예상보다 적으냐"는 고함이 좁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당시 저축보험 금리가 17%에 달했지만, 사업비를 떼고 나면 실제 만기 때 손에 쥐는 돈은 원금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이미 퇴사해 버린 전임지점장이 어떤 설명을 하고 팔아치운지도 모를 그 괴리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지점장은 숙명이었다. 우리 사무실 한쪽에는 자동차 보상 직원 두 명도 함께 근무했는데, 그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도망치듯 외근을 나가버리면, 보상 처리에 불만을 품은 고객의 화살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지점장의 하루는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어떻게'로 끝났다. 어떻게 하면 가동되지 않는 설계사들을 현장으로 보낼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람을 모집할까? 어떻게 하면 고객의 닫힌 지갑을 열게 할까? 모든 지점장의 고민은 조직을 키우고 매출을 늘리는 데 집약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조회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개별 면담을 통해 실적을 쥐어짜듯 독려하는 일 외에도, 무단결석한 영업사원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가정방문도 예사였다. 비 오는 날이면 출근한 설계사들의 젖은 구두를 구둣솔로 닦아주고, 설계사 입에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어 보이는 고객이 있다는 소리가 엿 들리면 동행 방문을 독려했다. 계약 체결의 순간에는 구석에서 숨을 죽이며 힘을 보탰고, 고객 중 화재나 사고 소식이 들리면 현장으로 설계사와 달려가서 보험금 청구를 도우기도 했다. 지점폐쇄라는 회사의 경고에 나는 이미 벼랑 끝에 섰고, 나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나의 이야기는 지난 30년간 이 거친 현장에서 나와 함께 울고 웃었던 영업사원들, 그리고 그들의 고객들에게 일어난 인생사들을 기억의 심연에서 끌어올릴 기록이 될 것이다. 보험설계사 한 명이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당시 우리 지점은 남성과 여성 설계사의 비중이 반반 정도였는데, 그중 김옥분 설계사는 우리 지점에서 가장 산전수전을 많이 겪은 베테랑이었다. ​나의 첫 번째 이야기는 김설계사의 고객 최학술 여사의 이야기다. 암으로 딸을 잃은 최학술 여사의 시린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여러분의 응원 한마디가 보험인생 30년의 기억을 기록하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